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전 미야자키 하야오의 첫 작품... 전설은 이때 시작됐다
[김형욱 기자]
▲ 애니메이션 영화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포스터. |
ⓒ CJ ENM |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애니메이션상을 수상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후 20여 년 만에 이룬 쾌거다. 수차례 은퇴를 번복하고 복귀해 이룬 업적인 바 80대 중반에 이른 나이이기에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 하지만 항상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니 믿게 된다.
그의 작품들은 수차례 재개봉했는데, 그 자체로 관객들은 환호해 마지않았다. 그리고 이번 미국 아카데미 장편애니메이션상 수상에 맞춰 그의 시작점이라 할 만한 작품이 재개봉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최초로 연출한 애니메이션 영화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이다. 일본 현지 개봉이 1979년이니 자그마치 45년 된 작품이다. 하지만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작품은 <루팡 3세>의 두 번째 극장판이다. <루팡 3세>는 몽키 펀치가 1960년대 후반에 연재한 만화로, 1970년대 들어 TV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고 1970년대 후반에 극장판으로까지 나아갔다. 이후 실사 영화와 드라마, 공연, 소설, 게임으로까지 만들어졌으니 그야말로 반세기 넘게 사랑받고 있는 일본의 대표 만화다. 루팡 3세는 말 그대로 그 유명한 '아르센 뤼팽'의 직계 후손을 자처한다.
칼리오스트로 안팎의 이야기들
모나코 국영 카지노에서 수십 억 달러에 이르는 돈을 훔쳐내는 데 성공한 루팡 3세와 지겐 다이스케 콤비. 하지만 머지않아 그 돈이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진 최고의 위조지폐 '염소 지폐'라는 사실을 알아챈다. 둘은 염소 지폐의 진원지를 찾아 칼리오스트로 공국으로 향한다. 그곳은 인구가 불과 3000여 명밖에 안 되는, 전 세계에서 가장 작은 UN 회원국이다.
칼리오스트로 공국으로 향하던 길에서 루팡 지겐 콤비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젊은 여인이 차를 타고 도망가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녀를 뒤쫓았고 우여곡절 끝에 그녀의 정체를 알아내지만 그녀는 괴한들에게 납치당해 사라진다. 그녀는 바로 칼리오스트로 공작의 후계자 클라리스 칼리오스트로였고 그녀를 납치한 당사자는 대공 부부가 죽은 후 공석인 칼리오스트로 공국의 주인 자리를 임시로 맡고 있는 라셀 칼리오스트로 백작이었다. 라셀은 공국을 차지하고자 클라리스와 결혼하려 그녀를 가둬놓았던 것이다. 당연히 그녀는 거부하고 있었고.
루팡이 공국에 잠입하는 사이, 지겐과 이시카와 고에몽을 불러들여 함께 밖에서 지원하려 준비하고 있었다. 한편 루팡을 쫓는 국제경찰 제니가타 코이치가 경찰 무리를 이끌고 공국으로 들이닥친다. 거기에 라셀의 하인으로 위장해 염소 지폐를 훔치려는 미네 후지코도 잠입해 있었다. 칼리오스트로 공국을 둘러싸고 각자의 목적이 얽히고설켜 부딪히는 대환장 파티가 펼쳐진다.
매력적인 도둑, 만화로 펼쳐지는 대활극
<루팡 3세>는 너무나도 유명하지만 혹시 한 번도 접해 보지 않았다면 이 작품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을 입문작으로 꼽을 만하다. 루팡과 지겐 콤비에 제니가타, 고에몽, 미네까지 모두 나와 나름의 활약을 펼치거니와 그들이 따로 또 같이 펼치는 대활극의 규모와 깊이가 엄청나기에 <루팡 3세> 전체의 기조를 미리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일 것이다.
인류 역사상 유명하고 또 매력적인 도둑은 무수히 많았다. 실존 인물도 있고 가상 인물도 있을 텐데, 루팡 3세의 할아버지 아르센 뤼팽이야말로 가장 유명하고 매력적인 가상 도둑일 것이다. 루팡 3세가, 그것도 이 작품에서의 루팡 3세가 그 매력과 함께 실력도 함께 물려받은 느낌이다. 그의 활극을 함께하고 있는 것만으로 흥분된다. 나아가 그보다 재밌기도 힘들 것이다.
사실 아무리 만화라지만 루팡의 일거수일투족은 말이 전혀 안 되는 수준이다. 현실이었으면 족히 수십 번은 죽었을 만하다. 그만큼 인간을 아득히 초월하는 신체 능력을 갖췄고 그런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하는 창의력도 갖췄다. 역으로 생각해 보면, '아무리 만화라지만'이 아니라 '만화이기에, 만화라서, 만화로만'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이자 장면들이 아닌가 싶다. 그런 지점들을 최대한으로, 집약적으로 작품 전체에 걸쳐 보여주니 정녕 처음부터 끝까지 놓칠 장면이 없다. 완벽에 가깝다.
전설의 시작을 알리는 다크 히어로물
주인공과 주인공 무리가 도둑이 본업이니 만큼 이 작품은 다크 히어로물이라 할 만하다. 다크 히어로도 히어로인 만큼 물론 궁극적인 악당이 나온다. 이 작품에선 라셀 백작, 나아가 칼리오스트로 공국 자체일 것이다. 400여 년 동안 염소 지폐를 만들어 뒤편에서 세계를 지배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이들을 가차 없이 죽여 버렸으니 말이다. 라셀은 거기에 더해 공국을 차지하고자 공국의 후계자 클라리스와 강제로 결혼하려는 중이고 그 과정에서 서슴없이 사람을 죽여 버린다. 냉혈한에 호색한인 것이다.
반면 루팡 일행은 비록 남의 것을 훔치는 행위를 거리낌 없이 행하지만 목적은 분명하고 또 나름 정의롭다. 이를테면 '나쁜 놈' 또는 '훔쳐도 되는 대상'에게서 '훔쳐도 될 만한 것'을 훔치는 것이다. 정의라고 생각하는 행동을 행하고자 악당이 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모르긴 몰라도 라셀은 자신이 악당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도 대외적으로 악당이 되는 걸 철저히 숨길 것이다. 루팡은 자신에게 당당하고 꺼릴 것이 없지만 라셀 같은 부류는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당당하지 못하고 꺼릴 것이 너무 많다.
이 작품은 비록 길지도 않고 처음 접하면 어리둥절할 부분이 많을 것이며 또 스토리 전개상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이 많거니와 어디서 본 듯한 장면들이 많이 보이기도 하지만, 이런저런 단점들을 차치하고서라도 마치 다른 세상에 초대받은 것처럼 환상적으로 재밌고 즐겁다. 아마 이 작품을 시작으로 <루팡 3세> 시리즈를 정주행 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흡입력이 막강하다. 무엇보다 미야자키 하야오 팬이라면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을 접하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 전설의 시작을 목도할 시간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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