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에 심은 통찰과 서스펜스 …日 하마구치 류스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임세정 2024. 3. 19.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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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위에서 아래로 향한다. 상류에서 하는 일은 어떻게든 하류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한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도쿄 인근의 숲에 글램핑장을 건설하려 한다.

글램핑장 건설 문제로 시냇물을 받아다 식수로 쓰고 사슴 가족이 뛰어놀 정도로 깨끗한 자연을 자랑하는 마을에 혼란이 커진다.

일본의 '젊은 거장'으로 불리는 하마쿠치 류스케 감독의 신작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가 오는 27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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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개봉…베네치아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스틸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물은 위에서 아래로 향한다. 상류에서 하는 일은 어떻게든 하류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한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도쿄 인근의 숲에 글램핑장을 건설하려 한다. 회사 측이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연 사업 설명회에서 마을회장은 이같이 말한다. 글램핑장 이용객들이 배출하는 오수 때문에 산 중턱에 정화조를 설치해야 한다는 회사 관계자의 설명에 대한 답이다.

글램핑장 건설 문제로 시냇물을 받아다 식수로 쓰고 사슴 가족이 뛰어놀 정도로 깨끗한 자연을 자랑하는 마을에 혼란이 커진다. 이 마을엔 혼자서 어린 딸 하나(니시카와 료)를 키우며 사는 타쿠미(오미나 히토시)가 있다. 회사는 타쿠미를 글램핑장 관리자로 채용해 목적을 이루려 하지만 타구미는 “글램핑장이 들어서면 자연과 함께해온 삶의 균형이 깨진다”며 맞선다.

일본의 ‘젊은 거장’으로 불리는 하마쿠치 류스케 감독의 신작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가 오는 27일 개봉한다. 영화는 자연을 어떻게든 이용해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들과 자연과 공생하려는 사람들의 이질적인 세계를 보여준다.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 눈 쌓인 숲길, 얼어붙은 호수 등 자연의 풍광이 정성스레 담겼다.

하마구치 감독은 여러 가지 연출법을 통해 생태계, 글램핑장 건설을 둘러싼 인물들의 입체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전반부 10여분 가량 관객들은 주인공들의 목소리 대신 숲과 하늘의 풍경을 보고, 바람 소리를 듣게 된다. 자연의 모습과 인간의 행동을 관찰하는 듯한 롱테이크, 예측할 수 없는 결말을 암시하듯 갑자기 끊기는 음악 등이 인상적이다.

이야기의 큰 축은 ‘자연을 지키려는 사람’과 ‘자연을 파괴하려는 사람’의 갈등이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선악 구도로 나눠 판단하지 않는다. 이런 의도는 타쿠미를 설득하러 가는 회사 직원 타카하시(고사카 류지)와 마유즈미(시부타니 아야카)의 대화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누군가에겐 나쁘게 비치는 행동이라도 반드시 악의가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 모든 행동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으며 옳고 그름을 명확히 판단하는 건 어렵다는 게 영화 전반에 흐르는 메시지다.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의 결말은 관객들에게 ‘절대적인 악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처음에 ‘드라이브 마이 카’(2021)의 음악 감독이었던 이시바시 에이코의 공연 영상으로 기획됐다가 한 편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주인공을 연기한 오미나 히토시는 전작 ‘우연과 상상’(2021)의 스태프 출신이다. 하마구치 감독은 키타가와 요시오 촬영 감독과 함께 촬영 장소를 찾아다니던 중 어떤 비주얼이 음악과 어울릴지 고민하다가 오미카를 현장 리허설 대역으로 세웠다. 카메라에 담긴 오미카의 모습이 하마구치 감독의 눈길을 끌었고, 오미카는 주연 배우로 캐스팅됐다.

‘우연과 상상’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드라이브 마이 카’로 칸 국제영화제 각본상을 받은 하마구치 감독은 이 영화로 지난해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 받았다. 세계 3대 국제영화제에서 모두 상을 받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이 기록을 세운 건 일본의 전설적인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 이후 두 번째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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