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하면 다냐” 거센 금감원 책임론…ELS 배상안 수정 요구도

정진용 2024. 3. 1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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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숙인 금감원장…제도 개선 약속
내달 대표사례 선정해 분조위 개최
소수만 금감원 중재 ‘혜택’…나머지는 은행이 알아서 하란 격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가입자 분통
홍콩H지수 ELS 피해자모임이 15일 오후 서울 중구 NH농협은행 앞에서 ‘대국민 금융 사기 규탄 집회’를 열었다. 사진=정진용 기자

금융감독원이 홍콩 H지수(중국항셍기업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책임론은 여전히 거세다. 배상기준안이 타당하지 않을 뿐더러, 금융소비자를 보호해야 할 금감원이 분쟁을 시중은행에 떠넘겨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이번 ELS 사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며,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한국경제인협회에서 개최된 ‘개인투자자와 함께하는 열린 토론’ 이후 취재진과 만나 “ELS 등 고난도 상품 판매와 관련해 당국이 면밀한 감독 행정을 하지 못했다”며 “감독 당국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으로서 송구하다”고 고개 숙였다.

이 원장의 사과에도 금융당국이 책임져야 한다는 여론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사퇴해야 한다거나 4월 총선을 앞두고 좌시하지 않겠다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15일 서울 서대문구 NH농협은행 본사 앞에서 열린 ‘홍콩 H지수 ELS 피해자모임’ 집회에서 운영진은 단상에 올라 “판매사가 금융소비자보호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는데 가입자에게 투자자 자기책임원칙을 물을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4월 총선 때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고 덧붙였다.

서울, 인천, 경남 등 전국에서 모인 이들은 머리에 ‘대국민 금융사기’라고 적힌 빨간색 띠를 두르고 도로를 빼곡히 메웠다. 주최 측이 밝힌 집회 신고 인원은 2000명이다. 참석자는 ‘은행은 금감원 탓, 금감원은 은행탓, 우리는 누가 지켜주나’, ‘국민신뢰를 이용한 제1금융의 대국민 사기극’, ‘투자성향분석은 직원개입 대리분석’, ‘사기판매 했으니 원금전액 배상해라’ 등이 적힌 피켓을 들었다. 

15일 오후 서울 중구 NH농협은행 앞에서 열린 '대국민 금융 사기 규탄 집회'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정진용 기자

배상기준안 수정 요구…“금융소비자보호법 아니라 ‘금융기관보호법’”

가입자들은 배상기준안에서 가입횟수와 가입금액에 따라 배상비율을 차감하도록 한 점을 문제 삼았다. 불완전판매 피해 사례 발표에 나선 가입자 A씨는 “누가 정기예금 들때 100만원, 200만원 넣나. 당연히 큰 금액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며 “횟수 또한 정기에금이 나올 때마다 은행에서 ELS 가입을 유도하기에 애초부터 횟수가 많아질 수밖에 없는 상품”이라고 말했다.

70대 노모가 노후자금을 ELS에 넣어 손실을 입었다는 가입자 B씨는 이번 사태 가장 큰 원인으로 은행에 고위험상품을 팔도록 허가하고,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금융당국을 꼽았다. 피해자에게 시중은행과 일대일로 합의하라는 건 무책임한 태도라고도 비판했다.

B씨는 이 원장을 향해 “금융소비자보호법은 왜 이름이 금융소비자보호법인가. 금융기관보호법이라고 해야 하지 않나”라며 “높은 금융지식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독식하고 있는 은행은 대형 로펌과 손잡고 협상을 대비하고 있다. 가입자에게 은행과 일대일 협상을 하라는 것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조장하고, 금감원은 한 걸음 물러서 관망하겠다는 것”이라고 규탄했다.

지난 11일 배상기준안을 발표한 금감원은 내달 중 대표사례 몇 건을 선정한 뒤,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를 연다는 계획이다. 분조위는 금감원이 사실조사 및 검토를 한 뒤, 당사자들에게 합의 ‘권고’를 하는 순서로 통상 2~3개월 소요된다. 당사자 모두 수락하면 조정이 성립하고 그렇지 않으면 소송으로 가게 된다. 지난 2019년 DLF 사태 때는 대표사례가 6건이었다. 이외의 분쟁민원 건은 자율조정 등의 방식으로 처리하면 된다는 게 금감원 설명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1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금감원에서 열린 홍콩 H지수 연계 ELS 대규모 손실 관련 분쟁조정기준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정진용 기자

“은행에 알아서 하라고 떠넘기는 꼴…가입자 상당히 불리” 비판

금감원 출신의 한 변호사는 “지금 금감원은 다음달에 분조위 몇 개 열어서 진행하고, 나머지는 은행에 알아서 하라고는 식”이라며 “가입자가 시중 은행을 상대로 불완전판매를 입증해야 한다. 가입자가 상당히 불리한 구조”라고 봤다.

금감원은 이론적으로라면 모든 민원에 대한 사실조사 의무가 있는데, 인력 부족 등 이유로 6~7개 대표사례만 선정해 분조위를 열면 나머지 민원인은 금감원 제도를 이용하지 못해 형평성 문제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몇년이 걸리던 은행보다는 중립적인 금감원에서 모든 사례들에 대해 판단을 내려주는 게 책임감 있는 태도”라고 강조했다. 다만 가입자들이 원하는 배상기준안 수정은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시민단체도 금감원에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하고 있다. 금융정의연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14일 논평을 내 “금감원 배상기준안은 금융기관의 탐욕과 감독 당국의 방치에서 비롯된 홍콩 ELS 사태의 본질을 호도한 채 판매사의 위법한 판매, 내부통제의 부실을 금융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격”이라며 “사태 본질에 맞는 합당한 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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