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기사에게 "뭐하시는 분이세요?" 묻는 사람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정주 기자]
대리운전을 하는 차 안의 공기는 대부분 고요하다. 손님과 정다운 대화 같은 것을 주고 받는 일은 거의 '사건'이라고 부를만치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서로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목적지까지 가는 것이 일상이다.
대리기사가 손님에게 먼저 말을 건다?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다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우선 개인의 성향이 감히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손님 오늘 아주 기분 좋게 드셨나봐요?'라는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로 대화를 시도한다? 시공간이 일그러지는 느낌이다.
또 다른 이유는 어쩌면 이것이 개인의 성향보다 더 큰 중력일지도 모르겠는데, 주체성이 상실 되기 때문이다. 택시기사는 손님을 태운다고 해서 본인의 주체성이 상실되지 않는다. 택시는 손님이 주체가 되어서 이용하는 교통수단이긴 하지만, 택시라는 차 자체는 택시기사의 소유(회사 포함)이니, 타인의 공간으로 손님이 들어가는 셈이니 말이다. 얼마든지 손님에게 대화를 시도할 수 있다.
▲ 운전하는 풍경 |
ⓒ pexels |
"실례지만 혹시 뭐하시는 분이세요?"
대리기사를 하면서 받았던 가장 이상한(?) 질문이다. 나는 지금 뻔히 당신의 차를 '대리운전'을 하고 있는데 뭐하시는 분이냐니. 어쩌면 이것은 단순한 현상이 아닌 본질을 묻는 질문인걸까?
예상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함의다. 첫째, 대리기사라는 일은 '주업'이라기 보다는 '부업'이지 않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 짧은 문장을 만들어 본다면, '낮에는 주업으로 어떤 일을 하시나요?'라고 할 수 있겠다.
둘째, 내가 동안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내가 나이보다 5살 정도는 어려보이는 동안이어서, 그리고 운전을 할 때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보니 거기서 더 어려보이는 보정 효과가 일어났기 때문에 호기심이 발동되는 것 같다. 즉, 해석해 보면 '이 일을 하시는 분들보다 확실히 어려보이는데 혹시 어떤 사연이 있나요?' 정도가 되겠다.
'주업'이라는 범주에 들어가는 나는 누구일까. 목사일 수도 있고, 글쓰기를 가르치는 선생일 수도 있고, 인생을 배워가는 학생, 글을 쓰는 작가일 수도 있겠다. 이런 사건이 일어날 때 주로 애용하는 '나'는 작가다(목사인 나는 지금은 딱히 교회나 기독교 문화권에서 적극일을 하고 있지 않으니 좀 희미한 편이고, 목사라는 직업이 워낙 종교적 프레임이 강한 직업이다 보니 말하기가 꺼려지기 때문이다).
▲ 작가 |
ⓒ pexels |
어떤 손님은 자신도 글을 쓰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고 하면서, 지금은 노년을 맞이해서 한국에 있는 모든 산들을 다 등반하는 것을 목표로 돌아다니는데 그 여정들을 글로 기록하고 있다고 했다. 글을 읽어주시기까지 했는데 나는 무척 좋은 글이라고 꼭 계속 쓰시라고 했다. 내릴 때는 '오늘 작가님을 만나뵈어서 영광이었습니다'라고 하시며 명함과 팁까지 주셨다.
어떤 손님은 자신은 어렸을 때부터 무협지를 읽으며 자라왔고, 지금은 웹소설 마니아라고 하면서 나에게 그런 이야기들을 써보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안 그래도 그런 영역도 열어놓고 준비하고 있다고 하면서 몇 개의 스토리들을 들려드렸는데, 너무나 좋다고 하시면서 이런 부분이 보완되면 더 좋을 것 같다는 피드백도 주셨다. 이 손님은 집이 무려 양평의 어느 깊은 곳에 있었는데, 나갈 때 꼭 택시를 타고 가라며 택시비와 팁까지 챙겨주셨다.
자주 찾아올 리 없는 행운 같은 일이다. 대리운전을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은 주체성 상실의 연속인데, 이런 경험은 주체성을 더 진하게 만들어준 것 같은 기분이다. 문득 '뭐하시는 분이세요?'라는 질문에 꼬리를 물 듯 '그래서 나는 도대체 뭐가 되고 싶었나?'가 따라온다.
수많은 꿈들이 있었다. 변호사, 축구선수, 호텔리어, 관광가이드, 등등. 꿈은 돈이라는 현실에 거세게 부딪히며 낭만을 잃어버린, 그러나 먹고 살 수 있게 해주는 업을 가지는 것을 목표로 바뀌었다. 다만, 그 속에서도 여전히 빼앗기고 싶지 않았던 진짜 나의 꿈은 '쓰는 사람'으로 남는 것이었다.
"Who Am I and So How Many? _ 나는 누구이며, 또 몇 명인가?"라는 독일의 속담이다. 소설가 김중혁은 이 속담을 말하며, 자신은 작가, 기자, 방송인 등 여러 분야의 일을 하고 있지만, 제일 사랑하는 김중혁은 '소설가 김중혁'이라고 했다.
여러 명의 김중혁 중에서 소설가 김중혁을 가장 좋아하기에 제일 아껴주고 싶고 밀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 김중혁을 먹여 살리기 위해 좋아하지 않더라도 지금 해야 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평생 돈 걱정 없이 글만 쓰도록 '지켜주고 싶다'라고 했던 말이 무척 감동적이던 기억이 있다.
▲ 쓰는나 |
ⓒ 김정주(본인) |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종섭 출금 보고 없었다? "정보보고 미생성" 미스터리
- '임태훈 컷오프'의 본질... 충격적인 민주당의 자기 부정
- 광복회 분노케 한 '일제 옹호' 후보... 국힘은 왜 이리 당당한가
- [단독] '수수료 2배' 계약 후 금품수수 의혹 조합장... 경찰, 수사 착수
- [사진으로 보는 일주일] 사과값이 선거판을 흔든다
- "화이팅", "탄핵"... 광주 찾은 한동훈 앞 엇갈린 피켓
- "난교" 망언 장예찬 "대한민국=좁고 무식한 바닥" 폄훼
- '회칼 테러 언급' 황상무 "심려 끼쳐 사과"
- '건폭' 지목 건설노동자 9명 모두 무죄 선고한 판결 이유는?
- 전국 20개 의대교수 비대위 "25일부터 대학별 사직서 제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