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적 보드게임, 7명 흑인의 목숨이 달렸다
넷플릭스, 왓챠, 디즈니플러스, 쿠팡플레이, 티빙, 웨이브, 애플TV플러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범람하는 시대입니다.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무엇을 볼까 막막한 분들을 위해 볼 만한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추천하는 길잡이가 되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이학후 기자]
▲ <블래크닝> 영화 포스터 |
ⓒ LIONS GATE FILMS INC |
술과 카드게임으로 즐겁게 지내던 이들은 우연히 들어간 게임룸에서 인종차별적인 요소가 가득한 보드게임 '블래크닝'을 발견한다. 곧이어 문이 잠기고 TV에서 가면을 쓴 살인마가 나타난다. 그는 이곳에서 살아서 나가려면 '블래크닝'에 참여해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증명해보여야 한다고 협박한다.
▲ <블래크닝> 영화의 한 장면 |
ⓒ LIONS GATE FILMS INC |
호러 영화에서 살아남고 싶다면 기억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이 있다. "휴대전화가 충전되었는지 확인해라", "버려진 집에 들어가지 마라", "지하실에 내려가지 마라", 마지막으로 "흑인은 가장 먼저 죽는다".
과거 호러(특히 슬래셔) 영화에서 흑인 캐릭터는 처음 죽거나 혹은 순서가 밀릴지언정 어떤 식으로든 생존할 수 없다는 건 하나의 관습에 가까웠다. <샤이닝>(1980)의 딕 홀로랜(스캣맨 크로더스 분), <스크림 2>(1997)의 모린(제이다 핀켓 스미스 분), <딥 블루 씨>(1999)의 러셀 프랭클린(사무엘 L. 잭슨)은 극의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소비된 흑인 캐릭터의 대표적인 사례다. 장르 영화에서 흑인 캐릭터를 어떻게 묘사했는지를 보여주는 불균형의 증거는 <무서운 영화>(2000)의 한 장면이 가볍게, 다큐멘터리 <호러 느와르: 어 히스토리 오브 블랙 호러>(2019)가 깊이 다룬 바 있다. 분명 <겟 아웃>(2017)이 나오기 전까지 할리우드의 호러 장르는 흑인, 나아가 유색인종에게 결코 친절하지 않았다.
넷플릭스에서 서비스 중인 영화 <블래크닝>(2022)은 슬래셔 영화의 원전인 <블러드 베이>(1971)가 원형을 확립한 이래 <13일의 금요일> 시리즈가 발전시킨 '숲속의 외딴 곳으로 여행을 떠난 젊은이들이 사악한 살인마를 우연히 만난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삼았다.
▲ <블래크닝> 영화의 한 장면 |
ⓒ LIONS GATE FILMS INC |
<블래크닝>은 흑인 역사와 문화, 호러 장르에 대하여 논평하는 메타적 성격이 짙다. 영화는 미국에서 '흑인'으로서 삶을 과장법과 장난기를 섞어 그린다. 영화 속에 나오는 보드게임 '블래크닝'은 살인마가 낸 문제를 초침이 한 바퀴 돌기 전에 참가자들이 맞히면 한 칸을 이동하고 만약 틀리면 인질을 죽이는 방식으로 펼쳐진다. 영화는 "공포 영화에서 생존한 흑인 캐릭터 5명"이나 "시트콤 <프렌즈>에 등장한 흑인 배우 5명" 등 질문을 빌려 미국의 대중 문화 속 흑인 또는 역사 속 흑인을 건드리며 인종적 논평을 날카롭고 유쾌하게 던진다.
한편으로는 일곱 명의 흑인을 통해 흑인 커뮤니티 안의 미묘한 관계를 탐구하고 흑인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 일곱 명의 흑인 가운데 어떤 이는 아버지가 백인인 혼혈 태생이고 다른 이는 아내가 백인이다. 또 다른 한 명은 게이이고 무려 트럼프에게 2번이나 투표했다는 이도 있다. 이들은 커뮤니티의 다양한 시선을 대변하면서 동시에 그 안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배척도 담겨 있다.
▲ <블래크닝> 영화의 한 장면 |
ⓒ LIONS GATE FILMS INC |
<블래크닝>은 많은 클래식 호러 영화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장르에 대한 메타적 성격은 <무서운 영화>와 <스크림>(1996)을 닮았고 TV 화면 속 살인마의 지시를 받아 생존 게임을 벌이는 구조는 <쏘우>(2004)와 유사하다. 호러 영화의 인종차별적인 요소를 전복하는 면은 당연히 <겟 아웃>의 영향을 받았다. 이 외에도 <텍사스 전기톱 학살>(1974), <13일의 금요일>(1980), <나이트메어>(1984)를 연상케 하는 대목도 등장한다.
<블래크닝>은 클래식 호러 영화의 영감 아래 피와 고어를 대신해 서스펜스와 점프스케어를 적절히 활용하며 제법 오싹한 순간을 연출한다. 사실 호러 영화라기보단 코미디에 가깝지만, 두 장르 사이의 균형을 절묘하게 이룬다. <블래크닝>은 <스크림>, <터커 & 데일 Vs 이블>(2010), <캐빈 인 더 우즈>(2011) 등과 함께 호러 코미디의 수작에 놓아도 부족함이 없다.
<블래크닝>은 제작비가 5백만 달러에 불과하다. 그러나 성취는 남다르다. 흑인에 대한 고정관념, 호러 장르의 관습, 관객의 예상을 엉뚱하고, 똑똑하게 어떤 지점에선 불편하게 가지고 노는 호러 코미디의 수작이다. 메타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스크림>을 잇는 현대적인 업데이트이며 <겟 아웃>의 신랄한 풍자와 <무서운 영화>의 패러디와 슬랩스틱을 독창적인 방법으로 합친 작품이기도 하다. 이렇게 블랙 호러는 한 걸음 전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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