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가는 3.4배가 됐다는데… [김선걸 칼럼]
지난해 연말 기준 국내 주식 투자자는 총 1424만명이다. 5년 전 502만명에서 세 배로 급증했다. 한 가정당 한 명은 주식 투자자인 셈이다. 그만큼 주식 시장에 관심도 높아지고 민감해졌다.
만약 주식 가격을 두 배로 올려주면 어떨까.
1424만명 개인 투자자들의 자산이 두 배가 되고, 상장기업들 가치도 두 배가 된다. 대주주도, 소액주주도, 세금을 받는 정부도 모두 행복할 것이다. 이런 완벽한 정책이 또 있을까. 액면 그대로 본다면 지난달 발표됐던 ‘밸류업 프로그램’이 바로 이런 정책이다.
한국 주식 시장은 저평가돼 잠재력이 크다. 최근 미국, 일본 등 다른 나라 주가가 오르던 타이밍이라 기대감도 높았다.
실제 한국 증시는 너무 오래 지지부진했다. 예를 들어 미국 S&P지수는 3월 12일(현지 시간) 기준 5175로 2013년 1498에 비해 3.4배로 올랐다. 일본 니케이지수도 같은 기간 3.7배로 성장했다. 이에 비해 한국 코스피지수는 같은 기간 단 1.35배가 됐다.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10년간 누워 있었다는 얘기다.
이는 곧 국민들의 부와 직결된다. 예를 들어 미국 가계가 보유한 자산(Household Asset)은 2013년 86조달러에서 2023년 176조달러로 105% 커졌다. 미국 가정은 두 배씩 부자가 됐다.
여하튼 한국은 중국의 영향이 큰 점, 핵을 가진 북한과 접해 있는 점 등을 감안해도 극심한 저평가다.
그러나 기대도 잠시, 지난달 26일 정작 ‘밸류업 정책’이 발표되자 증시는 실망으로 돌아섰다.
새롭거나 혁신적인 내용은 없었다. 당근도 채찍도 없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려는 의욕도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물리적인 한계는 있었다. 결정적인 ‘한 방’은 세제 개편이 필요하고, ‘조세법률주의’에 따라 국회에서 논의해야 한다. 그런데 4월 10일 총선을 앞두고 국회가 공백이었다.
정부는 그래서 ‘후속편’을 예고하고 있다. 총선 후 5월쯤 다시 이슈가 불거질 것이다. 특히 총선 결과 ‘밸류업’을 지향하는 목소리가 새 국회를 주도하게 된다면 기대감이 커질 것이다.
작은 힌트가 있다. 지난 2014년 7월, 심각한 불경기에 등판한 최경환 전 부총리의 정책, 이른바 ‘초이노믹스’는 여러 시도를 했다. 그리고 지금 전문가들 사이에서 그때 정책을 원용한 아이디어가 회자된다.
당시 정부는 세법을 개정해 고배당 기업의 주식에 대한 세율을 3년간 한시적으로 낮춰줬다.
배당율을 결정하는 것은 대주주들이다. 그런데 세율이 높다 보니 이들은 주주총회에서 배당을 줄이고, 회사 임원으로 재직하며 월급을 올려받는 등 꼼수를 선호한다. 당시 대주주는 종합소득세율 최고 38%를 적용받았는데 정부는 이를 25%로 깎아주는 대신 배당을 많이 하라고 독려했다. 소액주주 세율도 기존 14%에서 9%로 낮췄다. 파격이었다.
2024년 현재, 대주주 배당소득세율이 최대 45%다. 세율을 절반만 깎아줘도 유인이 클 것이다.
2014년 초이노믹스는 별 볼 일 없었다. 반짝하고 효과가 사라졌다.
그런데 그때와 지금은 투자자들의 민감도가 다르다. 소액주주 운동과 행동주의 펀드 영향력이 폭발적인 데다 밸류업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진전했다.
1424만명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아직 결정된 것은 물론 없다. 그리고 새 국회에서 한여름의 꿈처럼 사그라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상기해볼 만은 하다. 이런 정책이 길목 한구석에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선거가 국민들의 부와 직결될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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