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사리지 않은 코믹 연기, 홍콩 국민가수의 변신

양형석 2024. 3. 17.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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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성룡-알란 탐-관지림 콤비의 <용형호제>

[양형석 기자]

지난 2012년에 개봉한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은 김윤석과 김혜수, 이정재, 전지현, 오달수, 김수현, 홍콩배우 임달화, 특별출연한 신하균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크게 화제가 됐다. 하지만 <도둑들>은 큰 기대와 함께 할리우드 영화 <오션스 일레븐>과의 유사성으로 적지 않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각양각색의 특기와 캐릭터를 가진 도둑들이 힘을 합쳐 고가의 물건을 훔친다는 <도둑들>의 스토리는 <오션스 일레븐>과 상당부분 일치한다.

하지만 <도둑들>이 할리우드의 유명영화를 모방해 어설프게 만들어 졌다면 전국 1298만 관객을 모으며 2012년 한국영화 최다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되진 못했을 것이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이미 <범죄의 재구성>을 시작으로 <타짜>, <전우치> 등을 차례로 흥행시켰던 최동훈 감독은 <도둑들>에서도 각 캐릭터들의 매력을 최대치로 끌어낸 유쾌하고도 흥미로운 연출로 오락영화로서의 재미를 극대화했다.

사실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영화의 긴 역사에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처럼 때로는 우연의 일치로, 때로는 감독이나 제작사의 의도로 기존의 영화와 유사한 소재와 전개의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1986년 성룡이 감독과 제작, 주연을 맡은 홍콩영화 <용형호제> 역시 할리우드 영화 <인디아나 존스>와의 유사성 속에도 독창적인 재미를 선보이며 관객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국내에서 1987년에 개봉해 서울 20만 관객을 모았던 <용형호제>는 2015년 재개봉했다.
ⓒ (주)동아수출공사
 
연기활동도 활발했던 홍콩의 국민가수

물론 1960~70년대에도 홍콩영화가 꾸준히 한국극장에서 상영됐지만 홍콩영화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시기는 1980년대 중·후반부터였다. 따라서 1960년대 후반에 데뷔해 1980년대 최전성기를 달리며 고 장국영, 고 매염방과 함께 홍콩 대중음악계의 '무적 3인방'으로 불린 알란 탐은 상대적으로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일부 중·장년 대중들은 <친구여>, <단발머리> 등 조용필의 히트곡을 번안해 부른 홍콩가수 정도로만 알고 있다.

사실 전성기 시절 1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엄청난 다작을 하는 홍콩의 스타배우들에 비하면 알란 탐의 배우활동은 크게 알려지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알란 탐 역시 1975년 <대가락>을 시작으로 2018년 <동독특공>의 카메오 출연까지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6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배우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특히 대만에서 활동했던 1981년에는 <가여아시진적>을 통해 금마장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알란 탐의 연기활동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1980년대 아시아 최고의 액션스타 성룡과 호흡을 맞췄던 액션 어드벤처 <용형호제>였다. 알란 탐은 <용형호제>에서 과거 밴드활동을 함께 했다가 사이가 틀어진 후 유물도둑이자 모험가가 된 재키(성룡 분)와 납치된 여자친구를 구하기 위해 사이비 종교집단에 맞서는 알란을 연기했다. '홍콩판 <인디아나존스>'로 불린 <용형호제>는 개봉 후 아시아 전역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국내에서 지난 1989년 개봉해 서울에서만 24만 관객을 모았던 <지존무상> 역시 '배우 알란 탐'을 대표하는 영화다. 알란 탐은 <지존무상>에서 친구 아해(유덕화 분)와 홍콩 최고의 도박콤비로 활동하는 아삼 역을 맡아 도박을 끊었다가 친구의 죽음을 접하고 복수에 뛰어드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다만 알란 탐의 열연은 독이 든 술을 마시고 피를 토하며 장렬하게 죽음을 맞은 유덕화의 카리스마에 묻히고 말았다.

인기절정을 달리던 1980년대 말 신인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는 이유로 음악상 수상을 거절하기도 했던 대가수 알란 탐도 어느덧 70대의 고령이 됐다. 알란 탐은 작년 초창기에 활동했던 밴드 위너스의 결성 50주년을 맞아 콘서트를 개최해 8회 공연을 매진시키는 저력을 보여줬다. 올해도 홍콩과 아시아, 그리고 미국에서 투어를 진행중인 알란 탐은 투어를 끝내면 더 이상 상업공연에 참여하지 않고 자선공연만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성룡의 액션과 알란 탐의 코미디가 만나다
 
 성룡(오른쪽)과 알란 탐은 각각 액션과 코미디에 집중하며 <용형호제>의 재미를 주도했다.
ⓒ (주)동아수출공사
 
<용형호제>는 1981년과 1984년 스티븐 스필버그(감독)-조지 루카스(원안,편집) 콤비가 만든 <인디아나 존스>와 유사점이 많은 작품이다. 특히 인디아나 존스가 극중 고고학자와 대학교수로 포장된 도굴꾼으로 나오는 것처럼 <용형호제>의 재키 역시 모험가의 탈을 쓴 유물도둑으로 나온다. 하지만 <용형호제>는 <인디아나 존스>의 표절이라는 평가보다는 <인디아나 존스>의 영향을 받아 성룡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영화라는 평가가 더욱 많았다.

