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벼랑 끝 피해자들, 회생법원으로 달려갔다[주가조작과의 전쟁]
고소득·자산가 다수… 채권자 동의율 ↑
'라덕연 공범' 병원장의 일반회생 신청은 기각
#. A씨는 연매출 100억원 이상 병원의 공동병원장이다. 그는 지인 의사의 권유로 2021년부터 라덕연 호안투자자문 대표 일당을 통해 투자를 진행했다. 한때 투자원금 50억원에 수익금 27억원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올렸지만, 지난해 주가 폭락 사태가 터지고 차액결제거래(CFD) 계좌 손실로 총 56억원의 부채를 떠안게 됐다.
#. 한의사 B씨는 라 대표 일당에 투자를 일임했다가 11억원을 날렸다. 그런데 총부채 규모는 159억원에 달했다. B씨는 라 대표 일당이 거래한 매매내역을 보고, 동일 종목을 개인적으로 투자했다가 손실을 키운 것으로 나타났다.
#. 대기업 임직원 C씨는 호안투자자문의 영업이사인 매형의 권유로 투자한 사례다. CFD 계좌로 들어간 C씨의 투자금은 주가 폭락 이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부채는 16억원까지 불어났다.
#. D씨는 절친의 소개로 라 대표 일당에 투자를 맡겼다. 그 친구는 라 대표의 여동생이었다. D씨는 총 6억원을 투자했는데, CFD 손실로 10억원의 부채가 생겼고, 현재 총 부채는 22억원이다. 영어학원 강사인 그의 한달 급여는 350만원가량이다.
'라덕연 게이트' 사건으로 거액의 빚을 떠안은 투자피해자 중 24명이 서울회생법원에서 회생 계획을 인가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회생은 일정한 소득이 있는 채무자가 채권을 갚기 어려울 때 법원에서 채무를 감면해주는 제도다.
19일 아시아경제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라덕연 게이트 사건과 관련해 현재까지 서울회생법원에 접수된 회생 신청 사건은 일반회생 22건과 개인회생 5건을 합쳐 총 27건이었다. 회생계획안이 인가된 경우는 일반회생 20건, 개인회생 4건으로 총 인가율은 88.8%였다.
그간 피해자들은 '미수·미납금에 대한 채권추심을 진행하겠다'는 증권사 등 채권자의 압박과 고통을 겪었다. 투자금이 CFD에 활용된 경우일수록 손해는 더욱 컸다. CFD는 실제 주식을 보유하지 않고도 가격 변동에 따른 차익만 정산하는 장외 파생상품인데, 높은 레버리지(차입) 효과 때문에 주가 하락 시 손실 규모도 불어난다. 일부 피해자는 자신의 투자금이 CFD 계좌로 들어가는지 몰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금융당국과 수사기관의 조사가 장기화하고, 손해 복구가 어려워진 피해자들은 회생법원 문을 두드려야 했다.
개인회생은 채무 부담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월급 등 일정 소득이 있는 사람을 구제하는 제도다. 일정한 소득이 있는 채무자들이 신청하며, 최장 5년간 일정 금액을 변제하면 나머지를 면책받을 수 있다. 다만 개인회생 절차를 이용하려면 무담보채무가 5억원, 담보부채무가 10억원 이하여야 한다. 라덕연 사태에서 대부분의 투자자는 부채 규모가 커 일반회생 절차를 밟아야 했다. 이는 개인이 통상적으로 10년 동안 장래에 벌어들일 수입으로 채무를 나누어 변제하고, 나머지 채무를 면제받는 절차이고, 채권자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라덕연 사태 피해자들의 인가율이 비교적 높게 나타난 이유는 피해자 대부분이 전문직 종사자와 사업가 등 고소득·자산가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직업별로 보면, 일반회생 신청인 22명 중에선 의사가 13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밖에 ▲한의사 2명 ▲사업가 3명(제조업·임대사업·귀금속판매업) ▲대기업 임직원 1명 ▲학원강사 1명 ▲공무원 1명 ▲갤러리 운영자 1명 등이 일반회생을 신청했다. 일반회생 신청인의 부채 규모는 15억원에서 159억원까지 다양했다.
서울회생법원 관계자는 "정상적인 영업활동 중이었기 때문에 계속기업가치(존속가치) 및 변제율이 비교적 높아 채권자의 동의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통상 회생절차에 이르게 되는 사람들은 매출 하락과 영업이익 감소, 고금리에 따른 금융부채 증가 등으로 재정적 파탄 상태에서 들어온다"며 "라덕연 사태의 피해자들은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로 회생절차에 들어온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라 대표의 공범으로 기소된 병원장 주모씨(51)가 낸 일반회생 신청은 기각됐다. 라 대표의 지인인 주씨는 이번 사건에서 의사 투자자들을 끌어모으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채권자가 회생절차 개시에 반대 의견을 내면서, 서울회생법원은 회생절차 진행이 채권자 일반의 이익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부채가 269억원에 달하는 그는 23억원의 자산 대부분이 추징보전 대상이었다.
주씨를 제외한 신청인 대부분은 회생계획안 인가 결정을 받았다. 이는 채권단과 협의를 완료해 법원이 상환계획을 인정했다는 의미다. 이외 신청 취하는 1명, 최근 접수는 1명이었다.
서울회생법원 관계자는 "'라덕연 사태' 이전엔 증권사를 채권자로 둔 채무자의 회생 신청 사례가 드물었다"며 "이에 따라 각 회생 담당 재판부가 각자 맡은 사건과 관련 자료를 공유해 사건 처리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변제율에 따른 채권자의 동의 기준 등 판단 근거를 구체화했다"고 전했다.
편집자주 - 주가조작 관련 범죄 중 역대 가장 큰 규모(부당이득 합계 7305억원)의 '라덕연 게이트'가 발생한 지 1년(2023년 4월24일)이 되어가고 있으나, 여전히 피해자들의 악몽은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 자본 시장에 실효성 있는 피해자 방안은 없습니다. 소송밖에는 답이 없으나 비용 부담과 피해입증 어려움으로 엄두조차 내지 못합니다. '라덕연 게이트'로 형사처벌의 한계점을 보완하고 실효성 높은 금전적 제재를 도입한 자본시장법 개정은 의미가 크지만 다양한 형태로 지속해서 증가하는 증권 범죄를 근절하려면 이를 효율적으로 적발·조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신속·엄정한 제재를 위한 추가 제도개선이 필요합니다. 아시아경제 증권자본시장부 특별취재팀은 해외 자본시장 선진국의 제도를 살펴보고, 증권 범죄를 억제하기 위해 우리 시장의 과제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점검해 봅니다. 또한 지능적·조직적인 범죄행위가 발생하는 만큼 투자자의 피해구제를 위한 실효성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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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 이선애 부장 △김민영 황윤주 차민영 김대현 기자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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