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하러 유모로 들어온 여자... 살해 이상의 '큰 계획'

양형석 2024. 3. 19. 10:4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고 커티스 핸슨 감독의 <요람을 흔드는 손>

[양형석 기자]

배우 김대명은 드라마 <미생>에서 직장인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김동식 대리, 영화 <더 테러 라이브>에서 한강다리와 방송국 건물을 폭파시키는 테러범의 목소리 연기를 통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그리고 2020년과 2021년에는 엉뚱하지만 속이 깊은 산부인과 양석형 교수 역을 맡아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평소엔 무심해도 산모 앞에서는 누구보다 진심이었던 양석형 교수의 인간미는 시청자들에게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사실 병원의 모든 학과가 마찬가지지만 산부인과는 의사와 산모 사이의 신뢰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산모들은 첫째를 낳을 때 산부인과에서 좋은 인상을 받으면 둘째를 가졌을 때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같은 산부인과에서 케어를 받고 아이를 낳으려 한다. 그만큼 의사와 산모 사이에 신뢰관계가 쌓였기 때문이다(물론 2023년 대한민국의 출산률은 0.72명까지 떨어지면서 아이를 낳는 부부가 크게 줄어든 게 진짜 문제지만).

하지만 때로는 일부 몰지각한 산부인과 의사들이 자신에게 몸을 맡겨야 하는 산모들의 상황을 악용해 산모들에게 못된 짓을 했다가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뉴스를 접하기도 한다. 지난 1992년에 개봉했던 이 영화 역시 산모를 추행한 의사의 아내가 피해자에게 앙심을 품고 그 집의 유모로 들어가 복수를 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 LA 컨피덴셜 >과 < 8마일 >로 유명한 고 커티스 핸슨 감독의 스릴러 영화 <요람을 흔드는 손>이다.
 
 <요람을 흔드는 손>은 스타배우 출연 없이도 북미에서만 8800만 달러의 높은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섬세해서 더 무서운 여성스릴러

사실 < 13일의 금요일 >과 <나이트 메어> <스크림> 등으로 대표되는 남자가 주인공인 공포 스릴러 영화들은 시각적인 효과는 강하지만 스토리가 단순하게 전개될 때가 많다. 반면에 스릴러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잔인하고 시각적인 효과는 다소 떨어져도 치밀하면서도 광기 어린 집착으로 남자주인공은 물론 관객들까지 크게 긴장시킨다. 여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스릴러 영화들을 좋아하는 관객들이 적지 않은 이유다.

1987년에 개봉했던 마이클 더글라스와 글렌 클로즈 주연의 <위험한 정사>는 한 유부남이 사업상 참석했던 파티에서 여성과 하룻밤을 보낸 후 상대 여성의 심한 집착에 시달리는 내용의 영화다. 마이클 더글라스는 <위험한 정사> 이후 강한 여성캐릭터와 대립하는 캐릭터를 많이 연기했고 글렌 클로즈가 연기한 알렉스 역시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과 <브리짓 존스의 일기> 등 다른 영화에서 언급될 정도로 '집착녀'를 대표하는 캐릭터가 됐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1990년작 <미저리>는 교통사고를 당한 인기소설가를 구조한 사생팬이 자신이 기대한 것과 다른 소설의 결말을 보고 분노의 광기를 발산한다는 내용의 영화다. 영화 개봉 후 한동안 집착이나 스토커라는 단어를 '미저리'라고 대신 썼을 정도로 영화 <미저리>는 사회적으로 대단히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난 1999년에는 인기 혼성그룹 쿨이 집착이 심한 여자친구에 대한 노래 '미절'을 발표하기도 했다.

나탈리 포트만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긴 영화 <블랙 스완>은 발레라는 우아한 예술을 고도의 육체적 노동으로 묘사한 영화다. 완벽을 추구하는 발레리나의 욕망이 집착으로 변하면서 점점 자신을 파괴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블랙 스완>은 관객들에게 여느 공포 스릴러 못지 않은 긴장감을 선사했다. 특히 나탈리 포트만은 <블랙 스완>의 니나 역을 위해 9kg을 감량하고 실제 발레리나들에 버금가는 연습량을 소화했다.

2004년 제임스 완 감독이 연출한 <쏘우>에서 공동각본가로 참여하고 주연까지 맡았던 리 워넬 감독이 2020년에 연출한 <인비저블맨>은 소설 <투명인간>을 원작으로 한 공포 스릴러 영화다. 주인공 세실리아를 연기한 엘리자베스 모스의 열연이 돋보였던 <인비저블맨>은 700만 달러의 저예산으로 만들어 코로나19 시국인 2020년2월에 개봉해 세계적으로 1억 4300만 달러의 높은 흥행성적을 기록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피해자 가정의 파괴를 노린 가해자의 아내
 
 레베카 드 모네이는 <요람을 흔드는 손>에서 소름 끼치는 연기로 MTV 영화 및 TV시상식에서 최고의 악당상을 수상했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모든 영화 제작사들은 이름 있고 유명한 배우를 캐스팅하길 원한다. 대중들에게 익숙한 스타배우가 출연하면 그만큼 흥행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릴러 영화에서는 스타배우의 출연이 언제나 흥행의 절대적인 조건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잘 쓰여진 스토리와 감독의 치밀한 연출, 그리고 배우들의 호연이 만나면 스타배우가 출연하지 않아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북미 8800만 달러 흥행을 기록한 <요람을 흔드는 손>이 이를 증명한다.

