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AI 디지털 교육에 신중한 유럽 경험 참고해야

2024. 3. 19.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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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선희 중앙대 교육학과 객원교수

유네스코가 지난해 7월 ‘인공지능(AI)과 교육의 미래 비전’이란 보고서를 발표했다. 많은 국가가 AI 기술을 적절한 검토·논의·규제나 로드맵도 없이 교육 같은 공적 부문에 바로 수용하는 것을 경고했다. 즉, 기술적으로만 빠르게 발전하는 AI로 인해 발생 가능한 위험을 너무 간과하지 말라는 권고였다.

[일러스트=김지윤]

「 유네스코, 규제 없는 AI 교육 경고
디지털 중독과 낮은 문해력 걱정
초등생 디지털 사교육 열풍 우려

유네스코의 핵심 권고 내용을 보면 ‘AI 시대의 교육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깊이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AI 기술이 언제 누구에게 어떤 이유로 사용돼야 하고, 또한 사용되면 안 되는지에 대한 규범이 먼저 확립돼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에 따르면 AI 규범은 상업적 목적으로 AI를 개발한 기업이 아니라 교육 전문성을 가진 주체에 의해 만들어져야 한다. 디지털 교과서나 자료는 반드시 독립기관을 두고 내용의 정확성, 연령 적합성, 교육학적 타당성, 문화적·사회적 적합성 등 최소한의 기준에 적합한지 사전에 점검해서 학교에 도입해야 한다.

올해 3월 미국 수학교사협회(NCTM)는 교육기관 중 최초로 AI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놨다. AI는 학생이 수학을 배우는 데 도움을 주지만, 필요한 경우 학생이 AI가 내놓은 결과를 절대적인 것으로 인식하지 않도록 교사가 설명할 것을 제안했다. 유네스코 권고대로 미국은 교사가 AI 사용지침을 NCTM 같은 교육전문기관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다.

10여년 전부터 선도적으로 디지털 교육을 추진해 온 핀란드·스웨덴·노르웨이·덴마크 등 유럽의 교육 강국들은 최근 학교에서 탈디지털화와 종이책 읽기, 손글씨 쓰기 등 전통적 교육 방식으로 회귀하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5년마다 초등 4학년을 대상으로 ‘국제 문해력 평가(PIRLS)’를 시행하는데 2021년 평가에서 문해력 점수가 하락했기 때문이다.

이들 유럽 국가는 학교에서 디지털 기기를 과도하게 사용해 종이책 읽는 시간이 감소한데서 문해력 하락의 원인을 찾고 있다. 핀란드의 경우 초·중학교에서는 종이책·연필·노트를 다시 사용하고, 디지털 교과서는 고교부터 사용하도록 정책을 바꾸는 중이다.

스웨덴은 10세 미만의 글쓰기 수업에서는 태블릿 사용을 금지하고, 6세 미만은 디지털 학습 자체를 중단할 계획이다. 네덜란드도 교실에서 태블릿·인터넷·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다.

이들 유럽 국가는 문해력 형성에 가장 중요한 초·중학교 시기에 문해력 교육에 집중할 수 있도록 디지털 교육을 고교 이상으로 늦추고 있다. 이와 달리 한국은 2025년부터 초등 3~4학년과 중학 1학년생에게 AI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할 예정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3년마다 만15세 대상으로 ‘국제 학업성취도 비교연구(PISA)’를 시행한다. 한국은 2006년 이후 PISA 읽기 부문에서 하위권 학생 비율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한국도 문해력 하락 문제에서 유럽처럼 자유롭지 않다는 얘기다.

따라서 교육부는 초등학교의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이 아이들의 문해력 교육에서 득과 실이 무엇인지 잘 따져볼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처럼 사교육이 극심한 가운데 초등학교에서 디지털 교과서를 전면 사용할 경우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디지털 사교육 열풍을 얼마나 막을 수 있을지도 걱정스럽다.

출생부터 디지털기기에 과다 노출된 디지털 세대는 문해력 저하 외에도 종이책 난독증, 디지털 중독증 등 새로운 문제를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에서 디지털 교과서를 전면적으로 도입하면 지금껏 드러나지 않은 많은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높다. 유럽 국가의 데이터도 참고하고, 예측 가능한 문제에 대한 규제도 마련하면서 부분적이고 점진적으로 도입해 가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

교육부는 ‘모두를 위한 맞춤 교육’을 위해 AI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한다지만, 진정한 맞춤 교육은 AI 디지털 교과서로만 구현되지 않는다. 학생의 연령, 능력 수준, 학습 동기, 학습 성향, 디지털기기 선호도 등에 따른 교수 및 학습 전략의 세분화가 우선돼야 한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학생이 종이책 대신 디지털 교과서를 사용할 경우 자칫 또 다른 교육 불평등이 야기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채선희 중앙대 교육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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