[보죠, 배터리]미국이 개발하고 포기했는데…'싸구려 배터리' 격세지감
'배터리 보릿고개'에 LFP 주목
NCM 독무대 예상했던 북미서도 부상
2030년께 전기차 40% 탑재 전망
편집자주 - '보죠, 배터리'는 차세대 첨단산업의 중심으로 떠오른 배터리 산업을 들여다보는 연재물입니다. 배터리 제조 생태계를 차지하려는 전 세계 정부·기업의 기민한 움직임과 전략, 갈등 관계를 살펴봅니다. 더 안전하고, 더 멀리 가는 배터리를 만들기 위한 기술 경쟁도 놓치지 않겠습니다. 독자, 투자자들의 곁에서 배터리 산업의 이해를 보태고 돕는 '보조' 기능을 하려고 합니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배터리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한국 배터리 기업의 주력인 NCM(니켈·코발트·망간)배터리의 독무대가 될 줄 알았던 북미에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열풍이 거세다. LFP 수요 확대에 LFP 배터리·전기차 양산 계획이 속속 나오고 있다.
20일 친환경에너지 시장조사업체 블룸버그NEF는 향후 6년 후인 2030년 LFP 배터리 수요가 160GWh를 넘기고 미국 신규 전기차의 40%에 탑재될 것으로 예상한다. 1GWh가 전기차 1만2000대 분량의 배터리인 점을 감안하면 연간 전기차 192만대에 LFP 배터리가 적용되는 것이다. 블룸버그NEF 는 이 기간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LFP 배터리가 초과수요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한다. LFP 배터리를 적극적으로 채용하고 있는 테슬라를 시작으로 유수의 완성차들이 자사 전기차에 LFP 배터리를 채택했거나 향후 출시할 모델에 탑재하겠다는 방침이다. 한국 배터리셀 북미 현지 법인 관계자는 "고객사들과 미팅에서 배터리셀 라인업에 대해 설명하면, 마지막엔 '알겠는데, LFP 라인업은 없냐'고 되묻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불과 3~4년 전까지만 해도 북미에서는 LFP를 탑재한 전기차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국내 배터리 3사가 2025년부터 차례로 가동할 대규모 배터리 공장들도 주로 NCM계열 배터리를 생산한다. 에너지 밀도 등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미국에서 먼저 개발하고도 스스로 제조를 포기한 배터리가 LFP다. 미국은 왜 LFP 배터리를 찾고 있는 것일까.
왜 북미서 LFP는 대세가 됐나
LFP 배터리는 무겁고 에너지 밀도가 낮다는 단점이 있다. 주행거리와 출력이 중요한 전기차에는 가격이 좀 비싸도 가볍고 에너지 밀도가 높은 배터리를 탑재하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전기차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고 범용화하면서 전기차 원가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배터리의 가격 경쟁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LFP는 NCM에 비해 20%가량 가격과 생산 비용이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LFP 기술 발전으로 배터리 성능도 훨씬 개선됐다. 에너지 밀도 문제는 모듈이나 팩 단계를 건너뛴 CTP(셀투팩), CTC(셀투섀시) 등 배터리 용량을 추가하는 공간 기술로 극복하고 있다. 열관리시스템·첨가제 등으로 저온 주행거리 격차도 10% 내외로 축소했다. 여기에 리튬인산철에 망간을 섞은 LMFP 배터리가 신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LFP 배터리와 비슷한 가격으로도 에너지 밀도를 15~20%가량 높일 수 있다. 그만큼 주행거리를 늘릴 수 있다. CATL과 BYD, 궈시안 등 중국 업체들은 LMFP 기반 배터리를 개발해 이미 상용화 단계에 들어섰다. 에너지 밀도를 높인 덕에 LFP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도 300~400㎞ 최대주행거리를 보유하게 됐다. 이는 자동차 이용자 대다수의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수준이다.
전기차뿐만 아니라 신재생 에너지 프로젝트에도 LFP 배터리는 각광받고 있다. 북미는 현재 대형 신재생 에너지 프로젝트가 건설되고 가동을 기다리고 있다. 배터리는 신재생 에너지 분야에서는 ESS(에너지저장장치)에 탑재되는데 풍력·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의 간헐적인 생산 주기를 보완하기 위해 에너지를 저장하는 배터리는 필수적이다. LFP는 안정적인 성격과 공간에 비교제약받지 않는 특성상 ES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미국 재생에너지 시장 및 에너지 전환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까지 미국의 재생에너지발전 비중은 42%까지 확대된다.
中 주도했던 LFP…북미서는 다를걸?
북미 LFP 시장의 주도권은 어떤 기업으로 쏠릴까. 중국이 내수 시장을 중심으로 글로벌 LFP 배터리를 독식했던 상황과는 다를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중국 자본의 지분율이 25%를 넘는 배터리 합작사를 '외국우려기업(FEOC)'으로 지정,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보조금(세액공제)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여기에 국내 배터리 3사를 비롯해 미국 현지 업체들도 잇따라 LFP배터리 양산 계획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작년 말 중국 남경공장에서 에너지저장장치(ESS)용 LFP 배터리 생산을 시작했고, 미국에는 배터리기업 최초로 ESS 전용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다. 투입 금액은 총 3조원. 애리조나주에 들어설 이 공장에서는 16GWh 규모 파우치형 LFP 배터리를 2026년부터 양산할 계획이다. 자동차용 LFP 배터리의 경우 2025년 하반기 양산하는 것이 목표이고, 어느 공장에서 생산할 것인지는 아직 공개하지 않았다.
삼성SDI는 2026년 ESS용 LFP 배터리를 양산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전기차용 LFP 배터리도 준비 중으로, 양산 시점을 밝힌 적은 없으나 ESS용 시기와 비슷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삼성SDI는 NMX(니켈망간산화물)나 LMFP(리튬망간인산철)처럼 삼원계 배터리보다 저렴하지만 에너지밀도가 LFP보다 높은 보급형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다. 삼성SDI 관계자는 "LFP 배터리의 경우 국내 기업이 후발주자인데다 중국의 가격경쟁력이 높기 때문에 이를 넘어설 또 다른 경쟁력을 마련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SK온은 전기차용 LFP배터 개발을 완료하고 여러 고객사와 협의 중이다. 이석희 SK온 사장은 이달 초 배터리 산업 전시회인 인터배터리 개막식에서 기자들을 만나 "고객과 구체적인 협의를 마치면 2026년쯤 양산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북미 시장을 고려하면 한국 배터리사들이 해도 (중국업체와)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고 했다. SK온은 올해 인터배터리에서 저온에서 충방전 용량을 10% 넘게 높인 LFP 배터리를, 지난해 전시회에선 국내 배터리사 최초로 파우치형 LFP 배터리를 공개했다.
포드는 중국 CATL의 LFP 기술을 활용해 2026년부터 미시간주 마샬 배터리 공장을 가동할 계획이다. 새 공장은 35억달러(약 4조6896억원)가 투입됐다. 미국 배터리 기업 ONE(Our Next Energy)은 지난해 말부터 16억달러(약 2조1438억원)를 투입한 밴 뷰런 타운십 공장에서 LFP 배터리 셀을 시험 생산할 예정이다.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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