사실 <요람을 흔드는 손>의 제작사에서도 모트 부인/페이턴 역에 <블루문 특급>과 <택시 드라이버>로 유명한 시빌 셰퍼드를 캐스팅하려 했다. 하지만 셰퍼드가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최악의 공포를 묘사했다"는 이유로 출연을 거절했고 결국 이 역할은 상대적으로 유명하지 않았던 레베카 드 모네이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모네이는 <요람을 흔드는 손>을 통해 제1회 MTV 영화 및 TV시상식에서 '최고의 악당상'을 수상했다.

둘째 아이를 가진 가정주부 클레어(아나벨라 시오라 분)는 산부인과 의사에 의해 추행을 당하고 고민 끝에 이를 고발한다. 그러자 그 의사에게 당했던 다른 피해자들이 속속 등장했고 결국 의사는 자살을 선택했다.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아 재산을 모두 잃고 아이까지 유산된 의사의 아내 모트 부인은 페이턴이라는 이름으로 위장해 복수를 위해 클레어 부부가 살고 있는 집의 유모로 들어간다.

페이턴이 클레어의 집에 들어갈 때만 해도 그녀가 자신의 불행을 가져오게 한 클레어와 그녀의 아이들을 살해할 계획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페이턴은 오히려 클레어의 아들 죠에게 젖을 물리며 정성스럽게 돌보고 클레어의 딸 에마(마델린 지마 분) 역시 친딸처럼 정성스럽게 키우며 클레어와 에마의 사이를 갈라 놓으려 했다. 페이턴의 목적은 클레어의 가족을 죽이는 게 아니라 클레어로부터 사랑하는 사람을 모두 빼앗는 것이었다.

<요람을 흔드는 손>을 통해 흥행 감독이 된 핸슨 감독은 1995년 메릴 스트립 주연의 <리버 와일드>를 연출했다. 그리고 1998년에는 '20세기 최후의 누아르 걸작'으로 불리는 < LA 컨피덴셜 >을 만들며 감독으로의 역량을 인정 받았다. 2003년 래퍼 에미넴의 언더그라운드 시절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든 < 8마일 >을 연출한 핸슨 감독은 2012년 <체이싱 매버릭스>를 만든 후 2016년 건강악화로 세상을 떠났다.

뛰어난 기지로 가족들 지킨 클레어
 
 클레어 역의 아나벨라 시오라는 1998년 고 로빈 윌리엄스와 <천국보다 아름다운>에 출연했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사랑하는 남편, 귀여운 아이와 행복하게 살고 있던 클레어는 자신이 산부인과 의사에게 당한 피해를 세상에 알렸다는 이유로 그의 아내에게 원한을 사게 된다. 클레어는 페이턴의 방해로 남편, 아이와의 사이가 점점 멀어지는 걸 느끼고 이 모든 것이 페이턴의 계획임을 알게 된다. 클레어는 페이턴과의 거친 몸싸움 도중 자신이 천식 환자라는 사실을 역이용해 페이턴을 방심시킨 후 그녀를 창문에서 떨어트리며 자신과 가족들을 지켜냈다.

호러 영화에서는 영화 내내 착하게 나오는 캐릭터가 후반부에 '알고 보니 무서운 살인마였다'는 식의 반전이 종종 등장하곤 한다. 하지만 <요람을 흔드는 손>에서 어니 허드슨이 연기한 솔로몬은 무서운 인상과 달리 끝까지 착한 인물로 나온다. 특히 영화 초반 갓난아기인 죠를 만지지 말라는 클레어의 말을 듣고 잔뜩 풀이 죽었던 솔로몬이 마지막 장면에서 죠를 안고 감격스런 표정을 짓는 장면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요람을 흔드는 손>에는 칸 영화제와 베니스 영화제, 베를린 영화제, 아카데미 시상식,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쓴 대배우가 조연으로 출연했다. 바로 클레어의 친구이자 남편 마이클의 첫사랑 말린 크레이븐을 연기한 줄리안 무어다. 말린은 가장 먼저 페이턴의 정체를 알아내고 클레어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 했지만 페이턴이 클레어를 죽이기 위해 만든 함정에 걸려 잔인하게 목숨을 잃는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