<취권>으로 시작된 성룡의 인기는 당시 홍콩은 물론 아시아 전역에서 상당히 높았다. 국내에서 지난 1987년 1월 1일에 개봉한 <용형호제>는 서울에서만 20만 관객을 돌파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80년대가 여러 상영관을 가진 극장이 거의 없었던 시기임을 고려하면 상당히 놀라운 흥행성적이었다(지난 2021년 영업을 종료한 서울극장이 3개관으로 증축하며 국내 최초의 멀티플렉스 극장이 됐던 시기도 1989년이었다).

<용형호제>의 가장 큰 볼거리는 역시 성룡과 알란 탐의 콤비연기다. 당시 성룡은 우점원 중국희극학교의 동문 홍금보, 원표와 함께 '가화삼보'로 불리는 트리오를 결성해 홍콩 액션영화의 흥행을 주도하던 시절이었다. 반면에 홍금보나 원표처럼 현란한 액션연기를 할 수 없었던 알란 탐은 몸을 사리지 않는 코믹연기로 영화의 웃음지분을 책임졌다. 알란 탐이 당시 홍콩 음악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고려하면 매우 과감한 연기변신이었다.

성룡은 <용형호제>의 액션 스턴트 장면을 촬영하던 도중 나무에서 떨어지며 머리를 크게 다쳤다. 두개골이 함몰되고 35바늘을 꿰맬 정도로 부상이 컸지만 성룡은 곧바로 촬영장에 복귀해 영화를 완성하는 투혼을 발휘했다. 실제로 영화 초반 도굴 장면에서 머리가 짧았던 성룡은 이어진 경매장 장면부터 갑자기 머리가 길어진다. 이후에도 성룡은 상처부위를 가리기 위해 몇 년 동안 장발의 헤어스타일을 유지하며 영화촬영을 이어갔다.

<용형호제> 1편이 아시아 전역에서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1991년에는 <용형호제2-비룡계획>이 제작·개봉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사하라 사막에 숨겼다는 대량의 황금을 찾는 내용으로 1편에 출연했던 알란 탐, 관지림이 빠진 대신 더욱 스케일이 커진 성룡의 액션을 볼 수 있다. 2012년에는 <용형호제3>에 해당하는 <차이니스 조디악>이 개봉했는데 중국에서의 높은 흥행에 비해 해외에서의 성적은 썩 좋지 못했다.

두 주인공이 동시에 좋아했던 히로인
 
 <용형호제>에서 청순한 매력을 뽐낸 관지림은 이후 많은 영화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전성기를 맞았다.
ⓒ (주)동아수출공사
 
작은 얼굴에 또렷한 이목구비로 1990년대 초·중반까지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배우 관지림은 <용형호제>를 통해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관객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렸다. 관지림은 <용형호제>에서 재키, 알란의 구애를 동시에 받다가 알란을 선택한 로라 역을 맡았다. 사이비 종교 단체에 의해 납치된 로라는 그들이 만든 신약을 맞고 세뇌를 당한다. 로라는 납치된 후에도 목숨을 걸고 자신을 구하러 온 재키 대신 뛰어난 말솜씨를 가진 알란을 선택했다.

<용형호제>로 주목 받은 관지림은 1989년 <지존무상>에서 남자친구인 아해(유덕화 분)를 구하러 왔다가 영화의 빌런 미야모토 타로(용방 분)가 쏜 총에 맞고 목숨을 잃는 '비련의 여인' 보보 역을 맡았다. 그리고 1991년 <황비홍>에서 개화기 여성 십삼이를 연기하며 전성기를 맞았다. <황비홍>을 대표하는 히로인이 된 관지림은 1997년 <황비홍-서역웅사>까지 5편의 <황비홍> 시리즈에 출연했다.

비록 오랜 기간 짝사랑했던 로라는 친구인 알란에게 가버렸지만 재키에게는 또 다른 러브라인이 있었다. 바로 전설의 보검 '상제무장'을 재키와 알란에게 빌려주는 부호의 딸 미미(로라 포너 분)였다. 남다른 모험심을 가진 미미는 재키, 알란과 위험한 곳에 함께 뛰어든다. 재키와는 영화 내내 여러 차례 러브라인이 생길 기회가 있었지만 '코믹 어드벤처'라는 장르의 한계(?) 때문에 재키와 미미의 달달한 장면은 번번이 개그소재로 쓰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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