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현의 시선] 대통령의 ‘박력’이 놓치면 안 되는 것
전공의들이 사라졌다. 한국 주요 병원 의사의 40%를 차지하던 이들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의대 정원 2000명 확대를 밀어붙이면서 벌어진 일이다. 정부는 의사들의 집단 사직과 복귀 명령 불복에 의료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고 본다. “일찍 돌아오면 선처할 수 있다”는 당근도 제시하지만, 진료 공백의 책임에 대한 채찍은 엄중하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볼모로 한 집단행동”(윤 대통령 국무회의 발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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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수수사 닮은 의대 증원 추진
윤석열·한동훈식 박력 보여줘
‘정교한 박력’은 객관성 갖춰야
」
숫자로 인한 갈등은 ‘존재론적 담론’으로 확장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은 국가가 존립하는 이유이자 정부에게 주어진 가장 기본적인 헌법적 책무”라는 게 윤 대통령의 논리다. 필수 의료와 지역 의료 붕괴라는 현실에 대응해 ‘헌법적 책무’를 다하려는 정부의 박력(迫力)에 여론은 환호한다.
귀에 꽂히는 간결한 메시지, 준엄한 명분, 물 샐 틈 없는 법리, 선과 악의 대결 구도…. 의대 증원 정책은 전형적인 ‘윤석열 스타일’로 진행되고 있다. 서울대 법대-대검 중수부 후배인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서도 포착되는 스타일이다. 지난해 12월 26일 위원장직을 수락하면서 한 연설이 근거다. “정교하고 박력 있는 리더십이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만날 때, 나라가 발전하고 국민의 삶이 좋아진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정교한 박력.’ 그것은 윤석열과 한동훈을 연결하는 백전불태의 방법론이다. 과거의 몇몇 대형 특수수사가 그런 패턴이었다. 귀에 쏙 들어오는 메시지만으로도 수사의 당위성에 박수를 보내게 되는 사건들이다. 가까이는 ‘국정 농단’, ‘사법 농단’이 예다. 거슬러 올라가면 2006년의 론스타 사건도 그중 하나다. 부실한 은행을 해외 사모펀드(론스타)에 더 싸게 매각하려는 로비와 배임이 있었다는 의혹에 대한 수사였다. 윤석열·한동훈 검사가 참여한 수사팀은 사건을 ‘해외 투기자본의 먹튀’라고 규정했다. 우리의 알짜 금융사를 ‘해외’에서, 그것도 투자가 아닌 ‘투기’로, 싸게 사서 비싸게 되팔아 이익만 먹고 튄다고? 이 수사에 반대할 국민이 있겠는가. 혈기왕성한 정의감, 쾌도난마로 비리를 척결하는 박력은 늘 국민적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항상 성공으로 귀결되는 건 아니었다. 환호와 응원의 소리가 클수록 반론과 변수는 많았다.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을 1조3000억 원대에 사서 2012년 하나금융지주에 3조9000억 원대에 팔았다. 10년의 세월에 검찰 수사와 금융 당국의 제재 등이 있었고, 헐값 매각의 앞잡이로 매도된 엘리트 경제 관료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심지어 론스타는 “한국 정부의 부당한 개입으로 더 비싼 값에 매각할 기회를 잃고 가격까지 내려야 했다”며 2012년 약 46억 달러(약 6조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투자자·국가분쟁해결(ISDS) 절차를 개시했다. 2022년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중재 재판부가 청구액의 4.6%(약 2억 달러)의 배상액을 결정했고 아직도 진행형이다.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은 “10여년간 여러 정부를 거치면서 대한민국 정부가 싸워온 사안이다. 국민의 피 같은 세금이 낭비되지 않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전공의 공백 사태에서 론스타 사건을 떠올리는 건, ‘지금 이 순간, 옳은 선택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혼란스러워서다.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최우선에 둔 과감한 박력이 선택지일 수 있지만, 박력만큼 넘치지 않는 정교함 탓에 국익을 제대로 형량했는지에 대한 의심을 멈출 수 없다.
전직 전공의 류옥하다(26·전 가톨릭중앙의료원 인턴 대표)씨는 최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잔잔한 호수에 정부가 이따만한 돌을 던졌다. 얼마나 큰 돌을 던졌기에 호수에 물결이 일듯이 집단으로 사직서를 냈겠는가”라고 했다. 그는 “쥐들도 뒤 없이 몰아세우면 자살할 수 있다”며 “지금 전공의들은 뒤르켕이 말한 ‘아노미성 자살’의 상태”라고 덧붙였다. 이는 ‘믿고 따르던 규범이 사라진 아노미 상태에서 혼란을 받아들이지 못한 개인이 자살과 같은 일탈 행동을 하게 된다’는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켕(1858~1917)의 이론이다. 얼마 전까지 초엘리트였던 MZ세대 전공의들이 범죄자처럼 전락한 자신의 처지에 절망하고 있다는 얘기다.
박력은 주관이고 정교함은 객관이다. 둘 다 취하려면, ‘숫자만으로는 의료 붕괴를 막지 못한다’는 항의를 끝까지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박봉에 주당 100시간씩 일하는 ‘의료 노예’ 생활이 계속될 것이라는 불안감도 살펴봐야 한다. 정교한 박력의 지향점은 상대를 굴복시키는 승리가 아니라, ‘나라의 발전과 국민의 삶이 나아지는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김승현 사회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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