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투표함에 익숙한 러…'한국은 다 가린다'하니 이해 못해"
" 러시아인들은 투명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펼쳐서 넣는데 크게 신경을 안 쓰더군요. "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압승으로 끝난 사흘 간의 러시아 대통령 선거를 참관한 문준일 원광대 동북아인문사회연구소 교수가 19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러시아 대선의 이색적인 풍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 당국은 이번 대선을 앞두고 국제 참관인으로 미국·독일·스페인 등 100여 개국에서 각각 2~10명씩 전체 수백명을 초청했다.
한국인으론 문 교수와 비정부기구(NGO) 활동가 등 2명이 국제참관인으로 초청됐다. 문 교수는 지난 15~17일 러시아 서남부 볼고그라드주(州)의 투표소 10여곳을 돌아다니며 선거를 지켜봤다.
문 교수는 전화 통화에서 "투명 투표함에 기표한 용지를 펼쳐서 넣는 사람이 많았는데, 러시아인들은 서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며 "기표도 도장이 아닌 볼펜으로, 동그라미(o)·엑스(X)·브이(V) 등 다양하게 표시했다"고 전했다.
이어 "한국에선 기표용지도 안 보이게 접고, 제공된 도장으로 기표한다고 이야기 했는데, (러시아인들은) 이해를 못 하더라"고 덧붙였다. 이런 러시아의 선거 모습에 서방은 사실상의 공개투표라고 비판했지만, 러시아 내에선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러시아는 선거의 공정성을 홍보하기 위해 국제 참관인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문 교수는 "국제 참관인 제도는 유엔이 처음 만들었는데, 서방에선 민주주의가 정착됐다고 여겨 시행하지 않지만 러시아·벨라루스·카자흐스탄 등 일부 구소련 국가의 대선·총선에선 계속 시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문 교수는 약 10년 정도 러시아에 머물렀다. 주한 러시아 대사를 초청해 학술대회를 여는 등 러시아와 인연이 있다. 문 교수는 지난 1월 러시아 측으로부터 국제 참관인 제의를 받았고, 러시아인의 의식과 사회문화 등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 수락했다고 밝혔다.
문 교수는 이번 러시아 대선은 선거구마다 선거위원회위원장, 부위원장, 정당과 사회단체에서 나온 참관인 등이 임명되는 등 나름대로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고 말했다. 투표소에선 여권을 확인하고 선거인 명단을 대조해 투표용지를 배부했다.
문 교수는 건강상의 이유로 투표소 이동이 어려우면 선거관리위원이 방문해서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받아오는 점이 이색적이라고 꼽았다. 또 투표용지에 대선 후보 4명의 이력이 나열돼 있어 A4 사이즈보다 크고, 우측 상단에 위조 방지를 위한 홀로그램 등이 있는 것도 특이했다고 밝혔다.
문 교수는 "서방 선거와는 다른 부분이 많은 데다 푸틴 대통령의 높은 득표율(87%)을 보고 부정선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서 "그런데 이곳에서 직접 보니 러시아 일반 국민 대부분이 푸틴 대통령에게 투표한 건 사실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러시아 대중이 왜 푸틴 대통령에게 열광하는 지를 따져보고 대응하는 게 합리적일 수 있다"면서 "러시아를 이해하는 데 이번 참관이 큰 도움이 됐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이 취해야 할 자세 등에 대해서 연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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