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사 자유' 권고 낸 ILO…"전공의 사직에 미칠 영향은 미미"

나상현 2024. 3. 17.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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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의 집단 이탈 사태로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13일 민간에 개방중인 국군대전병원에서 군 의료진과 장병 등이 헬기로 이송된 환자를 응급실로 신속히 옮기는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김성태/2024.03.13.

국제노동기구(ILO)가 2022년 화물연대 총파업 당시 정부의 업무개시명령과 관련해 ‘결사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의 권고안을 내놓았다. 다만 최근 정부의 전공의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17일 고용노동부와 노동계 등에 따르면 ILO는 지난 14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350차 이사회에서 민주노총·공공운수노조 등이 제기한 화물연대 진정 사건 관련 ‘결사의 자유 위원회’(결사위·CFA) 권고안을 채택했다. 한국이 비준한 ILO 협약 제87호(결사의 자유와 단결권의 보장 협약)와 제98호(단결권과 단체교섭권 협약)을 놓고 판단한 결과다.

결사위는 “자영업 근로자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가 그들의 이익을 증진할 목적으로 결사의 자유 및 단체교섭의 원칙을 충분히 누리도록 보장해야 한다”며 화물연대 파업 참가자들에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파업 참가자가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 등을 권고했다.

고용부는 “결사위 권고에 한국의 ILO 협약 위반을 언급한 내용은 없고, 법적 구속력이 없어 직접적인 제재도 없다”는 입장이지만, ILO가 사실상 화물연대의 손을 들어줬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화물연대 총파업이 2주째 계속되고 있는 2022년 12월 8일 오전 서울의 한 레미콘 공장에 레미콘 차량이 멈춰 서 있다. 연합뉴스


최근 집단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들도 정부 업무개시명령에 대해 ILO의 문을 두드리면서 이번 권고안이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은 지난 13일 ILO에 보낸 서한에서 “정부가 사직서를 낸 전공의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고 복귀를 명령한 것은 ILO의 ‘강제 또는 의무 노동 금지’ 조항에 위배된다”며 개입(intervention)을 요청했다.

하지만 화물연대와 전공의들의 문제제기는 절차부터 다르다. 화물연대는 ILO 결사위에 ‘진정’을 제기했지만, 대전협은 ‘개입’을 요청했다. 정부는 번역상 ‘개입’으로 표현이 쓰이지만, 실제론 ILO 사무국이 당사국 정부에 관련 의견을 요청하는 것에 그치는 ‘의견조회’ 의미라는 입장이다. 공식적인 감독기구에 의한 감독 절차는 진행되지 않는다.

김형광 고용부 국제협력담당관은 “ILO 사무국은 정부 의견을 받아서 권고 등 후속조치 없이 그대로 (개입을 요청한) 노사단체에 전달한 후 종결된다”며 “이 과정에서 ILO의 가치판단은 들어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문제제기를 한 구체적인 협약 내용에도 큰 차이가 있다. 화물연대는 ‘결사의 자유’에 해당하는 제87호와 제98호를 문제 삼았지만, 대전협은 ‘강제노동금지’를 규정한 제29호에 대한 개입을 요청했다. 화물연대와 달리 파업권 침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국제노동기구(ILO) 제29호 제2호 2항 '강제노동' 제외 요건. 고용노동부 제공


ILO 제29호 협약은 처벌 위협 속에서 강요받았거나 자발적으로 제공하지 않은 모든 노동이나 서비스를 강제노동을 규정한다. 한국에선 2021년 비준을 완료해 2022년 4월부터 효력이 발생했다. 단, ▶의무적인 병역법에 의해서 강요되는 노동 ▶자치국 국민의 통상적인 시민적 의무에 의한 노동 ▶법원 판결로 강요되는 노동 ▶전쟁이나 전염병, 국민 전체 또는 일부의 생존이나 안녕을 위태롭게 하는 재해나 그런 우려가 있는 경우 강요되는 노동 등은 강제노동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전공의들의 집단사직이 ‘국민의 생존이나 안녕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번 업무개시명령이 강제근로 제외 요건이라고 보고 있다. 이성희 고용부 차관은 “의료서비스 중단은 국민의 생존과 안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행위로서,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은 국민의 건강과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정당한 조치”라고 밝혔다.

학계에서도 전공의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강제 노동’으로 보긴 어렵다는 의견이 나온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의사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기 때문에 의대 정원 등 TO가 엄격하게 관리되는 집단”이라며 “집단적으로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겠다고 나오면 정부의 의료 수급 계획 전체가 지장을 받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한 업무개시명령은 ILO 협약 예외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세종=나상현 기자 na.sang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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