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호의 뉴스메이커] 10시간·8000㎞ 산소마스크 쓰고 비행…미 공군도 엄지 척!

강찬호 2024. 3. 20.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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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강 공중훈련 ‘레드 플래그’ 두 번 완수 윤지훈 소령


강찬호 논설위원
미 공군이 주관하는 세계 최고·최대 다국적 연합 훈련인 ‘레드 플래그 (Red Flag) 알래스카’를 두 번이나 완수한 공군 에이스를 만났다. 공군 20 전투비행단 조종사 윤지훈 소령(38·공사 57기). 2017년과 지난해 서산 공군 기지-알래스카 간 8000㎞를 논스톱으로 10시간씩 왕복하는 극한의 비행을 해냈다. 비즈니스석 앉아 가기도 힘든 10시간을 몸만 겨우 들어가는 조종석에서 어떻게 견뎌냈을까? 그의 KF-16U 전투기 대당 가격은 약 420억원. 이런 고가의 전투기를 모는 조종사 1명을 키우는 데만 100억원이 넘게 들어간다.

Q : 가장 큰 애로는 뭐였습니까.
A : “알래스카까지 고도 6~10㎞의 고공을 날면 체내 산소가 60%대로 떨어집니다. 10시간 내내 산소마스크를 쓰고 가야 하죠. 조종석이 비좁아 1㎝도 움직일 틈이 없으니 다리가 저리고 온몸이 굳는 점도 큰 고통입니다. (용변은요?) 소변은 조종복 속옷에 붙은 플라스틱 컵에 봅니다. 그러면 자동으로 모터가 돌며 소변이 컵에 연결된 주머니에 들어갑니다. 지난해 도입된 첨단 장치죠. 저는 10시간 내내 참아, 쓸 기회는 없었습니다. (대변은요?) 그건 해결이 안 돼 보통 지사제를 복용하는데 저는 전날 세끼 다 굶는 거로 대비했죠. 비행 도중 초코바·육포·소시지로 허기를 달랬어요. 소변이 걱정돼 수분 없는 것만 먹은 거죠. 또 졸면 큰일이니 알래스카 시차에 적응하려고 비행 나흘 전부터 낮 4시 취침, 자정 기상을 반복했고 졸음 쫓는 각성제도 의무대에서 받아뒀습니다. (마약 아닌가요?) 아닙니다. 다만 사람에 따라 부작용 우려가 있어 검사 통과자에게만 처방하죠. 공중 급유도 실패하면 연료가 바닥나니, 긴장감이 엄청납니다.”

「 대소변 참고 서산~알래스카 논스톱 비행 4번
공중급유 받으며 420억원 KF-16 6대 이끌어
산소통 새 예비기지 비상착륙, 아찔한 경험도
북한 공군 적수 못 돼, 중·러 진입 차단에 중점

1800시간 비행, 1500회 출격 기록에 이어 레드 플래그를 두 번 완수한 윤지훈 소령. 스마트 폭탄 탑재가 가능한 공군 주력 전투기 KF-16U가 그의 애기(愛機)다. 2020년 비행 기량·작전 기여도 등에서 고득점해 우수 조종사상을 받았다. 같은 연배 조종사는 비행시간이 1000시간 정도다. 장진영 기자

Q : 공중 급유는 어떻게 받습니까.
A : “급유기에 급유를 요청하면 ‘붙어도 좋다’고 클리어(허락)합니다. 서로 시속 500㎞를 유지하며 길이·너비·폭 1m의 가상 큐빅 안에 급유기의 급유 파이프와 제 전투기의 급유구가 들어가게 조정합니다. 딱 맞으면 그린, 벗어나면 옐로, 더 벗어나면 레드 사인이 디스플레이에 뜹니다. 말이 쉽지, 난기류라도 닥치면 큐빅 안에 급유구 넣기가 정말 힘듭니다. 베테랑 조종사도 3분이 걸릴 수 있죠. 사방이 컴컴한 야간 비행 때는 대형 유지가 더 어렵습니다. 다만 급유 파이프가 ‘턱!’ 하고 꽂히면 그 흡입력이 내 전투기를 꽉 잡아줍니다. 그때는 기분이 좋죠.”

Q : 급유 때 위기는 없었습니까.
A : “총 6대를 이끄는 페리팀장(편대장)으로 참여한 지난해 훈련 귀국 길에서의 일입니다. 편대 4번기에서 산소 저장통이 샌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태평양 한가운데 상공이었어요. 서산까지 가기도, 알래스카로 돌아가기도 애매해 걱정이 됐죠. 마침 1000㎞ 지점에 미군의 콜드베이 예비기지가 있더라고요. 4번기 연료를 체크하니 거기까지는 갈 분량이었어요. 남은 산소량도 버틸만한 수준이었고요. 즉시 4번기와 그 짝인 3번기에 콜드베이행을 지시했고, 두대 모두 콜드베이에 무사 착륙해 정비를 받은 뒤 귀국했습니다. 판단이 조금만 늦었어도 대형 사고로 이어질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편대원들이 머리를 맞댄 끝에 위기를 면한 거죠.”

