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그 강을 또 건너는가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기자]
▲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시청에서 열린 외신기자 신년 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장관이 앞장섰던 이승만기념관 건립 운동이 오세훈 서울시장이 앞장서는 양상으로 조금씩 바뀌고 있다. 박민식 전 장관이 '공과 과를 함께 보자'며 다소 톡톡 튀는 방식으로 부각시킨 이 극우운동의 선두에 지금은 어느덧 오세훈 시장이 서 있다.
지난해 9월 이승만대통령기념재단은 기념관 건립을 위한 국민모금운동을 개시했다. 그로부터 두 달이 안 된 11월 2일, 오세훈 시장은 건립 기금 400만 원을 기부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500만 원을 낸 이튿날의 일이다.
일주일 뒤인 9일, 그는 이승만대통령기념재단 관계자들에게 '송현공원 내 이승만대통령기념관 건립 검토'라는 파워 포인트 자료를 브리핑했다. 경복궁 동편의 송현공원에 기념관을 유치하는 방안을 서울시장이 재단 관계자들 앞에서 브리핑한 것이다. 상당히 적극적인 모습이었다. (관련 기사: '송현공원 내 이승만기념관 건립'에 숨은 의미, https://omn.kr/26cx4)
오 시장은 다큐영화 <건국전쟁> 상영 19일 차인 지난달 19일에는 페이스북을 통해 의지를 재차 표명했다. 이 글에서 그는 "피해야 할 두 마리 개(견)가 있다는 진중한 우스개가 있습니다"라고 한 뒤 "바로 편견과 선입견입니다"라고 말했다. '두 마리 견(犬)'으로 이승만을 대하지 말자는 취지의 주장이 그 뒤를 이었다.
그는 이승만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도 없다며 "이런 사실조차 인정하지 못하는 편견의 사회를 우리의 자녀들에게 물려줘선 안 됩니다"라고 강조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균형 잡힌 시각으로 초대 대통령의 공과를 담아낼 수 있는 기념관 건립이 꼭 필요한 시점입니다"라는 말로 그의 글은 끝났다.
이런 의지 표명에 대해 일반 시민들뿐 아니라 불교계까지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2월 28일에는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가 반대 성명을 냈고, 이달 5일에는 조계종 중앙종회 종교편향불교왜곡대응특위가 시장에게 반대 의견을 전하기로 결의했다.
종교계까지 가세하는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전개되고 있지만, 오 시장은 뜻을 굽힐 생각이 없어 보인다.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가 14일 배포한 설명자료에 "기념관의 송현동 부지 입지에 대해 결정된 바 없다", "이승만대통령기념관 건립은 기념재단에서 추진하는 사업으로, 이 사업의 규모·장소·시기·조성절차 등은 기념재단과 정부의 방침이 우선돼야 하는 것", "기념재단 측에서 기념관 입지 등과 관련해 우리 시에 공식 제안하거나 협의한 바는 없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런 입장 표명은 정부와 기념재단의 방침에 따라 서울시가 사업을 진행할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오세훈 시장은 논쟁에 뛰어들었다가 낭패를 본 경험이 있다. 2006년에 이어 2010년에 서울시장 재선에 성공한 그는 무상급식 반대론을 주도하며 주민투표까지 벌였다가 2011년 8월 26일 사임을 표명하는 파국을 맞았다.
위 페이스북 글에서 그는 "우리의 자녀들"을 거론하며 이승만기념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때도 그는 아이들의 미래를 거론하며 '무상급식으로 인해 국채를 발행하면 결국 급식을 받은 아이들이 자라서 갚아야 한다'는 말로써 반대론을 전개했다.
▲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열린송현녹지광장에서 열린 이승만기념관 건립추진 규탄 기자회견에서 청년대학생겨레하나 관계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23일 서울시의회 임시회 시정질문에서 이승만기념관 건립 장소로 송현광장을 언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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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시장이 부각되기 전에 이 논쟁에서 시선을 끈 사람은 2006년에 이어 2010년 지방선거에서도 승리한 김문수 경기도지사였다. 김문수 지사는 무상급식을 표방하는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에 맞서 2009년부터 이 논쟁에서 두각을 보였다.
