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압 의혹 수사에 또 외압?…이종섭 논란, 6개월의 진실은

김준영 2024. 3. 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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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이종섭 주호주대사 수사와 관련한 논란이 4·10 총선을 3주 앞두고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이종섭 주 호주대사. 사진은 국방부 장관이 던 지난해 9월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모습. 뉴스1

이 대사는 국방부 장관 시절인 지난해 7월 19일 집중 호우 실종자를 수색하다 급류에 휩쓸려 숨진 고 채수근 해병대 상병 사건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으로 공수처 수사를 받고 있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으로부터 같은 해 7월 30일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등 8명에게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경찰에 이첩하겠다는 보고를 받고 결재한 뒤 이튿날 재검토시킨 혐의(직권남용)로 지난해 9월 고발됐기 때문이다.

이 대사는 “결재 다음 날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지난해 8월 국회 국방위원회)고 말했지만, 대통령실이 관여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박정훈 전 단장이 지난해 8월 국방부 검찰단에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VIP(윤 대통령)가 격노하면서 장관(이 대사)과 통화한 후 이렇게 되었다”고 말했다고 쓴 사실관계 진술서를 제출하면서다. 다만 김 사령관과 이 대사는 모두 “대통령실에서 어떠한 지침도 받은 적 없다”는 입장이다.

①野 “수사 외압 수사에 외압”=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9월 공수처에 고발한지 6개월 만에 이 사건이 총선 쟁점으로 부상한 건 지난 4일 주호주대사 임명 직후 ‘지난해 12월 이래 출국금지 상태였다’는 사실이 지난 6일 언론에 공개되면서다. 이 대사는 이튿날인 7일 공수처에서 4시간가량 조사를 받았다. 이에 법무부는 8일 출국금지를 해제했고, 이 대사는 10일 호주로 떠나 정식 부임하며 논란은 커졌다.

총선을 앞둔 야권은 이를 정부 차원 의혹으로 확대하고 있다. 민주당의 총선용 비례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은 19일 “윤석열 정부는 무엇이 두려워서 수사를 앞둔 이 대사를 해외로 내보낸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수사 외압 의혹을 가진 피의자가 수사를 받자, 대통령실이 또다시 외압으로 수사를 막으려는 것”이라며 “다시 말해 ‘수사 외압 의혹 수사의 수사 외압 의혹’인 격”이라고 말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 당직자들이 지난 10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서 해병대 수사 외압 의혹을 받고 있는 이종섭 주호주대사의 호주행 비행편 탑승이 확인되자 이를 규탄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


②여권 내부도 파열음=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등 여권에서도 비판적 입장을 내는 것 역시 사건의 중대성을 드러내고 있다. 한 위원장이 지난 17일 “이 대사는 즉각 귀국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대통령실은 이튿날 “공수처가 조사 준비가 되지 않아 소환도 안 한 상태에서 재외공관장이 국내에 들어와 마냥 대기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당정 갈등 조짐에도 한 위원장은 19일 “제 입장에 변함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수도권 총선 후보를 중심으로도 “매일 매일 중도층이 냉담해지고 있다”(윤희숙 전 의원), “대통령실이 민심의 따가움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윤상현 의원)는 비판이 이어졌다. 김경진 전 의원은 “국민은 윤 대통령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단호하게 수사했던 것과 비교하려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월 23일 오후 충남 서천군 서천읍 불이 난 서천특화시장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

③용산-공수처 ‘수사 지연’ 논쟁=제 2대 공수처장 임명이 늦어지면서 ‘처장 대행의 대행의 대행’(송창진 수사2부장) 체제로 운영 중인 공수처가 대통령실과 정면으로 대립각을 세우는 장면 역시 논란을 뜨겁게 만들고 있다. 지난 18일 대통령실이 ‘현안 입장’을 내어 “이 대사는 공수처에서도 출국 허락을 받고 호주로 부임했다”는 취지로 주장을 펴자, 공수처가 입장을 내고 “이 대사 출국을 허락한 적이 없다”고 맞받아친 건 정부 기관으로선 매우 이례적이었다.

이에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비판했지만, 공수처는 물러서지 않았다. 공수처 관계자는 19일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실에 반박한 것과 관련, “국민께 (공수처가) 거짓말한 모양새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 그 부분만 언론에 말씀드린 것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며 “사실관계를 바로잡지 않을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대통령실이 “이 대사를 출국금지하고 6개월 동안 소환 한번 하지 않았다”며 수사 지연을 문제 삼은 데 대해서도 이 관계자는 “저희가 해 온 대로, 하고 있는 대로 진행해 나가겠다”며 절차적 수사를 강조했다. 한 검찰 관계자는 “리더가 없는 공수처 상황이 아이러니하게도 최고 권력에 대한 정면 대응을 가능하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 과천 정부청사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건물 전경. 연합뉴스


논란이 커지자 이 대사는 19일 대리인을 통해 공수처에 ‘조사기일 지정촉구서’를 접수했다. 앞서 “(공수처가) 요청한다면 일정을 조율해서 언제든지 귀국해서 조사를 받겠다”(지난 17일 KBS 인터뷰)고 한 데 이어 더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다만 당분간 공수처의 직접 수사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수사를 담당하는 수사4부(이대환 부장검사) 소속 평검사는 4명뿐인데, “추가 인력을 투입할 여유가 없다”(공수처 관계자)고 한다. 또 윗선 수사는 통상 아랫선 수사를 마친 후 진행하는데, 공수처는 지난 1월 김계환 사령관 압수수색 이후 관련 자료 분석도 못 끝낸 상태다. 공수처 관계자는 이 대사 소환 시기에 대해 “수사팀이 제반 수사 일정을 감안하면서 사건관계인과 협의해 결정할 일”이라고만 밝혔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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