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일훈 일본증권경제연구소 박사 "조사·과징금까지 원스톱으로"[주가조작과의 전쟁]
일본, 검찰 →증감위 중심 조사
한국 개인투자자 비중 높아…보호 장치 강화해야
"불공정거래의 신속한 조사를 위해선 한 기관이 주도적으로 사건 조사 및 과징금 권고 결정까지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고일훈 일본증권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12일 아시아경제신문과 진행한 화상 인터뷰에서 "일본의 경우 증권거래감시위원회(SESC)가 주도적으로 과징금 제도를 이용해 신속하게 법 집행을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고일훈 연구위원은 한국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일본 도쿄대에서 상사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지난해 1월부터 도쿄 니혼바시에 있는 일본증권경제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자본시장을 경험하고 목도한 셈이다.
日, 증감위 중심으로 강제조사권한 행사
그는 미공개정보 이용, 부정거래, 시세조종 등 3대 불공정행위와 관련해 한국과 일본의 법체계는 유사하나 집행에서 차이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조사의 초동단계에 증감위 중심인 시장분석심사과가 모든 정보를 수집 분석해 거래조사과와 특별조사과 등의 조사 부서에 이를 할당한다. 검찰 중심의 조사체계에서 증감위(행정) 중심의 조사체계로 변화한 것이다.
반면 한국은 불공정거래를 제재할 때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 자문기구인 자본시장심의원회에 상정해 심의를 거친 뒤 증선위 의결을 거쳐 최종적으로 조치하는 형태다. 증권선물위원회와 자본시장조사심의원회에서 동일한 내용에 대해 두 번의 심의를 받기 때문에 제재를 가하려면 처리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의사결정 구조를 갖고 있는 셈이다. 처리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이 과정에서 증거 인멸의 우려, 정보 노출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는 "금융감독원이 조사하게 되는 경우 강제적 성격이 있는 영치권, 현장조사권 및 압수·수색권이 없어 적시에 적법한 증거를 모두 획득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며 "반면 일본은 일본거래소그룹(JPX)-증감위 두단계이고 증감위가 모든 강제조사권한을 가지고 조사 진행 후 바로 조치를 취한다"고 지적했다.
韓, 행정조사 인력 증원과 과징금 등 처벌 병용해야
그는 금감원과 한국거래소의 시장감시위원회에 속한 행정조사 인력도 증원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고 연구위원은 "한국은 금감원과 시감위 소속 행정조사 인력의 증원이 필요하다"며 "일본의 경우 조사만 담당하는 행정 인력 규모가 한국의 두 배에 달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조사 인력 규모에 한계가 있다 보니 한국의 불공정거래 제재 시스템은 사전 적발보다는 증권 범죄가 발생한 뒤 조치가 이뤄지는 '사후규제'의 성격이 강하다. 그는 "사전에 불공정행위를 많이 적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좋으나 조사인력상 한계가 있으니 강한 처벌을 통해 위법행위를 일반적으로 억제하는 것도 병용할 필요가 있다"며 "이러한 점에서 강력한 과징금은 위법행위 억제력 측면에서 좋은 효과가 기대된다"고 했다.
한국 금융당국은 자본시장 체질 개선을 위해 불공정거래 행위로 얻은 부당이익 등에 대해 최대 2배의 과징금 제재를 신설했다. 올해 1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 중이다. 신고 포상금도 기존 20억원에서 30억원으로 늘렸다. 일본은 이미 2005년부터 과징금 제도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그는 "한국은 금융당국과 수사기관의 입장 차이로 제도 도입이 늦은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일본의 경우 3대 불공정거래의 경우 경제적 이득액으로 과징금을 산정하기 때문에 위법행위 억제 효과가 크지 않다는 비판은 있다"고 전했다.
韓, 높은 개인투자자 비중으로 리딩방 사기 횡행
한국은 자본시장에서 개인투자자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70%에 육박하기 때문에 일반투자자 보호가 더 강력히 이뤄져야 한다는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주식 투자 등과 관련된 리딩방 사기는 한국에서 유독 횡행하고 있는 사기 유형으로 일본에선 찾아보기 어렵다고 했다. 자본시장을 구성하는 투자자 비중 차이 때문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한국의 경우 전체 투자자 중 개인투자자 비중이 64%에 달하는 반면 일본은 17.6%에 그친다. 초고령화 시대에 진입한 일본은 투자보다는 저축에 대한 선호가 강하고, 자산을 축적한 60대 이상의 고령층은 직접 투자보다는 패시브 펀드를 통한 간접투자를 주로 한다. 고 연구위원은 "한국은 개인투자자 비중이 높기 때문에 리딩방 등 사기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에 프로투자자가 아닌 개인투자자를 보호하는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이는 자본시장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고 결국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와도 직결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韓, 펀드나 보호센터 설립 등 보상 지원 필요
피해자를 위한 구제방안이 없다는 점에 주목하며 과징금 펀드를 조성하거나 투자자보호센터를 설립해 구제 절차를 도와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했다. 그는 "한국은 형식적으로 증권 관련 집단소송이 존재하지만, 제소 요건이 지나치게 엄격해 제대로 이용되지 않고 있다"며 "미국의 페어펀드(미국 연방증권법 위반행위 사건 조사결과에 따라 환수한 부당이득(disgorgement) 또는 민사제재금(civil penalty) 등을 국고에 귀속시키는 대신 투자 피해자에게 배분하기 위한 목적의 펀드)처럼 과징금을 활용한 펀드를 조성해 피해자 구제를 돕거나 대만의 증권 및 선물 투자자 보호센터(SFIPC)와 같은 투자자 보상 지원을 담당하는 센터를 설립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SFIPC는 특정 기업이 회사법이나 증권 규정을 위반했을 경우 20명 이상 일반주주를 대신해 해당 이사회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진행한다.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투자자를 모아 중재자 역할을 하고 집단 보상을 요구하며 민사소송도 진행한다.
편집자주 - 주가조작 관련 범죄 중 역대 가장 큰 규모(부당이득 합계 7305억원)의 '라덕연 게이트'가 발생한 지 1년(2023년 4월24일)이 되어가고 있으나, 여전히 피해자들의 악몽은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 자본 시장에 실효성 있는 피해자 방안은 없습니다. 소송밖에는 답이 없으나 비용 부담과 피해입증 어려움으로 엄두조차 내지 못합니다. '라덕연 게이트'로 형사처벌의 한계점을 보완하고 실효성 높은 금전적 제재를 도입한 자본시장법 개정은 의미가 크지만 다양한 형태로 지속해서 증가하는 증권 범죄를 근절하려면 이를 효율적으로 적발·조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신속·엄정한 제재를 위한 추가 제도개선이 필요합니다. 아시아경제 증권자본시장부 특별취재팀은 해외 자본시장 선진국의 제도를 살펴보고, 증권 범죄를 억제하기 위해 우리 시장의 과제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점검해봅니다. 또한 지능적·조직적인 범죄행위가 발생하는 만큼 투자자의 피해구제를 위한 실효성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미공개정보 이용, 부정거래, 시세조종, 보고의무 위반 등 각종 불공정 거래와 관련해 다양한 관점에서 집중적으로 보도할 예정입니다. 자본 시장 범죄 근절을 위한 종합 대응 방안 마련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제보(lsa@asiae.co.kr) 부탁드립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팀장 이선애 부장 △김민영 황윤주 차민영 김대현 기자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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