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오히려 지금이 기회다"…되살려야 할 공적 DNA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서울대병원은 누가 뭐래도 국내 최고이다. 규모 면에서 서울아산·삼성서울병원 등에 뒤처지지만 서울대 의대 부속병원이라는 위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코로나19 같은 국란이 오면 의료진과 병상을 먼저 내놨다. 2015년 메르스 때는 최중증 환자 치료를 도맡았다. 국민은 이런 서울의대 부속병원을 존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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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중앙병원' 서울대의 허상
하루 1만명 외래진료 공룡돼
공적DNA 투철한 장점 살려
"의대혼란 중재자 역할 기대"
」
그런데 이번 의대 증원 혼란에서 서울대병원의 불편한 모습이 드러났다. 서울대병원은 2019년 "국가중앙병원이자 4차 병원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발표했다. 상급종합병원 위의 병원이 되어 한국 의료를 이끌어가겠다는 선언이었다. 이어 중증환자 중심병원의 그림을 제시했다. 2022년 서울대병원의 전문환자(중증환자)가 전체 입원환자의 63%에 달한다. 47개 상급종합병원 중 선두권에 올라 있다. 하지만 거꾸로 얘기하면 중증이 아닌 일반환자나 단순환자가 37%나 된다는 뜻이다.
중증진료 강화 시범사업 불참
서울대병원의 하루 평균 외래환자는 약 1만명이다. 서울아산·신촌세브란스 등보다 적긴 하지만 1만명은 선진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도쿄대 의대 부속병원은 3500명이다. 서울대병원은 2019년 앞마당 지하에 외래 진료 전용구역을 마련했다. 게다가 중증 중심을 표방했으면서도 올해 시작된 정부의 '중증진료체계 강화 시범사업'에 서류를 덜 내 참여하지 못했다. 외래 진료는 줄이고 중증 진료를 강화하는 사업이다. 삼성서울·인하대·울산대병원이 참여한다.
서울대병원의 어린이병원은 한 해 150억~180억원의 적자를 내면서도 희귀·난치병과 중증 환자를 담당한다. 완화의료·재난의료 등에도 앞서있다. 서울대병원의 한 교수는 "어린이병원을 운영한다는 것 외는 국가중앙병원의 설계도가 사라졌다"고 말한다.
수도권 자병원 문어발 확장
서울대병원은 민간 대형병원처럼 '문어발 자(子) 병원 확장'을 추진한다. 경기도 시흥시에 시흥배곧서울대병원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5883억원이 들어가는 800병상 규모의 병원이다. 올해 착공해 2027년 개원이 목표다. 진료·연구 융합형 종합병원이라고 하지만, 수도권 집중을 심화시킬 또 하나의 대형병원을 짓는다는 강한 비판을 받는다. 게다가 인근 인천 송도에 연세대가 세브란스병원 건립을 추진 중이어서 국내 1,2위 의과대학을 둔 병원이 경쟁을 벌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서울대병원의 전공의는 738명이다. 전체 의사의 46%이다. 2010년 51.2%, 2020년 47%에서 줄긴 했지만, 여전히 정상이 아니다. 전공의의 장시간 노동(주당 77.7시간)과 저임금(근무시간 대비)의 '착취 경영 구조'에 가장 깊게 뿌리를 내렸다고 볼 수 있다. 분당·보라매병원, 강남센터를 제외하면 전공의 비율이 35.8%라고 주장하지만, 이 역시 절대 낮지 않다.
서울대병원과 서울대 의대는 이번 의료 사태에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이달 11일 울산대 의대에 이어 두 번째로 사직을 결의했고, 25일 일괄 사직서를 내기로 했다. 지난 12일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방재승 위원장(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은 기자회견에서 "의대 증원 정책을 1년 유예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비롯한 외국과 국내 기관에 의사 인력 추계를 의뢰하자"고 제안했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국장은 "1년 유예하면 유야무야 될 것인데, 국민이 왜 1년을 더 기다려야 하나. OECD의 인터뷰에 응한 적이 있는데 한국의 사정을 잘 모르더라"고 지적했다.
다만 서울대병원과 서울대 의대에는 민간 병원과 달리 '공적 DNA'가 있다. 서울대병원은 특수법인이긴 하지만 사실상 국립대병원이다. '공무원 마음가짐'이 강하다. 한 해 수십 차례 의료 정책 관련 세미나를 연다. 해외 전문가에다 보건복지부·건강보험공단·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관계자와 머리를 맞댄다. 이번에 공적 DNA를 살릴 좋은 기회이다. 정부가 국립대병원 교수 1000명을 늘려 전문의 중심병원으로 전환하고, 상급종합병원을 중증 진료 위주로 재편하려고 한다. 남 국장은 "서울대병원은 민간도 공공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에 있다. 국가중앙병원으로 가려면 '중증 환자 비율을 높여 중증 중심으로 가겠다'고 선언하고 선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전국 국립대병원을 이끌어가야 한다. 그리하면서 정부의 뒷받침을 요청하면 된다"고 말했다.
최고 지식인 답게 중재 나서야
서울의대의 한 교수는 "서울대가 가장 늦게 (진료실을) 뛰쳐나가고, 가장 일찍 들어와야 한다. 그런데 가장 먼저 움직인 점은 아쉽다"고 말한다. 다른 교수는 "서울대 의대는 국내 최고 지식인 집단이다. 그에 걸맞게 움직여야 다른 의대 교수도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방재승 위원장은 18일 이번 사태 발발 한 달여 만에 "국민 없이 의사도 없다는 사실을 잊었다"며 사과문을 발표했다. 전공의가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게 한 점도 사과했다. 방 위원장은 "책임이 있는 현 사태의 당사자임에도 치열한 반성 없이 중재자 역할을 하려 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빅5 병원의 한 교수는 "서울대 의대 비대위가 이제는 진정한 중재자가 된 것 같다. 그 역할을 존중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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