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농구 구할 소방수… “앞만 보고 바르게 갈 것”

박구인 2024. 3. 17.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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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인] 남자농구 대표팀 안준호 감독
남자 농구 대표팀 안준호 감독이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사옥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환골탈태한 대표팀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농구팬의 신뢰를 회복하는 밑거름을 뿌리겠다”고 다짐했다. 이한형기자


“어찌 보면 한국 농구의 구원투수인 셈인데 국가대표팀의 재도약을 위한 초석을 놓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가는 길이 쉽진 않겠지만 좌고우면하지 않고 앞만 보고 바르게 갈 것입니다.”

안준호 감독은 올해 1월 한국 남자농구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남자농구는 지난해 10월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17년 만에 노메달에 그쳐 자존심을 구긴 상황이었다. 2011년 3월 프로농구(KBL) 서울 삼성 사령탑을 끝으로 13년간 지도자 공백기를 가졌던 그의 현장 복귀를 두고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

안 감독의 답변은 명료했다. “제가 사랑하는 한국 농구의 추락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더 내려갈 곳 없는 현실이 새로운 기회일 수도 있다”며 “환골탈태한 대표팀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농구팬의 신뢰를 회복하는 밑거름을 뿌리겠다”고 다짐했다.

안 감독은 삼성 지휘봉을 내려놓은 뒤 KBL 전무이사, 한국프로스포츠협회 전문위원 등 체육 행정가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지도자의 꿈도 버리지 않고 살았다. 지난해 미국의 한 대학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는가 하면 틈틈이 미국프로농구(NBA) 경기를 관전하며 ‘농구 공부’를 지속했다.

안 감독은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사옥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선수와 지도자, 행정가로 평생 한 길만 걸었다. 꾸준히 공부한 것도 농구가 좋아서였다”며 “제가 받은 사랑을 되갚고 싶었다. 오랫동안 남자농구가 부진했기 때문에 새롭게 감독을 시작하는 설렘보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야인’의 입장에서 한국 농구를 지켜봤던 안 감독은 조직력이 실종됐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래서 대표팀의 새 슬로건을 ‘원팀 코리아’로 정했다. 안 감독은 “남자농구가 아시안게임 때 불가항력적인 전력 차이 때문에 부진했는지 반문하게 됐다. 선수단이 하나로 뭉쳐 목표를 공유하는 팀 정신을 되살려 조직력부터 극대화해야 한다”며 “개혁보다 더 힘든 혁신으로 국가대표팀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태극마크를 단 선수들이 지녀야 할 사명감이나 책임감, 정신력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일단 대표팀에 승선하면 최상의 경기력을 위해 개개인의 희생을 감내할 줄 아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내비쳤다. 안 감독은 “팬들은 당장 국제대회 타이틀을 요구하실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국가대표 구성원다운 충실한 태도를 갖추고 이전과 다른 경기력을 펼쳐 보이는 게 우선인 것 같다”고 말했다.

안 감독은 지난달 열린 2025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컵 예선 A조 호주, 태국과의 2경기를 통해 사령탑 데뷔전을 치렀다. 오재현(서울 SK)과 이정현(고양 소노), 하윤기(수원 KT), 이우석, 박무빈(울산 현대모비스) 등 20대 초중반의 선수들을 대거 발탁해 대표팀 재정비에 나섰다. 단순한 세대교체의 목적은 아니었다고 한다.

안 감독은 “각 포지션에서 최고의 능력을 지닌 선수도 뽑아야 하지만 팀을 위해 궂은일을 감당할 수 있는 선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농구에는 공격뿐 아니라 수비도 있다. 헌신적인 플레이가 팀원 모두에게 긍정적 에너지를 주고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코트 위 무한경쟁을 통해 팀에 필요한 선수를 골라내는 일도 최고 경쟁력에 다가가는 과정”이라며 “세대교체는 인위적으로 이뤄질 수 없다. 물 흐르듯이 가야 한다”는 생각을 밝혔다.


