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010' 중계기 1700대…최대규모 피싱 번호조작 일당 적발
서울 일대 원룸에 발신번호 조작 장치 1700여대를 설치해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한 일당이 대규모로 적발됐다.
보이스피싱범죄 정부합동수사단(단장 김수민 부장검사)은 보이스피싱 발신번호 조작장치 운영 조직을 적발해 중국인 A씨(43) 등 조직원 21명을 사기 및 범죄단체가입·활동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20일 밝혔다. 중국(6명)·태국(11명)·남아프리카공화국(3명)·아이티(1명) 등 다국적 외국인으로 구성된 이들 조직은 지난해 5월부터 이달초까지 중국인 총책 ‘골드’가 중국 연길에서 조직한 중계기 운영 범죄집단에 가입해 활동하면서 보이스피싱 범죄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다. 피해자는 170명, 피해금액은 54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보이스피싱을 위한 발신번호 조작 조직 수사에서 21명이나 적발된 건 역대 최대 규모라는 게 합수단 설명이다.
범행에 이용된 변작중계기는 여러 개의 유심칩을 장착, 해외에서 걸려온 070 번호의 전화를 국내에서 온 것처럼 010으로 시작하는 번호로 조작하는 장치다. 합동수사단은 수사 과정에서 서울 관악구와 금천구 일대 원룸에 중계소 11곳과 부품보관소 4곳을 운영하는 사실을 확인하고, 중계기 총 1694대를 압수했다. 유심 8083개, 휴대전화 443대 등도 함께 압수했다. 사용중지된 중계기 784회선의 월 사용료는 7억원, 각종 범행 도구는 16억원 어치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정점에는 총책 골드가 있었다는 게 합수단 설명이다. 골드가 텔레그램을 이용해 범행을 지시하면 관리책·환전책·수당지급책·배달책 등으로 업무를 나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조직원들은 업무 중요도에 따라 매주 50만~100만원을 수당으로 받았다.
수사기관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익명이 보장되는 텔레그램으로만 서로 연락했다. 텔레그램 메시지는 3~5일 간격으로 삭제토록 했다. 조직원들끼리도 서로를 모르게 하기 위해 조직원 숙소와 중계소를 분리, 조직원 1명이 숙소 1곳과 중계소 1~2곳을 관리하는 방법을 썼다. 해당 숙소와 중계소는 1달 간격으로 자리를 옮겼다. 중계기 부품이나 대포 유심 등 범행도구와 수당까지 ‘던지기’ 방식으로 전달했다. 중계소로 쓰던 원룸에선 음식배달·흡연 등을 금지하는 등 검거를 피하기 위한 행동강령도 만들어 활동했다.
총책은 조직원들을 범행 초기 대다수 중국인(조선족)으로 모집했으나, 합수단 등 수사가 이뤄지며 조선족 조직원 모집이 어려워지자 ‘숙소 제공’ ‘고액 수당’ 등을 제시하며 국내에서 정상적인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태국인이나 남아공인 등을 모집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이번 수사에서 중국에 거점을 둔 실제 보이스피싱 조직에 대한 검거는 이뤄지지 않았다. 합수단 관계자는 “중국인 총책 등 해외에 거점을 둔 보이스피싱 조직 수사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보람 기자 lee.boram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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