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컵 솔 교수 "풍족과 결핍의 시대…韓 자산·부채 관리 필요"

차민영 2024. 3. 19.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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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한국회계기준원서 본지 인터뷰
"불만 멈추고…미래 충격 대비·관리 필요"
민주주의 위해 정책·지표 이해할 수 있어야
제이컵 솔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 교수

"우리는 풍족과 결핍의 시대를 살아갑니다. 국가는 모든 자산을 잘 관리하고 모든 부채를 인식해야 하며 이는 매우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문제입니다. 국민들 역시 회계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제이컵 솔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 교수는 15일 오전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국회계기준원에서 진행된 본지와의 대면 인터뷰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매개'로서의 회계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솔 교수는 최근 국가회계재정통계센터, 한국회계연구원, 한국회계학회가 개최한 공동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솔 교수가 방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그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회계가 국가재정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한 '회계는 어떻게 민주주의를 구할 수 있는가(원제 Public net worth: Accounting, Government, Democracy)'를 펴냈다. 기후변화와 고령화 같은 전세계 정부의 장기적인 재정적 도전과제를 살피는 한편, 회계에 대해 민주사회 시민들에게 필요한 '덕목'이라는 의의도 부여했다.

솔 교수는 "영국은 지난 12년 동안 쌓인 부채와 형편없는 재정관리로 인해 붕괴 직전 상태에 도달했다"며 "우리는 이 시점에서 잘 관리되지 않은 것들을 감당할 여유가 없다. 위기가 닥치기 전에 문제에 직면할 수 있도록 회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기업들에 주로 쓰였던 회계 잣대를 국가재정까지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한국 역시 국가에 막대한 비용을 안기는 공공자산이 있다면 과감히 쳐내고 부채를 적극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솔 교수는 "다음 (미국) 대선 후 미국이 한국을 얼마나 보호할 것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며 "한국은 국방 부문에서의 예상 과제에 대비할 수 있도록 예산을 관리해야 한다"고 일침했다.

반대로 한국은 가진 자산이 매우 많은 풍족한 나라이기도 하다. 일례로 전세계적인 호응을 얻고 있는 K드라마, K팝 등 한국의 문화자산이 대표적이다. 솔 교수는 직접 스마트폰을 켜 본인의 넷플릭스 계정을 보여주면서 "넷플릭스를 보면 한국 작품이 4분의 1 정도를 차지하는 듯하다"며 '스카이캐슬', '킹덤' 등 한국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를 언급했다. 한국의 세계적인 교육열 역시 장기적인 부와 경제력을 창출할 수 있는 원동력 중 하나이기도 하다.

솔 교수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한국은 민주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매우 독특한 나라다. 한국인들은 불만을 토로하는 것을 멈추고 현재 가진 것들과 이를 보호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모든 도구가 필요하고, 미래에 다가올 충격에 대비하는 한편 관리를 더 잘해야 한다. 세계 최고의 회계사와 공공 회계 협회·기관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책 제목이기도 한 공공순자산은 국가의 적자나 세금 수입, 국내총생산(GDP) 외에도 폭넓은 의미를 담은 개념이다. 회계기준으로 국가가 보유한 가치가 있는 모든 것들을 포함한다. 이 때문에 국가에 대한 포괄적인 재무상태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일례로 미국은 불필요하게 많은 주차장을 보유하고 있다. 주차장뿐만 아니라 사용성 없는 인프라들은 비용만 발생시킬 뿐 수익을 내지 못하고 국가재정을 좀먹는 부채다. 이 같은 공공자산을 더욱 효율적으로 관리함으로써 교육·의료·군대 등 사회의 다양한 수요를 반영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회계는 국가의 재정관리 수단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를 사는 개개인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솔 교수는 "연금이나 인구구조 위기 같은 경제 또는 사회 문제가 있다면 토론을 기반으로 민주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민주사회의 시민들은 '빅 브라더'가 본인들을 대신해 결정을 내리도록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고 짚었다. 빅 브라더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가공의 인물로 텔레스크린을 활용해 정보를 독점하고 사회를 통제한다. 전체주의와 독재자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솔 교수는 "영어로 'accountability(책임감)'는 회계에서 나온 용어"라며 "만약 사람들이 더 나은 정책을 원한다면 이것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해야 하는데 이를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은 지표를 살피는 것으로, 지표들은 회계뿐만 아니라 이상적 관점에서 포괄 재무제표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던캘리포니아대학에서 역사학, 철학, 회계학을 가르치는 솔 교수는 2011년 맥아더 지니어스 펠로십을 수상하며 학계에서 '천재 소장학자'로 주목받았다. 그는 스페인, 포르투갈 정부의 경제정책 자문을 비롯해 2017년 그리스 금융개혁 및 부채관리에 관한 그리스 정부의 자문 역할을 맡은 바 있다.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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