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페어펀드, 작년 피해자들에게 9억3천만달러 돌려줘"[주가조작과의 전쟁]

차민영 2024. 3. 2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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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⑸'한국판 페어펀드' 도입 필요성
박준선 제주대 로스쿨 교수 인터뷰
실질적인 피해 구제…법 개정으로 단초 마련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2022회계연도에 총 64억3900만달러를 '페어펀드(공정기금)'로 적립해 9억3700만달러를 피해자들에게 배분했다. 이듬해인 2023회계연도에도 총 49억4900만달러를 적립해 이 중 9억3000만달러를 피해자들에게 돌려줬다. 2년 연속 1조원을 웃도는 금액을 지급한 것이다. 페어펀드는 미국 연방증권법 위반행위 사건 조사결과에 따라 환수한 부당이득(disgorgement) 또는 민사제재금(civil penalty) 등을 국고에 귀속시키는 대신 투자 피해자에게 배분하기 위한 목적의 펀드다. 한국에도 자본시장의 불공정행위와 관련해 과징금 제도가 존재하지만, 주가조작 피해 보상금으로 사용되지 않고 국고로 전액 환수된다. 실질적인 피해자 구제를 위해 '한국판 페어펀드' 도입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박준선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는 19일 아시아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페어펀드는 부당이득 환수금과 민사제재금을 재원으로 하기 때문에 책임재산을 확보할 수 있다"며 "이는 실질적인 피해자 구제에 도움을 줄 수 있고 SEC의 민사제재금 부과 조치에도 정당성을 부여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미국 로스쿨 재학 당시 SEC에서 법무인턴으로 근무한 바 있다.

박준선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준선 교수는 최근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한국판 페어펀드 제도 도입 물꼬가 틔워졌다고 봤다. 올해 1월19일부터 시행된 개정안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3대 불공정거래(미공개정보 이용·시세조종·부정거래)에 대한 과징금 제도를 신설했다. 기존에는 이에 대해 형사처벌만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부당이득의 최대 2배 또는 최대 40억원까지 과징금 부과가 가능하다.

박 교수는 "과거에는 3대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해 과징금 부과 규정이 없어 미국의 페어펀드 같은 제도는 도입이 어려웠으나, 개정 자본시장법에서는 3대 불공정거래에 대해 과징금을 신설했기에 기본 토대는 갖추어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민사구제 절차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겠지만, 페어펀드의 주요 재원인 과징금 부과 근거가 마련된 이상 한국에도 충분히 도입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미국 SEC는 우리나라의 과징금 성격인 민사제재금을 적극적으로 부과하고 있다. SEC는 불법적인 경제적 이익을 박탈해 불공정거래행위를 효과적으로 억지하기 위해 부당이득 환수금보다 민사제재금이 많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례로 2022회계연도에만 민사제재금으로 42억달러를 부과했다. 당해 부당이득반환금액(22억달러)의 거의 두 배 규모다. 법 위반으로 얻는 잠재적 보상이 잠재적 위험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박 교수는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행위를 사전에 억제하려면 그런 행위로부터 얻은 경제적 이익을 누릴 수 없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확실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잠재적 불공정거래 행위자들이 경제적 이익도 얻을 수 없다는 인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위법행위가 점차 줄어든다"고 재차 강조했다.

편집자주 - 주가조작 관련 범죄 중 역대 가장 큰 규모(부당이득 합계 7305억원)의 '라덕연 게이트'가 발생한 지 1년(2023년 4월24일)이 되어가고 있으나, 여전히 피해자들의 악몽은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 자본 시장에 실효성 있는 피해자 방안은 없습니다. 소송밖에는 답이 없으나 비용 부담과 피해입증 어려움으로 엄두조차 내지 못합니다. '라덕연 게이트'로 형사처벌의 한계점을 보완하고 실효성 높은 금전적 제재를 도입한 자본시장법 개정은 의미가 크지만 다양한 형태로 지속해서 증가하는 증권 범죄를 근절하려면 이를 효율적으로 적발·조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신속·엄정한 제재를 위한 추가 제도개선이 필요합니다. 아시아경제 증권자본시장부 특별취재팀은 해외 자본시장 선진국의 제도를 살펴보고, 증권 범죄를 억제하기 위해 우리 시장의 과제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점검해봅니다. 또한 지능적·조직적인 범죄행위가 발생하는 만큼 투자자의 피해구제를 위한 실효성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미공개정보 이용, 부정거래, 시세조종, 보고의무 위반 등 각종 불공정 거래와 관련해 다양한 관점에서 집중적으로 보도할 예정입니다. 자본 시장 범죄 근절을 위한 종합 대응 방안 마련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제보(lsa@asiae.co.kr) 부탁드립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팀장 이선애 부장 △김민영 황윤주 차민영 김대현 기자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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