Q : 우리 공군의 공중 급유 수준은.
A : “제가 처음 레드 플래그에 참여한 2017년만 해도 미군기로 급유를 받았죠. 날아온다던 미군 급유기가 ‘정비에 문제가 생겼다’며 오지 못해, 일본 요코타 기지에 착륙해야 했던 적도 있습니다. ‘독자 급유’의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지금은 우리 군의 급유 능력이 미군과 전혀 차이가 없어요. 지난해 레드 플래그부터 우리 급유기가 급유를 개시했고, 미군 전투기에도 급유를 해줬어요. 자동차는 기름이 떨어지기 직전에만 기름을 넣어도 되지만 전투기는 달라요. 태평양은 착륙 가능한 예비 기지가 1600㎞나 떨어진 경우도 있습니다. 유사시 이 기지까지 갈 수 있게 기름을 유지해야 하니, 심할 때는 20분마다 급유하기도 합니다. 지난해 알래스카 갈 때 10번, 귀국할 때 12번 급유를 받았습니다. 우리 급유기는 총 4대인데, 정기검사·비상대기에 2대가 소요돼 가용기는 2대뿐입니다. 반면 미국은 근 200대, 일본도 10여대에 달합니다. 늘려야죠.”

Q : 태평양 나는 기분은 어떤가요.
A : “망망대해만 8시간을 나니까 극도로 지루한 데다 각성제를 먹어도 몽롱한 상태가 됩니다. 후방석 후배와 얘기를 나누면서 졸음을 쫓았죠. 구름 낀 상황이 가장 힘든데, 전정기관 혼돈에 따른 비행 착각이 일어나기 쉽기 때문입니다. 전투기는 수평으로 나는데도 내 몸은 90도로 꺾인 듯 느껴지는 착각인데, 저도 겪었어요. 후방석 후배에게 조종을 맡기고, 훈련받은 대로 심호흡을 하면서 겨우 벗어났죠. 10시간 만에 알래스카에 내릴 때는 다리가 후들거려 넘어질 뻔했어요. 축하 세레머니로 맥주를 한 잔 주는데, 맛은 기막히지만 빈속이라 바로 취해요.”

Q : 무려 8000㎞를 날아가 훈련하는 이유는 뭔가요.
A : “글로벌 선진 공군 지위를 다지기 위한 겁니다. 공중급유기와 장거리 폭격기·전투기를 운용해 다국적 연합 작전에 참여할 능력을 축적하는 거죠. 이런 수준의 공군 강국은 미국·일본·중국·러시아와 우리 정도랄까요.”

Q : 레드 플래그 훈련에 참여해보니 어떻던가요.
A : “한반도보다 큰 훈련지에서 세계 최강 미 공군과 연합 능력을 축적했죠. 본부인 아일슨 공군기지는 국내 최대인 서산 공군 기지(11.9㎢·약 350만평)보다 25배나 넓고 활주로도 1.7배 길며 스키장까지 있어요. 매일 새벽 여기서 브리핑을 받고 훈련장까지 40분을 날아갑니다. 공중급유 받아가며 가상 적 기지 사격 등 실전급 훈련을 3시간 하고 돌아와 녹화영상을 보면서 훈련을 복기하면 12시간이 꼬박 지나 파김치가 됩니다. 맥주에 소고기로 늦은 저녁 먹고 쓰러져 자는 생활을 3주 내내 했죠.”

Q : 미 공군은 우리 공군을 어떻게 평가하던가요.
A : “정확한 시각에 목표를 타격하고,가상적기를 막는 능력이 눈에 보인다며 ‘엄지 척’을 하는 등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함께 참여한 일본 항공자위대와 비교됐죠. 미군들이 ‘일본 친구들의 전술이 뭔지 솔직히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미군과 소통이 잘 되나요?) 언어 장벽이 없을 순 없지만, 통상적인 군사 용어는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끼리 훈련할 때도 영어로 하죠. 여담인데, 일본 자위대원들은 영어 발음이 잘 안 돼 우리가 미군들에게 통역을 해주기도 했어요. 미군 교관이 ‘단순한 훈련이 아니라 한미동맹의 소중한 자산으로 이어가야 한다’고 말한 게 인상 깊었죠.”

Q : 우리 공군의 핵심 타깃은 북한 공군입니까.
A : “천안함·연평도 도발이 터진 2010년대 초만 해도 그랬지만, 2010년대 중반부터는 중국·러시아 군용기의 우리 방공식별구역 무단 진입이 잦아져 그쪽 대응 비중이 커졌습니다. 나란히 붙어 비행하며 나갈 때까지 감시합니다. 더 안으로 들어오면 진로를 막아서는 ‘차단 기동’을 하는데 횟수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북한 공군은 이제 상대가 안 돼요. 1980년대산 미그기가 최신 기종이죠. 퇴역한 팬텀기 수준이에요.”

Q : 비행하면서 힘들었던 일은 뭔가요.
A : “공중전 하다 보면 중력 가속도가 급변해 온몸의 피가 하체로 쏠리면서 기절하고, 숨지는 경우까지 생깁니다. 그래서 3년에 1번씩 청주 훈련 센터에서 지구 중력(1G)의 9배인 9G에서 15초간 버티는 훈련을 받습니다. 일반인은 4G만 가도 실핏줄이 터지고 2~3초 만에 기절합니다. 하체에 힘주고 ‘흡’하며 가슴을 압박하는 ‘L1 호흡법’을 숙달해야 합니다. 또 고도 3000m 이상 올라가면 중이통·감압증에다 혈액 내 질소가 기포로 변해 위독해지기도 하죠. 기동 훈련 때 쥐도 많이 납니다. 매일 1~2시간 달리기·근력 운동을 하고 1시간 반 비행 훈련으로 보완하죠.”

Q : 그래도 보람 있습니까.
A : “그럼요! 야간 비행하면 수도권 상공의 불빛이 정말 화려합니다. 하지만 북방한계선(NLL) 근처로 올라가면 칠흑 같은 북한 지역이 눈에 들어오죠. 그 상반된 모습을 보면 ‘이렇게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영공을 목숨 걸고 지키겠다’는 생각이 절로 나죠.”

강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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