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 포토카드 속 ‘그 한옥호텔’…외국인 사이에 예약 전쟁이라는데 [신기방기 사업모델]
안채로 들어가기 위해 신발을 벗었다. 적당히 따뜻하게 데워진 온돌방 기운에 마음마저 따듯해진다. 이부자리 주위를 감싸는 고전 장롱과 수묵화, 그리고 책상에 놓인 도자기에 고서, 찻사발 하나도 예사롭지 않다. 그냥 문을 닫고 눈을 감으면 고요하고 적막한 분위기가 명상실을 방불케 한다.
‘옛것을 누리는 맑고 편안한 마음이 절로 드는 곳’. 국내 1호 한옥호텔 ‘락고재’ 풍경이다. 락고재는 서울 북촌에 11실 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140년 된 한옥을 인간문화재가 정영진옹이 개조, 국내 최초의 프리미엄 한옥 스테이로 진화시켰다.
객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막걸리 스파, 명상 대청마루, 차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더리빙룸 코리안 티하우스’. 한국 식음 문화 체험관인 ‘락고재 컬쳐 라운지’ 등 아기자기한 공간까지 더해지면서 실제 이용객은 국내보다 해외 쪽이 더 많다고. 평균 투숙률은 90%, 사실상 만실이다.
사실 특급 호텔 하면 대규모에 화려한 인테리어, 고가 가구와 미술품, 미쉐린급 레스토랑과 멤버십 피트니스센터를 떠올리기 마련. 락고재는 오히려 소규모, 한옥, 전통문화 체험 공간으로 ‘업의 재정의’를 했는데 시장에 먹힌 케이스다. 블랙핑크·장근석 등 유명 인사 방문은 기본, 수많은 영화·드라마·뮤직비디오의 성지로도 유명하다. 그러다보니 1박 평균 30만원대임에도 국내외 2030 젊은 고객이 ‘힙’한 공간으로 인식, 예약 전쟁을 벌일 정도다.
평생 이 공간 개발에 인생을 걸고 있는 이는 안영환 대표(66). 건축 일을 하다 한옥의 매력에 빠져 1994년 국내 최초 고택 체험 여행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후 다양한 한옥을 연구하며 장점을 모아 2003년 지금의 락고재를 설립했다. 최근에는 아들 안지원 부대표가 가업을 잇고 있다.
‘옛것을 누리는 집’이라는 의미를 지닌 락고재 한옥 컬렉션(이하 락고재)은 안영환 회장의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출발했다. “한국 문화의 정체성이 무엇이냐. 규모는 중국이 크고 디테일은 일본에 밀린다”라는 외국인의 말을 듣고 한국의 정체성과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리겠다는 포부를 갖게 됐다.
Q. 한국의 정체성이란.
답은 ‘풍류’랑 ‘정’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느낄 수 없는 한국만의 정체성을 전 세계에 알릴 가장 좋은 방법은 한옥에서 하룻밤을 지내보며 문화를 체험해보는 것이라 생각했다. 예를 들면 막걸리로 목욕을 즐기는 막걸리 스파, 몸에 좋은 황토 찜질방 체험, 무료 한복 대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차 예절을 배우는 차 수업이나 한국식으로 재해석한 애프터눈 티 코스 락고재 찻상, 한국 전통주를 즐길 수 있는 전통주 체험, 한식 다이닝 코스 등 다채롭게 프로그램을 운영하다 보니 더 호응이 뜨겁다. 감동받은 몇몇 외국인 투숙객은 직접 그린 그림이나 편지를 해외 우편으로 보내오기도 한다.
락고재가 국내 최초 한옥 호텔이다 보니 미쉐린 가이드·루이비통 시티 가이드·모노클 가이드·론리플래닛 등 유명 글로벌 여행 가이드북에 소개됐다. 보그·엘르와 같은 패션 잡지 촬영 장소로도 많이 이용됐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직접 예약을 하는 비중이 100%다. 방송에서도 입소문이 나 자주 출연했다. 블랙핑크 ‘2020 써머 다이어리 인 서울’ DVD와 아이돌 그룹 샤이니 ‘헬로베이비’, 가수 박재범의 뮤직비디오에 락고재가 등장했다. 드라마 ‘예쁜 남자’ 촬영을 위해 배우 장근석이,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추사랑네 가족이 방문하기도 했다. 고객 대부분은 SNS(페이스북·인스타그램)나 검색엔진에서 한국 여행·숙소·전통·한옥 호텔과 관련된 키워드를 통해 찾아온다. 한 고객은 락고재 SNS를 팔로우해 사진이나 소식을 관심 깊게 받아보다가 한국 여행을 결정하기도 했다.
Q. 여행, 호텔업계는 코로나19가 직격탄이었다. 이전과 이후 달라진 트렌드가 있다면.
코로나 전에는 단체 가이드 관광이 다수였다면 최근에는 자유 관광이 트렌드인 것 같다. 단체 투어 형식 관광도 개인 맞춤·체험 중심 여행이 인기다. 또 이전에는 단기 여행이 주였다면 요즘은 꽤 긴 기간의 장기 여행을 온다. 코로나를 계기로 ‘평균 실종’이 이뤄졌다는 생각도 든다.
트렌드가 서울 중심 여행에서 이제는 안동·경주·부산·제주 등 서울 외 지역으로 확장된 모양새다. 하회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추진한 계기다.
실은 락고재는 2010년에 이미 안동 하회마을 내에 자리를 잡았다. 락고재 하회 초가 별관은 잘 보존된 기존 초가집을 한옥 호텔로 이용해왔다. 그런데 한옥 개조가 아닌, 락고재만의 한옥을 처음부터 지어보고 싶었다. 이런 생각으로 안동 하회마을 내 다른 부지에서 15년 동안 락고재 하회 기와 본관을 짓게 됐다. 검소하고 단아한 민가 양식부터 화려한 궁궐 양식까지, 한국 전통 건축물의 멋을 완벽하게 만끽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호텔을 한 바퀴 돌다보면 조선시대 건축물과 함께 신라시대 주춧돌, 고려·조선시대 석물 등 고미술품을 즐길 수 있다. 단순 호텔을 넘어 하나의 역사 마을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 차별점인 것 같다.
Q. 앞으로 어떤 곳으로 기억되게 하고 싶나.
다른 나라에서는 느낄 수 없는 한국만의 정체성과 한옥의 멋을 느끼게 하고 싶다. 한옥의 락고재는 단순 숙박을 넘어 한옥의 변천·진화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다. 우리 문화의 발전과 전통문화의 해외 선양을 통해 사회 일반 이익에 기여하고자 한다. 앞으로도 이 진심을 손님 한 명 한 명에게 모두 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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