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목진석·나현·안국현…쟁쟁한 이들이 챌린지리그에 왜?

2024. 3. 20.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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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진석, 나현, 안국현(왼쪽부터 순서대로)

승리 팀에만 대국료 100만원이 지급된다. 패한 팀엔 한 푼도 없다. 17일 춘천시에서 개막된 챌린지리그 얘기다. 그런데 이 대회에 무려 16개 팀이 운집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폭발적인 인기다. 너무 많은 팀이 모인 탓에 한꺼번에 리그전을 벌이지 못하고 ‘좌은(坐隱)’과 ‘혁기(奕棋)’ 두 그룹으로 나눠야 했다.

‘프로=돈’이라는데 돈 없는 챌린지리그가 왜 인기일까. 팀을 만들기 쉽기 때문이다. 각 팀은 감독을 선임하고 선수를 선발한 뒤 한국기원에 1000만원만 내면 된다. 그러다 보니 기업과 지자체, 바둑클럽, 바둑도장, 바둑학교 등 각양각색의 팀이 꾸려졌다.

선수는 프로에서 아마추어, 그리고 여자 기사까지 다 참가할 수 있다. 선수는 3~5명까지 팀에서 선발한다. 이런 특별한 대회를 위해 KB국민은행이 3억원을 내고 정부에서도 1억여원을 지원했다. 그러니까 참가금까지 합해도 총예산은 6억원이 채 안 된다. 대회는 정규시즌에서 포스트시즌까지 있을 것은 다 있고 4개월간 이어진다. 그리하여 우승팀엔 5000만원, 준우승팀엔 3000만원이 주어진다. 매 경기 승리 팀 대국료로 겨우 100만원밖에 줄 수 없는 이유다.

그래서 이 대회에 누가 참가하는지 궁금했다. 맨 먼저 목진석이란 이름이 눈에 띈다. 목진석 9단은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 지난 4년간 규정에 따라 대외활동은 물론이고 바둑시합에도 참가하지 못했다. 얼마나 바둑이 두고 싶었을까. 본인의 소감을 물을 것도 없다. 나는 안다. 프로기사란 세상 누구보다 바둑 두기를 좋아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대회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참가하고 싶었다. 불러주는 곳이 없나 보다 했는데 ‘바둑의 품격’팀에서 연락이 왔다. 대국할 수 있는 게 감사하다. 한판한판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사이버오로 팀의 나현 9단도 놀라웠다. 나현은 3번이나 우승컵을 차지한 강자다. 왜 나현이 여기 있지? 군대 가더니 그동안 랭킹이 곤두박질쳤나. 얼른 찾아보니 24위다. 잘 나갈 때의 6위에서 많이 내려갔지만, 그래도 24위면 KB 바둑리그 본 무대에서 뛰어야 마땅하다. 나이도 아직 20대(29세) 아닌가. 결국 그는 군인 신분 때문에 큰 리그에 가지 못하고 제대 후에 여기 온 것이다.

한데 나현의 팀엔 안국현 9단(31위)도 있다. 삼성화재배 결승까지 올라 커제와 대결했던 안국현. 이 둘은 막강하다. 당연히 우승 후보일까. 그건 모른다. 명단을 죽 훑어보니 국수 타이틀을 따냈던 윤준상 9단(38위)도 있고 심재익(35위) 6단도 보인다. 심재익이 리그 본 무대에서 크게 활약하던 게 엊그제 같다. 나이도 아직 26세. 다시 돌아갈 날을 고대하며 칼을 갈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그러고 보니 강유택, 진시영, 류민형, 홍무진, 허영락 등 40위 근처의 기사들이 즐비하다. 다들 역사가 있고 한칼이 있는 상대들이다.

정상급도 아니고 시니어나 유망 신예도 아닌 프로기사들. 그들이 대거 챌린지리그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나이 때문에 시니어나 신예는 안 되고 KB 바둑리그에서는 아슬아슬 밀린 기사들이 집단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컸던 과거의 시니어 기사들 대신 새로운 집단이 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프로기사는 은퇴가 없다. 대신 힘이 있는 한 바둑을 두고 바둑판과 더불어 죽음을 맞이한다는 비장한 장인정신이 존재한다. 챌린지리그처럼 아무 구속이 없는 대회는 이들에게 숨 쉴 공간이랄까. 작은 축제처럼 재미있게 바둑 둘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한다.

챌린지리그에는 여자기사들도 대거 이름을 올렸다. 오유진, 조승아, 허서현, 김은지, 그리고 일본에서 온 스미레. 여자기사만으로 꾸린 팀도 있고 순전히 아마추어 강자로만 꾸린 팀도 있다. 프로라도 쉽게 이길 수 없는 실력자들이기에 프로와 여자기사, 아마추어가 어떤 드라마를 만들어낼지 궁금해진다.

박치문 바둑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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