김문수는 무상급식에 한 푼도 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해 7월 22일 KBS 라디오 '열린 토론'에서 그는 경기도의회가 도교육청의 급식 예산을 전액 삭감하는 것에 찬성했다. 그러면서 "가난한 학생부터 무료급식을 확대하는 것이 맞다"며 선별직 복지를 내세웠다.
그해 12월 2일 자 <경인매일> '학교 무료급식 정책은 대표적인 포퓰리즘'에 따르면, 그는 그달 2일 도청 직원 월례조회 때 "학교는 밥도 중요하지만 선생님이 제일 중요하다"며 "학교가 무료 급식소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또 "훌륭한 선생님 모시기, 과학 기자재 구입하기 등에 예산을 합리적으로 배분해 써야 하는데 온통 무료급식 해서 밥 먹이고 치우자고 한다"라며 "이것이 대표적인 포퓰리즘이다"라고 폄하했다.
이렇게 김문수가 두드려졌던 논쟁이 2010년 6·2지방선거를 계기로 오세훈이 두드러지는 논쟁으로 변모했고, 오세훈은 무상급식 찬반 주민투표를 벌였다가 투표율 미달로 주민투표가 무산되면서 서울시를 나가게 됐다. 무상급식 찬성론이 이미 대세가 된 현실을 무시하고 거대한 태풍에 맞섰다가 허무한 결말을 맞이한 것이다.
무상급식 논쟁에서 오세훈 시장보다 먼저 부각됐던 김문수 지사는 별 탈 없이 태풍을 피해 갔다. 6·2 지방선거로 경기도의회가 여소야대가 되고 도의회가 도지사의 중점 사업에 대한 예산을 삭감하자, 그는 '무상급식' 대신 '친환경 급식'을 내세우며 무상급식을 사실상 수용했다.
무상급식 논쟁과 이승만기념관 논쟁의 공통점은 시대적 대세와 관련된다는 점이다. 오세훈 시장이 재선 1년 만에 허무하게 물러난 것은 1990년대부터 서서히 형성된 학교급식에 관한 사회적 공감대에 정면으로 맞섰기 때문이다.
이승만에 관한 우리 사회의 공감대는 이미 64년 전에 형성됐다. 5·18민주화운동이 44년이나 지났지만, 6월항쟁이 37년이나 지났지만, 촛불혁명이 8년이나 지났지만, 이런 역사적 사건들은 아직 헌법에 반영되지 않았다. 이에 비해 4·19는 3년 뒤의 1963년 헌법에 들어갔다. 이승만을 몰아낸 것이 참 잘한 일이라는 공감대가 비교적 일찍 형성됐던 것이다.
1963년 헌법 전문은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4·19 의거와 5·16혁명의 이념에 입각하여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함에 있어서"라고 선언했다. 박정희 정권은 유신체제를 성립시킨 1972년 헌법에서도 '4·19 의거' 표현을 유지했다. 이승만에 대한 항거가 정당하다는 공감대가 시대적 대세가 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물론 모든 보수정권이 4·19를 존중한 것은 아니다. 전두환 정권이 만들어낸 1980년 헌법에는 4·19가 들어가지 못했다. 이 헌법은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에 입각한 제5공화국의 출발에 즈음하여"라고 선언했다. 4·19를 빼먹고 3·1운동과 제5공화국을 곧바로 연결지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7년 뒤 6월항쟁으로 전두환을 심판하고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1987년 헌법에 넣었다. 이승만에 항거한 4·19를 '불의에 항거한 4·19'로 표현함으로써 '이승만=불의'의 등식을 만들어냈다.
이승만에 대한 항거의 역사적 의의를 감추고 이승만에 관한 공감대에 영향을 주고자 하는 시도는 전두환 정권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반역사적인 도전에 오세훈 시장이 발을 담갔다. 윤석열 정권은 이 일을 반드시 성사시킬 것처럼 말하지만, 지난 2년간 각종 정책 집행에서 나타난 윤석열 정권의 리더십을 감안하면 기념관 성사는 결코 녹록지 않다.
반역사적일 뿐 아니라 성사 가능성도 불투명한 일에 오세훈 시장이 서울시민들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발을 담갔다. 13년 전에 시대적 대세를 거역했다가 역풍을 맞았던 그가 이번에도 서울시장 명찰을 가슴에 붙인 채 동일한 우를 범하게 되지 않을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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