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시가격 현실화, 더디 가도 가야 할 길 아닌가

2024. 3. 20.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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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예술공장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 스물한 번째, 도시혁신으로 만드는 새로운 한강의 기적'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문재인 정부의 징벌적 과세는 분명 잘못된 정책


현실화 목표치는 낮추되 ‘능력 따른 과세’ 지켜야


정부가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을 폐지하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어제 민생토론회에서 “더 이상 국민들께서 마음 졸이는 일이 없도록 무모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을 전면 폐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20년 문재인 정부가 도입한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은 시세 대비 공시가격 비율인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매년 단계적으로 높여 최장 2035년까지 90%로 끌어올리는 계획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로드맵이 집값 폭등과 맞물리면서 ‘보유세 폭탄’이 된 건 주지의 사실이다. 2016~2020년 매년 4~5%대 상승률을 보이던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로드맵 도입 이후 2021년 19.05%, 2022년 17.2%가 치솟았다. 윤 대통령이 “과거 정부는 부동산 정책 실패로 집값이 오르자 이를 징벌적 과세로 수습하려 했다”고 비판할 만하다.

지난 정부가 수요와 공급을 아우르는 부동산 정책이 아니라 세금과 대출 규제로 정상적 주택 수요까지 때려잡는 ‘부동산 정치’에 매몰된 점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그렇다고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까지 완전 폐지하는 것은 합리적인 정책은 아니다. 공시가격 현실화는 과거 보수·진보를 떠나 마땅히 가야 할 방향이라는 공감대가 있었던 정책이다. 속도 조절을 둘러싼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공시가격은 재산세·종합부동산세와 건강보험료 등 67개 행정 제도의 기준이다. 공시가격과 시세의 차이가 크면 능력에 따라 세금을 부담하는 응능(應能)원칙이라는 조세의 기본에 어긋난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이 예정대로 2035년까지 진행되면 재산세 부담이 61% 증가한다. 정부는 국민의 경제적 부담이 대폭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 혜택은 주로 부자나 중산층 이상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보유세는 고가 주택과 다주택 소유자가 많이 부담하기 때문이다.

로드맵을 폐지하려면 부동산 공시법을 개정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법 개정 전이라도 폐지와 같은 효과가 나올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한 만큼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앞으로도 올해 상승률(1.52%) 수준을 유지할 것 같다. 현 정부는 이미 종부세 세율을 내리고 공시가격을 과세표준에 반영하는 비율인 공정시장가액비율도 인하했다. 과도한 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로드맵의 공시가격 현실화율 목표치를 낮춰 잡더라도 시세와 공시가격의 차이를 줄이는 건 가야 할 방향이다. 지난해 11월 조세재정연구원도 비슷한 의견을 냈었다. 지금과 같은 시장 안정기에 정부가 보유세 완화 신호를 내보내면 시장을 불안하게 할 수도 있다. 안 그래도 세수 비상인데 총선을 앞두고 귀에 착 감기는 세금 깎아주는 발표가 계속되는 것도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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