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이권 카르텔·악마·침공’으로 추락하는 과학기술

2024. 3. 20. 11:1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올해 서울대 정시 모집에서 인문대 최초 합격자 중 52%가 '이과생'이었다고 한다.

문과 계열을 '침공(侵攻)'하고 있다는 '이과생'의 정체가 묘하다.

수능에서 '통계와 확률'을 선택하면 '문과생'이고 '기하'나 '미적분'을 선택하면 '이과생'이라는 것이다.

이과생에 대한 비하가 문과 침공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과학자를 연구비 도둑 내몰아
‘문과침공’ 표현도 이과생 비하

올해 서울대 정시 모집에서 인문대 최초 합격자 중 52%가 ‘이과생’이었다고 한다. 인문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생활과학대학의 70.6%와 사회과학대학의 63.8%도 이과생이었다. 지난해 교육부 장관이 대학입시의 가장 심각한 현안으로 지적한 이과생의 ‘문과 침공’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역사 지식’이 부족한 이과생이 늘어나면서 강의실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고 불평하는 인문대 교수도 있는 모양이다.

문과 계열을 ‘침공(侵攻)’하고 있다는 ‘이과생’의 정체가 묘하다. 교육과정을 문·이과 구분이 없는 ‘통합형’으로 바꿨고, 수능도 2021년부터 ‘통합형’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대학의 입시자료만으로는 문과 계열에 합격한 학생의 ‘출신 성분’을 가려내기가 불가능해졌다.

문과 침공은 교육부 장관과 서울대 인문대 교수의 주관적 착시일 가능성이 크다. 수능에서 수학 교과의 선택과목만을 주목한 결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수능에서 ‘통계와 확률’을 선택하면 ‘문과생’이고 ‘기하’나 ‘미적분’을 선택하면 ‘이과생’이라는 것이다. 역사 지식이 풍부한 문과생도 더 높은 표준점수를 받기 위해 기하·미적분을 선택할 수 있다. 실제로 입시학원에서 기하·미적분의 인기가 뜨겁고, 대학에서는 소위 N수생 덕분에 미적분과 코딩 교양과목의 수강생이 넘쳐나고 있다.

‘문과 침공’에는 ‘이과생’에 대한 반(反)교육적인 비하(卑下)의 악취가 진하게 배어있다. 본분인 ‘공돌이’의 길은 제쳐두고 개인적 이익을 챙기기 위해 ‘의대’로 몰려가던 이과생들이 이제는 문과생에게 돌아가야 할 ‘떡’까지 넘보는 패륜적인 일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는 모욕적인 뜻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이과생에 대한 비하가 문과 침공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이과 출신의 과학기술자는 ‘약탈적 이권 카르텔’이 돼버렸다. 국가 발전에 필요한 초격차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혁신·선도형 연구개발(R&D)에 몰두해야 할 과학기술자들이 엉뚱하게도 소중한 국가연구개발비를 나눠 먹고, 갈라 먹는 ‘떼도둑’으로 전락해버렸다는 것이다.

40세를 넘지 못했던 평균수명을 80세로 늘어나도록 만들고, ‘반타작’도 감수해야만 했던 영아 사망률을 세계 최저 수준으로 개선해준 의사의 사정도 참혹하다. 이제는 국민 건강을 볼모로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려는 ‘악마적 범죄집단’이 돼버렸다.

거세게 반발하는 ‘전공의(인턴·레지던트)’와 ‘의대생’을 함부로 악마화해서는 안 된다. 의대 정원을 한꺼번에 65%(2000명)나 확대하는 일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폭거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10년에 걸쳐서 23.5%(1795명)를 늘렸고, 작년에 발표한 영국의 첫해 증원 규모는 고작 2.2%(205명)였다. 의대 증원을 사법시험 폐지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의대의 과도한 증원이 의사 양성 체계와 의료 현장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무너뜨릴 수도 있다.

일방적으로 ‘2035년 1만명 부족’만 외칠 때가 아니다. 응급환자를 비행기로 외국에 보낼 수 있다는 보건복지부의 주장은 황당한 ‘괴담’이다. 국민 건강을 지켜주는 의사의 악마화에 대한 국민적 피로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한 달 전의 여론을 믿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