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감자 편지만 믿고 17차례 비대면 처방 의사의 최후 [디케의 눈물 199]

김남하 2024. 3. 19.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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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의사, 진단 없이 편지만 보고 처방전 교부…법원 "벌금형 및 면허정지 처분 정당"
법조계 "의료법상 대면 처방 원칙…편지 통해 진찰시 최소 한 번 대면했어야"
"17차례나 비대면 처방…고의성 및 중대한 과실 따졌을 때 형량 더 높았어야"
"솜방망이 처벌, 국민 상대적 박탈감 초래…의료인, 엄격한 주의 의무 필요"
ⓒgettyimagesBank

수감자의 증상을 편지로만 전해 듣고 처방전을 발급한 의사가 벌금형 및 면허정지 처분을 받자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법조계에선 대면 진찰없이 처방전을 교부하는 행위는 의료법상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고 처방한 의약품 중 향정신성의약품도 포함돼 있는 만큼 면허정지 처분은 정당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17회나 대면 없이 처방한 의사의 중대한 과실을 따져 봤을 때 형사처벌 수위가 더 높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는 A씨가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낸 의사면허자격정지처분 취소소송에서 최근 원고패소 판결했다. 앞서 A씨는 2019~2020년 총 17차례 교도소 수감자 B씨 등의 편지 내용을 바탕으로 처방전을 작성해 교부했다. A씨가 약을 처방해 준 수감자 중엔 마약사범이 섞여 있었는데 A씨는 이들에게 마약성 의약품도 처방해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법원은 의료법 위반 혐의로 A씨에게 벌금 300만원 약식 명령을 내렸고 복지부는 이에 따라 2022년 A씨의 면허를 2개월간 정지했다.

A씨는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복지부의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행정심판을 제기했으나 같은 해 11월 기각됐다. 이에 A씨는 "수감자들이 통증을 호소하기에 의사로서 책임감과 안타까운 마음을 느껴 최소한의 비용만으로 처방전을 발급했을 뿐 경제적 이익을 얻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환자를 직접 진찰하지도 않은 의사가 처방전을 발급하는 행위에 대해 엄격한 제재를 가할 필요가 있다"며 "처방한 의약품 중에는 오·남용 우려가 있는 향정신성의약품도 포함돼 의료질서를 심각히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안영림 변호사(법무법인 선승)는 "의료법에 따르면 직접 진찰한 의사가 아니라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처방전을 작성하여 환자에게 교부하거나 발송하지 못하며 환자도 처방전을 수령하지 못한다"며 "전화 통화나 편지 만으로 진찰이 이루어지는 경우 최소한 그 이전에 의사가 환자를 대면하고 진찰하여 환자의 특성이나 상태 등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는 사정 등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gettyimagesBank

그러면서 "자격정지 처분은 행정처분기준에 따른 것이기에 적정해 보인다"며 "다만 일반적인 약이 아닌 향정을 직접 진찰하지 않고 처방한 사안이므로 처벌 수위를 조금 더 높일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현행 의료법에는 직접 진찰하지 않고 처방전을 교부했을 경우 법정형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김도윤 변호사(법률사무소 율샘)는 "편지로만 증상을 전해 들어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처방전을 교부했다는 점만 적발된 것으로 보인다. 만약 마약사범인 것을 알고도 향정을 처방했다는 사실이 입증되면 공범으로 묶여 더 센 처벌을 받았을 것이다"며 "교도소 내에도 의사가 상주하거나 정기적으로 방문해 검진할 수 있는데 외부 의사가 대면하지도 않은 수형자의 처방전을 교부할 수 있는 시스템의 문제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한 두 차례가 아닌 17회나 교부를 했다면 그 자체 만으로도 의사의 고의성이나 중대한 과실을 따져 봤을 때 형량이 조금 더 높았어야 한다"며 "최근 의료대란 이슈가 크게 불거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처럼 솜방망이 처벌이 나오면 국민 입장에서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법원과 의료인 모두 의무와 책임감을 갖고 자정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약 A씨에게 편지를 보낸 수형자들이 수감 전 A씨로부터 진료를 받아왔던 환자라면 처벌이 가벼워졌을 것이다. 외부와 격리된 수형자와 원격 진료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므로 기존에 처방한 수면제 등을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교부했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수 있다"며 "그러나 전혀 모르는 엉뚱한 사람에게 줄 목적으로 처방을 했다면 처벌이 세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환경 관리에 대한 의사들의 엄격한 주의 의무를 확인하는 판례이자 단순히 형식적인 관리가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본인이 엄격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음을 주지시킨 판례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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