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전쟁 비켜간 '2분 드라마'…미국 돈 쓸어가는 중국발 숏폼
금발의 여성이 바(bar)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 아버지가 죽고 집안이 파산하자 약혼자가 대뜸 파혼을 요구했다. 실연의 아픔을 술로 달래던 중 남자 한 명이 바에 들어온다. 파혼할 약혼자의 삼촌이자 유명한 억만장자다. 여성은 머리를 풀어헤치며 남자에게 걸어간다. "조카와 관계는요?" "이제 끝났어요" 짧은 대화가 오간 뒤, 두 사람이 키스를 나눈다.
지난달 중국 숏폼(short form·짧은 동영상) 드라마 플랫폼 릴숏이 공개한 '억만장자를 낚아채 내 남편 만들기(Snatched a Billionaire to Be My Husband)' 1화이다. 2분도 채 되지 않는 이 드라마는 공개 직후 미국 중년 여성들의 마음을 훔치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개연성이 없다고 질타받을 법한 이야기이지만, 외려 이런 짧지만 강렬한 반전과 자극적 내용이 인기 요소로 꼽힌다.
자국 내에서 한 회당 2분에 지나지 않는 짧은 드라마 여러 편으로 '숏폼 전성기'를 이끈 중국 스타트업들이 미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 전쟁이 치열하지만 이 분야 만큼은 비켜 간 모양새다. 릴숏, 플렉스 TV, 드라마박스 등 관련 기업들은 '사위의 복수' '억만장자 남편의 이중생활' 등 자극적인 제목과 반전이 거듭되는 빠른 전개로 미국 문화 시장을 침투하고 있다. 내용 검열이 심한 자국을 벗어나 해외 시장에서 수익을 얻고 싶은 중국 관련 기업과 광고 수익이 절실한 메타 등 미국 빅테크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결과란 해석이 나온다.
美 빅 테크 광고 수익 노다지?
지난해 중국의 온라인 쇼핑 플랫폼 테무가 메타에 광고비로 20억 달러(2조 6600억원)가 넘는 돈을 지불하며 메타 최대 광고주로 올랐다. 중국 숏폼 드라마 플랫폼도 메타의 인스타그램에 광고 공세를 이어가며 미국 구독자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들 앱이 내놓는 2분 드라마는 대개 80~100개 가량의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는데, 한 회를 예고편처럼 공개해 일종의 '후킹(hooking, 갈고리처럼 낚아채기)' 역할을 한다. 숏폼 드라마 특성상 다음 회차가 궁금한 사용자들이 인스타그램 광고를 타고 본 플랫폼으로 유입되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메타에 따르면 드라마박스는 현재까지 1000개 이상의 2분 드라마 관련 활성 광고를 게재하고 있다. 릴숏과 플렉스 TV도 100개 안팎의 광고를 돌리고 있다.
광고 효과도 큰 편이다. 모바일 데이터 분석 업체 센서 타워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릴숏이 처음으로 틱톡을 제치고 미국 iOS 엔터테인먼트 부문 앱 다운로드 1위에 올랐고, 이후로도 10위권 안에 자리하고 있다. 릴숏 관계자는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빅 테크 광고 이후) 전 세계 3000만 건의 앱 다운로드가 발생했는데, 그중 40%가 미국에서 발생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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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색 감추며 美 문화 산업 침투
릴숏 등 중국 숏폼 드라마 플랫폼이 이렇듯 막대한 광고비를 내면서까지 미국 시장 공략에 집중하는 이유는 자국 정부의 '콘텐트 옥죄기'가 일부 작용한 측면도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달까지 릴숏에 올라온 '2분 드라마' 2420편을 삭제했다. 선정적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자국에서 무단 삭제당한 콘텐트는 외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미국 시장에서는 인기이다.
새 시장 개척에 탄력받은 관련 기업들은 저렴한 제작 비용을 앞세워 미국 맞춤형 콘텐트를 만들고 있다. 이미 중국에서 만들어진 2분 드라마를 단순히 번역, 더빙해서 내놓기보다 아예 무명 미국 배우들을 섭외해 빠른 속도로 재촬영하고 있다. 2분짜리 드라마 80여개를 만드는 평균 제작 비용은 30만 달러(4억원) 이하이다.
이코노미스트는 "2분 드라마는 미국을 정복하기 위한 중국의 최신 수출품 격"이라며 "경제 규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문화 산업에서는 한국의 K팝·K 영화나 일본의 애니메이션에 밀렸는데, 숏폼 드라마로 반전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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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톡 금지법 영향받을까
중국산 '2분 드라마'가 미국 최대 수출품으로까지 평가받고 있지만, 릴숏 등 드라마 플랫폼은 마냥 웃을 수 없는 상황이다. 틱톡의 길을 걷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미 하원은 지난 7일 바이트댄스가 틱톡 사업을 6개월 매각하지 않으면 미국 내 앱 유통 자체를 금지하는 '틱톡 금지법'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지난 13일 압도적인 찬성표를 얻어 하원을 통과했다. 다만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 등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라 상원 통과 여부는 지켜봐야 한다.
미국이 틱톡에 부정적인 이유는 틱톡이 1억7000만명에 이르는 사용자의 개인 정보를 중국에 넘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릴숏 등 중국 드라마 플랫폼도 현재는 중국 색을 감추며 미국 문화 산업에 침투해 있지만, 언제 어떻게 틱톡과 함께 금지 법안 명단에 오를지 우려를 떨치기 어렵다"고 뉴욕타임스(NYT)는 분석했다.
김민정 기자 kim.minjeong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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