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가 내는 소리에 귀 기울이면 답을 찾을 수 있을까
[김희연 기자]
▲ 영화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스틸컷 |
ⓒ 판씨네마(주) |
요즘 들어 종종 시냇물처럼 흘러가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사는 게 이리 고되고, 살아도 살아도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더라면 덜 힘들었을까. 욕심도 많고 고집도 센 내가 참 많이도 꺾였구나, 혼잣말을 늘어놓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는 반가운 일이기도 하고.
졸졸졸 막걸리를 병 안에 담기도 했다가 큰 생수통에 옮겨 담기도 하면서 막걸리가 들려주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아이. 영화 <막걸리가 알려줄거야>에 나오는 귀여운 동춘이는 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짓게 된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이름도 동춘이라니. 이렇게 찰떡일 수가 없다. 막걸리가 꾸준히 보내는 모스 부호 신호를 지친 기색 없이 페르시아어로 바꿔서 해석하는 영특한 동춘이를 보며 씰룩거리는 나의 입술 근육을 느낄 수 있었다. 최근에 눅진하다, 라는 표현을 알게 되었는데 동춘이에게 잘 어울리는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
▲ 영화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스틸컷 |
ⓒ 판씨네마(주) |
학교 수업이 끝나면 어느새 학원을 가야했지만 그래도 다행이었던 건 나에겐 숨 쉴 틈이 있었다는 것. 동춘이가 잠시 눈을 감고 상상의 세계로 떠나 귀여운 친구들을 만났던 것처럼. 어찌 보면 이것이 동춘이가 자신을 지키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나의 경우, 학교 수업이 끝나고 학원 수업이 시작하기 전까지 친구들과 공원에서 신나게 놀았던 시간들이 나를 지켜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운이 좋아서 나는 지금도 그 공원을 종종 들른다. 어릴 때 뛰어놀았던 장소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은 때때로 묵직한 응원이 된다. 주변 환경과 현재 시대의 흐름에 어울리지 않다고 해서 없어지는 곳들이 많은데 그 가운데서도 묵묵히 살아남은 나의 어릴 적 작은 공원이 대견하다. 얼음땡도 하고 탈출 놀이도 하고 이름도 없는 말도 안되는 놀이를 하던 그곳이 내게는 아직도 자리하고 있다. 아주 크게, 소중하게 말이다.
동춘이처럼 어린 나도 나만의 세계로 떠난 적이 있다. 학원 의자에 앉아 있으면서도 속셈 학원에 왜 가야 하는지, 속셈과 보습 학원의 차이는 무엇인지, 피아노 연습 카드는 왜 꼭 다 색칠해야 하는지 등의 여러 의문들이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나를 학원에 보낸 엄마, 아빠와 학원에 있는 선생님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궁금했을 뿐이지.
돌이켜보면 이 또한 운이 좋았다. 학원이든, 학습지든 소화할 수 있을 만큼 했으니까. 나이를 먹고 세상살이를 하고 있는 지금, 여전히 '나'라는 존재를 탄생시키고 길러준 엄마와 아빠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 그 문턱 어딘가도 가지 못했고 영원히 언저리를 맴돌지도 모르겠다.
▲ 영화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스틸컷 |
ⓒ 판씨네마(주) |
그때의 나처럼 그 시절을 통과하고 있는 작은 친구들에게 얘기해주고 싶다.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영화 속 동춘이처럼 세상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시간을 꼭 가지길. 그래서 어른들이 이걸 왜 하라는지 알 수는 없어도 어른들을 미워하지 않기를. 막걸리가 병에서 생수통으로 마지막에는 자신이 탄생한 곳으로 흐르듯, 졸졸졸 흘러가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그들도 나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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