현재 ‘안준호호’의 성적은 1승 1패다. FIBA 랭킹 50위의 한국은 호주(5위)와 3쿼터까지 대등하게 겨루다 71대 85로 졌다. 태국(90위)을 상대로는 96대 62의 완승을 챙겼다. 안 감독은 “강팀 호주를 상대로 막판 급격한 체력 저하를 겪으면서 졌지만 선수들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 건 긍정적인 소득”이라며 “첫발을 뗐을 뿐이고 더욱 단단하고 강해져야 한다.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는 소회를 전했다.

최근 아시아 농구에서 가장 관심을 받는 나라는 일본(26위)이다. 일본은 지난해 농구월드컵에서 3승 2패를 거둬 2024 파리올림픽 본선 진출권을 따냈다. 한국은 1996 애틀랜타올림픽 이후 본선 무대를 밟지 못하고 있다.

일본 농구는 2010년대 중반부터 국제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장기 계획을 세우고 인적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코트 위 공간을 넓게 활용하는 스페이싱 전술과 막강한 3점슛이라는 확고한 팀 컬러도 갖췄다. 지난달엔 88년 만에 ‘만리장성’ 중국을 꺾어 화제가 됐다.

안 감독은 “일본은 아시아인의 불리한 신체 조건을 이겨낼 수 있는 색깔을 찾았고, 눈부시게 발전 중”이라며 “모든 선수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면서 3점슛을 쏠 수 있고, 정확한 확률과 긴 슛거리까지 갖췄다”고 평가했다.

한국 농구 역시 독특한 팀 컬러가 필요하다는 데 안 감독도 공감했다. 그는 “우리 조건에 부합하는 농구를 해야 한다. 체격은 작지만 빠른 발을 이용할 수 있겠다”며 “강력한 압박 수비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른 공수 전환 등에 큰 목표를 두고 있다. 그것만이 살 길”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한국 농구만이 해낼 수 있는 경기 방식과 전술을 개발해야 한다. 더 빠르고 조직적이어야 한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일본은 대표팀 귀화선수는 물론 자국 프로농구 B리그의 외국인 선수 영입에도 적극적이다. 한국은 라건아(부산 KCC)가 단 한 명의 귀화선수로 등록돼 있다. 오는 5월 계약이 만료되면 대체 자원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안 감독은 “다음 귀화선수에 대한 논의가 미리 이뤄졌어야 하는데 늦은 것 같다”며 “대한민국농구협회와 KBL 등 농구계가 하루 빨리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한국에 필요한 귀화선수 유형에 대해선 “가드와 포워드 자원이 비교적 많은 우리의 농구 스타일이나 여러 사정을 봤을 땐 빅맨 역할에 부합하는 선수가 필요하다. 아직까지는 골밑을 지배하고 백보드를 제압할 수 있는 정통 센터가 있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1956년생인 안 감독은 소위 말하는 MZ선수들과 소통 문제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삼성 지도자 시절 코트 바닥에 한쪽 무릎만 꿇은 채 경기를 지켜보는 ‘무릎쏴 자세’로 유명했다.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면 코트에 선 선수들의 입장이나 경기 상황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고 이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대표팀 첫 소집 이후 안 감독은 한국 농구의 재도약 가능성을 충분히 봤다며 눈을 번뜩였다. 그는 “훌륭한 능력을 지닌 선수들이 많았다. 눈동자에서 열의와 열성, 집념이 보였다”며 “승패를 떠나 경기가 끝났을 때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나올 수 있는 농구를 선수들과 함께 보여드리겠다”고 전했다.

오래 전부터 사자성어 인터뷰로 주목받았던 안 감독은 ‘불광불급(不狂不及)’을 언급했다. 어떤 일을 미칠 정도로 하지 않으면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는 의미다. 안 감독은 “영특한 동물로 알려진 코끼리의 무리에서도 연장자가 모든 위험을 감수한다고 한다. 농구 인생을 통해 쌓은 경험과 지혜를 모두 쏟아붓겠다”며 “땀과 눈물, 헌신으로 대표팀 선수, 팬들과 매 순간을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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