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난민, 동물 먹이까지 먹는다…그곳은 재앙 그 자체"

박현주 2024. 3. 19.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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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 여러 대로 계속 구호품을 들여보내지 않는 이상 가자 지구 북부에는 기근이 닥치고 말 겁니다.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사태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칼 스카우 WFP 사무차장이 14일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는 모습. 김종호 기자.


칼 스카우 유엔세계식량계획(WFP) 사무차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지난 14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진행된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지난해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후 "가자 지구의 상황이 전례 없는 속도로 악화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해 12월 직접 가자지구를 방문해 민간인들에게 닥친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을 목격했다.

스카우 사무차장은 이날 당일 일정으로 방한해 강형석 농림축산식품부 기조실장, 원도연 외교부 개발협력국장 등 정부 관계자와 면담하고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적 지원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도 만났다. 오전 열린 글로벌 지속가능발전포럼에선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도 조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칼 스카우 WFP 사무차장은 14일 "가자 지구의 인도적 위기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김종호 기자.

Q : 가자지구를 직접 방문했는데 실상이 어떤가.
A : 재앙 그 자체다. 북부 상황이 특히 심각하다. 굶주린 난민들이 동물의 먹이까지, 구할 수 있는 건 모두 먹는다. 음식이 없는데도 요리하는 시늉을 하며 아이를 달래는 어머니도 있다. 어린이 다섯 명에 한 명 꼴로 심각한 영양실조에 시달린다. 열에 아홉은 어떤 종류든 병에 걸려 있다. 굶주려 사망하는 사례도 속출한다. 가자지구 남부 또한 위생과 피란시설의 과밀 수용 문제가 심각하다.
스카우 사무차장은 "기근이 코앞에 있다"며 간절한 어조로 가자 지구의 참상을 토로했다. 가자 지구 북부는 현재 유엔의 식량 위기 5단계 중 가장 심각한 '재앙·기근'에 접어들었다. WFP는 12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북부의 최대 도시 가자시티에 약 3주 만에 트럭 6대를 통해 구호품을 전달했다. 전쟁 이후 이스라엘 통행로를 통해 가자지구 북부로 직접 구호 식량이 전달된 건 처음이다.

지난 4일 영양실조로 사망한 가자 지구의 10살 소년 야잔 카파르네. 뇌성마비를 앓던 야잔은 전쟁 후 약물과 영양식을 얻을 수 없어 건강이 악화했고 결국 숨졌다. AFP. 연합뉴스.

Q : 북부로의 진입로는 어떻게 확보했나
A : WFP는 북부로 접근할 수 있는 극소수의 기관 중 하나다. 앞서 실패한 적도 여러 번 있다. 지난 5일에도 눈에 띄지 않는 새벽 시간을 골라 트럭 14대를 보냈지만, 가자지구 남·북부를 가르는 와디가자(Wadi Gaza) 검문소에서 당초 약속과 달리 가로막혔다. 그리고 동이 트자 구호품을 모두 약탈당했다. 이번에는 실패 가능성을 고려해 신중히 접근했고, 트럭 6대만 우선 보냈다. 북부에 전달할 식량은 다 준비돼 있다. 매일 전달하기를 희망하지만, 지속 가능한 접근권을 보장 받는 게 관건이다.

지난 12일 구호품을 실은 WFP의 트럭이 가자지구 북부 지역으로 향하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스카우 사무차장의 설명처럼 가자지구 북부의 경우 그간 이스라엘의 통제 등으로 구호품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지난달 29일에는 구호 트럭에 몰려든 민간인 112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고, 지난 14일(현지시간)에도 비슷한 구호 트럭 참사가 재발해 최소 20명이 숨졌다.

지난해 12월 칼 스카우 WFP 사무차장이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를 방문한 모습. WFP.

Q : 미국은 가자지구 해안에 구호품 전달을 위한 항구를 신설하기 시작했다.
A : 항구 건설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 공중 투하(air drop)를 하더라도 상징적 의미가 클 뿐 실제 전달되는 양은 너무 적다. 트럭 한 대에 실을 구호품의 절반 정도만 공중 투하 한 회를 통해 전달할 수 있다. 다른 어떤 방법보다도 육로를 통한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

칼 스카우 WFP 사무차장이 14일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는 모습. 김종호 기자.


한편 역시 만성적인 식량난에 시달리는 북한 지원과 관련해 스카우 차장은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며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북한은 2020년 1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국경을 닫아걸고 국제기구 관계자들을 모두 내보낸 뒤 아직 복귀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WFP는 올해 대북 지원 예산을 2억 4771만 달러(전년 대비 3272만 달러 증액)로 책정했지만 실제 지원에 나서지는 못하고 있다.

Q : 북한이 최근 서방과 국제기구에도 외교의 문을 열려는 조짐을 보인다. 희망적 신호일까.
A : 우리를 다시 초청해준다면 언제든 대북 지원 사업을 재개할 준비가 돼 있다. 코로나19 사태 당시 WFP는 가장 마지막 순간에 북한을 떠났는데, 이제는 가장 먼저 북한으로 복귀하는 기관이 되고 싶다. 지난 수십 년 간 평양뿐 아니라 북한 전역에서 주민들을 도운 경험을 바탕으로 지원 프로그램을 재가동할 수 있다.

2019년 4월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의 공동 조사단이 북한 황해북도에서 현지 조사하는 모습. FAO·WFP. 연합뉴스.

Q : 글로벌 인도적 위기를 해결하는 데 있어 한국의 역할은.
A : 재정적 기여뿐 아니라 정치적 의제를 활성화하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 각국이 국제인도법을 준수하도록 촉구하거나 미얀마, 아프가니스탄의 인도적 위기 등 상대적으로 서방의 관심이 떨어진 이슈에 대해 관심을 환기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이 올해부터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활동하게 돼 기쁘다. 최근 안보리가 정치 역학으로 인해 여러 과제에 직면해 있지만 한국과 같은 창의적이고, 야심 차며, 대담한 국가들이 존재감을 보여주고 다양한 의제를 이끌 수 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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