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김밥 할머니가 일깨운 ‘삶의 온기’

류정민 2024. 3. 20.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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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춘자 할머니가 김밥을 팔기 시작한 건 열 살 무렵이다.

친자식이 없는 박 할머니가 그 많은 자식을 얻게 된 것은 사연이 있다.

박 할머니 선행이 알려지자 사회가 그를 주목했다.

김밥 할머니의 삶에 그 정답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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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춘자 할머니가 김밥을 팔기 시작한 건 열 살 무렵이다. 1929년생인 그는 일제 강점기 시절 장사를 시작했다. 어머니 없이 홀아버지 밑에서 살면서 이른 나이에 돈을 벌어야 했다.

일본 순사들의 눈을 피해 경성역(서울역) 앞에서 시작한 노점상 생활. 세상의 풍파를 견뎌내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였다. 그렇게 장사해서 한 푼 두 푼 모으기까지 힘겨웠던 삶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그에게 10원 동전 하나도 특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한국전쟁 당시 가정을 꾸렸지만 안정된 삶은 지속되지 않았다.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결혼 생활을 접어야 했다. 일그러진 사회 문화의 폭력은 그의 삶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다. 세상을 원망하며 평생을 산다 해도 그에게 뭐라고 하기 어려운 상황. 박 할머니는 다른 선택으로 자기 삶을 개척했다.

"내가 돈 없어 고생했으니 불쌍한 사람한테 줘야 한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자기가 실천하기는 어려운 삶의 철학. 김밥 할머니는 나눔의 행복을 실천한 인물이다.

열 살 때 시작한 김밥 장사는 환갑에 이를 때까지 50년간 이어갔다. 남한산성에서 거의 매일 등산객을 상대로 김밥을 팔았다. 그렇게 일해서 마련한 6억3000만원. 세상이 그를 기억하는 건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라서가 아니다. 그가 모은 재산은 서울에서 번듯한 아파트 한 채를 사기에도 부족한 액수다. 하지만 박 할머니는 세상 누구보다 값지게 땀의 결실을 활용했다.

김밥을 팔아 모은 전 재산을 기부하고 40년간 장애인을 위해 봉사해온 박춘자 할머니가 마지막까지 월세 보증금을 기부하고 세상을 떠났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박 할머니가 지난 11일 세상을 떠나며 생전 밝힌 뜻에 따라 살고 있던 집의 보증금 5천만원을 기부했다고 13일 밝혔다. 사진은 고(故) 박춘자 할머니.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박 할머니를 엄마라고 부르는 이는 열한 명이나 된다. 친자식이 없는 박 할머니가 그 많은 자식을 얻게 된 것은 사연이 있다. 오갈 데 없는 지적 장애인 11명을 자기 집에서 돌봤다. 형편이 풍족해서 그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는 마음이 권하는 대로 실천했을 뿐이다.

장애인 거주 시설인 ‘성남 작은 예수의집’ 건립을 위해 3억원을 수녀원에 기부한 것도 이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어려운 형편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는 학생을 돕겠다고 3억3000만원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기부했다. 평생 모았던 6억3000만원은 그렇게 소중하게 쓰였다.

박 할머니 선행이 알려지자 사회가 그를 주목했다. LG복지재단은 2021년 9월 ‘LG의인상’ 주인공으로 박 할머니를 선정했다. 받은 상금은 5000만원에 달했지만 그 돈마저 기부했다. 당시 사연은 많은 이를 뭉클하게 했고 부끄럽게 만들었다.

박 할머니는 지난 11일 95세의 나이로 고단한 삶을 마감했다. 떠나는 순간 그가 남긴 것은 마지막 재산이었던 월세 보증금 5000만원을 기부해달라는 유언이었다. "국민들에게 온기를 나눠주고 가신 고인의 발자취를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박 할머니 별세를 애도하며 전한 메시지는 여운으로 다가온다. 많은 이가 잊고 있었던 ‘삶의 온기’를 일깨운 박 할머니. 언제부터인가 옳음이라는 단어가, 나눔이라는 단어가 생소해져 버린 사회. 그저 앞만 보며 달리고 또 달리는 우리는 상황의 심각성마저 잊고 지내고 있다.

물질의 풍요로는 채워지지 않는 삶의 갈증을 해소하는 방법. 김밥 할머니의 삶에 그 정답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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