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뇨업자가 주인공인 영화... 이토록 화사한 똥 이야기라니
[김형욱 기자]
▲ 영화 <오키쿠와 세계> 포스터 |
ⓒ (주)엣나인필름 |
1858년 에도, 인분을 수거해 지방의 농사꾼에게 되파는 일을 하는 야스케. 그는 분뇨업자로 사람들에게 무시와 천대를 당하지만 없어선 안 될 직업인이다. 비 오는 어느 날, 폐지를 주워 팔며 생계를 이어 나가는 츄지와 우연히 만나 조수로 채용한다. 그곳에는 오키쿠도 있었는데, 츄지를 보고 첫눈에 반한 것 같다.
오키쿠는 몰락해 가는 사무라이 집안의 외동딸로 절에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있다. 비만 와도 온 동네에 인분이 넘쳐흐르는데, 한때 모두가 우러러보던 오키쿠의 아버지 겐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어느 날 겐베는 칼을 지닌 채 일련의 사람들과 길을 나서고 오키쿠는 아버지의 뒤를 따른다. 결국 겐베는 목숨을 잃고 오키쿠는 목을 다쳐 목소리를 잃는다.
시름에 빠져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오키쿠, 동네 사람들이 먹을 걸 가져다주고 절에서 스님과 아이들이 와서 다시금 글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한다. 한편 야스케는 저택에서 똥을 풀 때마다 문지기에 폭력을 당한다. 그런가 하면 츄지는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 하는지 회의감에 빠져든다. 과연 오키쿠, 야스케, 츄지 세 청춘은 계속해서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을까.
분뇨업자가 주인공인 에도 막부 말기 이야기
1853년 미국의 매튜 페리 제독이 이끄는 해군이 아시아 원정 중 일본에 와서 무력으로 개항을 요구했다. 이듬해 다시 와서 미일화친조약을 맺었고 1858년 미일수호통상조약을 맺었다. 일본은 본격적으로 근대화를 시작한 것이다. 즉 1858년 에도라면 급박하기 이를 데 없이 돌아가는 대변혁의 한복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키쿠와 세계>의 1858년 에도는 전혀 딴 세상이다. 근대화의 느낌은 일절 찾아보기 힘들고 그저 하층민 또는 서민의 일상이 보일 뿐이다. 아무리 에도 막부 말기를 배경으로 한다지만 사무라이가 주인공일 만한데, 몰락해 가다가 허망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늙고 힘없는 사무라이 한 명만 보일 뿐이다. 그 자체로 신선하다.
신선한 점은 또 있다.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주인공, 분뇨업자. 상상만 해도 코가 찡그려지는데 이 영화는 상당히 많은 시간과 장면을 할애해 야스케와 츄지가 사람의 똥을 푸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렇게 수거된 인분이 어디로 향해 어떻게 쓰이는지까지도. 제아무리 흑백이라지만 비위가 웬만큼 강하지 않고는 쉽게 즐기지 못할 것이다. 역시 그 자체로 신선하다.
세계를 흐르게 하는 거대 순환 경제
영화는 9개의 단편 챕터로 이뤄져 있다. 서사적으로 완전하게 이어지진 않지만 웬만큼 흘러가는 편이다. 감독이 말하길 장편으로는 투자를 제대로 받을 수 없어 우선 단편 몇 편을 만들 수밖에 없었고 나중에 다른 단편들을 만들어 이어 붙였다. 일반적인 작업 과정과는 반대로 한 것이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훌륭했다.
또한 영화는 흑백의 좁은 화면을 기본으로 거의 모든 챕터의 마지막 장면은 컬러로 보여준다. 1850년대 중반에서 한순간 현대가 되는 것 같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거대 순환을 보여주려는 걸까. 영화를 들여다보면 주요 소재인 인분이 세계 순환의 중심에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사람이 먹고 싼 걸 수거해 농사짓는 데 쓰고 그렇게 태어난 걸 다시 사람이 먹고 싸고…
야스케는 그런 순환 '경제'를 이해한 게 아닌가 싶다. 철학적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지만 경제적으로 이해해 멸시와 조롱을 당하면서까지 분뇨업자로서의 일을 계속해 나가는 게 대단해 보인다. 그는 자신의 일이 세상에 꼭 필요하다는 걸 정확히 인지한 것 같다. 비만 오면 온 동네가 분뇨로 뒤덮이니 분뇨업자가 필요할 테고, 농사하는 데 거름이 필수이니 만큼 분뇨업자가 필요하다.
청춘의 세계, 세계의 청춘
영화를 보고 있으면 분뇨업자 덕분에 세상이 계속 흘러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지속 가능성이라고 할까. 그런가 하면 글도 모르는 무지한 츄지와 사랑에 빠지는 오키쿠를 보면 세상에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야스케 그리고 츄지와 오키쿠, 세 청춘을 응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영화는 시종일관 '똥'으로 적나라하게 화면을 가득 채우는데도 불구하고 신기하게 기분이 좋다. 세 청춘이 내뿜는 화사함이 똥냄새를 이겨내고 또 흑백 화면을 뚫고 나오는 걸까. 그럼에도 바로 그 적나라함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불편한 속을 달랠 수 없고 찡그린 얼굴을 풀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럴 땐 똥을 똥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실제로는 전혀 다른 물질 아니겠는가?
돌아온 오키쿠의 수업에서 승려가 말한다. 세계란 저쪽으로 가서 이쪽으로 돌아오는 거라고 말이다. 즉 순환이라는 것이다. 오키쿠조차 고개를 갸우뚱할 만한 해석인데, 단순히 순환뿐만 아니라 이쪽과 저쪽을 모두 포괄하는 시공간이라는 뜻이기도 할 테다. 그렇다면 제목의 '오키쿠와 세계'는 무얼 뜻할까.
둘이 떨어뜨려 놓은 것 같진 않다. 오키쿠(청춘)의 세계 또는 세계의 오키쿠(청춘)가 아닐까. 1850년대 에도 막부 시대, 비록 다른 세계에 의해 근대화가 시작되고 있었지만 당시 서민들은 세계가 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세계를 언급하고 또 배우는 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자신들이 세계에 속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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