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시작된 인간성을 향한 고찰

안지훈 2024. 3. 20.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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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훈의 뮤지컬 읽기] 6년 만에 돌아온 프랑스 대작 <노트르담 드 파리>

[안지훈 기자]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공연사진
ⓒ 마스트엔터테인먼트
 
거대한 종에 매달려 공중에서 묘기를 선보이고, 누군가는 벽을 오르내리며, 이곳저곳에서 비보잉, 아크로바틱 등 다양한 댄스가 펼쳐진다. 서커스를 보는 듯하다. 동시에 각 캐릭터에 분한 배우들은 멈추지 않고 노래를 한다. 6년 만에 한국어 공연을 선보이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이야기다.

배우와 무용수가 명확히 구분되어 있는 것은 프랑스 뮤지컬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미국과 영국 뮤지컬에 훨씬 익숙한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새로운 볼거리이자, 신선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노트르담 드 파리>는 모든 대사를 노래로 처리하여, 오직 노래로만 진행되는 '성 스루(sung through)' 뮤지컬이기도 하다.

1998년 프랑스에서 첫 선을 보인 이후 23개국에서 15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세계적인 뮤지컬의 반열에 올라섰고, 그중 한국에서도 100만 관객을 이미 돌파하며 큰 흥행에 성공했다. 이번에 여섯 번째 시즌을 맞이한 <노트르담 드 파리>는 콰지모도를 300회 이상 연기한 윤형렬에 더해 양준모와 정성화가 성당의 꼽추 종지기 '콰지모도' 역에 캐스팅되었고, 노트르담 대성당의 주교 '프롤로'를 이정열, 민영기, 최민철이 연기한다. 김승대, 백형훈, 이재환(VIXX)이 파리의 근위대장 '페뷔스'에 분하며, 콰지모도와 프롤로, 페뷔스의 사랑의 대상이 되는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 역에는 유리아, 정유지, 솔라(마마무)가 캐스팅되었다. 여기에 마이클 리, 노윤, 박시원, 장지후 등 실력파 배우들도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오는 3월 24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하며, 이후에는 부산(3/29~4/7)과 대구(4/12~21)를 거쳐 경기도 이천(4/26~28)에서 지방공연을 펼친다.

혼돈의 시대, 인간다움은 무엇인가?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공연사진
ⓒ 마스트엔터테인먼트
 
그 유명한 '대성당의 시대'로 <노트르담 드 파리>의 1막은 시작된다. 여기엔 다음과 같은 가사가 나온다.

"대성당들의 시대가 무너지네
성문 앞을 메운 이교도들의 무리"

2막을 여는 넘버 '피렌체'에는 또 다음과 같은 가사가 등장한다.

"새로운 사상들 모든 걸 바꿔놓을
언제나 작은 것이 큰 것을 허물고
(···) 우리는 서 있지 불화의 시대 앞에"

여기서 우리는 <노트르담 드 파리>의 시대적 배경이 상당히 혼란한 시기임을 짐작할 수 있다. 흑사병으로 전 유럽이 혼돈을 겪었고, 종교가 타락하며 사회 질서가 무너졌다. 신 중심의 사회에서 인간의 비중을 늘려가려는 시도가 빗발쳤고, 다양한 가치관과 도전들이 잇따랐다. 사회를 지배하는 규범은 점차 자리를 잃어가고, 욕망이 그 빈 틈을 채웠다. 일종의 '아노미(anomie)' 상태라 할 만하다.

거리를 유랑하는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는 그 욕망의 대상이다. 흉측한 외모를 가진 곱추이자 노트르담 대성당의 종지기인 '콰지모도'는 형틀에 묶인 자신에게 물을 건넨 에스메랄다를 단숨에 사랑하게 된다. '프롤로' 주교는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에스메랄다를 향한 욕망과 집착을 떨쳐내지 못한다. '페뷔스' 역시 연인 '플뢰로 드 리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스메랄다를 향한 감정에 휘둘린다.

상황이, 시대가, 각자가 간직한 신념이 허락하지 않은 사랑이었다. 이들은 넘버 'Belle(아름답다)'에서 각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의 주체에게 자신의 욕망을 고백한다. 프롤로는 '노트르담(Notre-Damn, 성모 마리아)'에게, 페뷔스는 자신의 연인에게. 그러나 결국 이들은 '루시퍼'를 부르짖으며 사랑에 대해 허락을 구한다.

"오 루시퍼
오 단 한 번만 그녀를 만져볼 수 있게 해주오 에스메랄다"

이들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난다. 에스메랄다를 향한 세 남자의 감정이 뒤엉켜 에스메랄다는 결국 교수형을 당한다. 집시 출신으로 비주류, 소수자의 위치에서 지배적인 가치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춤추던 여인은 파리 한복판에서 쓰러진다. 그녀를 가질 수 없다는 걸 안 프롤로는 그녀의 운명을 짓밟았고, 페뷔스는 더이상 그녀 곁에 없었다.

에스메랄다의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 단 한 명만 울부짖으며 그녀 곁을 지켰다. 가장 순수하게 그녀를 사랑했던 콰지모도였다. 콰지모도는 그녀를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진 순간을 회상하며 자유롭게 춤추던 에스메랄다를 갈망한다(넘버 '춤을 춰요 에스메랄다').

풍성한 음악적 힘과 화려한 몸짓 뒤에서 <노트르담 드 파리>는 심오한 질문을 함께 던진다. 혼돈의 속에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인물들의 엇갈린 운명을 통해 생각해보게끔 한다. 아울러 자유로운 영혼이 스러져가는 모습을 전면에 내보이며 시대에 의해 희생되는 존재는 누구인지 조명한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공연사진
ⓒ 마스트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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