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의사 잃은 저를 위로한 건 환자들이었습니다"

최정미 2024. 3. 16.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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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신간 <처음 만나는 정신과 의사>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백종우 교수

[최정미 기자]

"갑작스러운 사고로 동료를 떠나보내고 출근한 첫날 환자 진료가 두려웠어요. 그런 저를 위로한 것은 다름 아닌 조현병 환자들이었어요. 언론보도로 소식을 접한 환자들이 제 손을 잡고 진심으로 가슴 아파했죠. 이후 고 임세원 교수가 보던 환자들까지 찾아와 자신이 치유됐던 순간을 말씀하시면서 저를 위로해주셨어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지요."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백종우 교수는 '환자가 가장 좋은 스승'이라고 말한다. 25년 이상 환자들과 소통해온 백종우 교수는 사회정신의학자로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쉽게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꿈꾸며, 동료 의사였던 고 임세원 교수의 유지를 이어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 일이 없었다면 훨씬 좋았겠지요. 하지만 이후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제 삶의 목표도 변화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우울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비정상일 것이다. 감정은 전염성이 있으며 정신과 의사 역시 우울감을 겪는다. 하지만 우울감이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건 아니다.

백종우 교수는 우울감을 이해하고 잘 다룬다면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우울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을 극복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나를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어야 한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단 한 사람,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딱 한 사람만 곁에 있어도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고.

"현실이 아무리 잔인하고 지옥 같아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를 지지해주는 한 사람만 있으면 우리는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어요. 그 한 사람이 온라인에서 만나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건, 진료실의 정신과 의사이건 말이죠."

과 선택을 고민하다가 "정신과는 고민하는 과니까 너한테 딱"이라는 선배 말에 정신과 의사가 되었다는 백종우 교수. 한국의 자살률을 줄이기 위해 대내외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온 그가 이번에 우울증으로 상처받은 마음을 회복하고 싶지만, 사람들의 편견이 두려워 정신과에 선뜻 문을 두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 <처음 만나는 정신과 의사>를 출간했다.
▲ 경희대 백종우 교수 신간 '처음 만나는 정신과 의사' 경희대 백종우 교수 신간 '처음 만나는 정신과 의사'
ⓒ 경희대 출판문화원
 
진료와 대외 활동으로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시간을 쪼개, 오랜 임상 경험을 통해 얻은 노하우와 개인적 체험을 녹여낸 백종우 교수의 첫 단독 저서다. 첫 책이라 감회가 더 새로울 백종우 교수를 만나 책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정신과를 방문하고 싶어도 정신질환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 때문에 치료받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이 책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정신과를 방문한 국민의 숫자가 400만 명인 시대가 됐습니다. 특히 20대는 10년 전에 한 5만 7천 명 정도였는데 재작년에 17만 명을 훌쩍 넘었거든요. 그만큼 문턱이 낮아진 것은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우리 사회가 고도 산업사회, 핵가족사회가 되면서 혈연, 지연, 학연이라는 네트워크는 약화되었고 그만큼 정신건강의 문제를 개인과 가족의 힘으로만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게 요즘의 현실인 것 같습니다.

정신과를 처음 방문하려고 할 때 '몰라서' 또는 '알고도'라는 장벽이 있습니다. '몰라서'는 때로는 정신건강 문제가 '머리가 아파요, 배가 아파요' 이런 통증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불면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또는 직장에서 집중이 안 된다든가 일을 제대로 못 하겠다든가 하는 행동 문제로 나타날 때입니다.

이 책에서는 이럴 때 어떤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조언을 드리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내가 아프다는 걸 아는데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편견과 차별이 주된 원인인데요. 정책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편견과 차별을 없애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이 책에서 여러 사례를 통해서 담았습니다."
 
▲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백종우 교수 <처음 만나는 정신과 의사>를 출간한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백종우 교수
ⓒ 백종우
 
- 주변에 우울증이 있는 친구나 지인이 보이는 행동이나 증상이 있을까요?

"우울증에 걸린 친구가 곁에 있다면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 있고 도와줄 수 있는 게 있습니다. 우울증의 증상이 겉으로 드러나면 의욕이 없어서 뭔가 잘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런 태도가 다른 사람이 보기에 게으른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또한 의욕이 없고 집중력이 떨어져서 자꾸 실수하면 의지가 박약해 보이고 동료 입장에서 화가 날 수도 있습니다.

안 그래도 우울한 사람 입장에서 비난받으면 더 위축되어 필요한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다가 나중에 더 큰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학교나 직장, 가정에서도 흔히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 그에게 다가가서 괜찮은지, 잠은 잘 자는지, 밥맛은 있는지, 지금 혹시 비관적인 생각이 들지는 않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마음이 아파서 그런 거라면 도와줘야 하잖아요."

- 연예인을 따라 자살하는 '베르테르 효과'가 한때 문제가 되었는데요. 여과 없이 내보내는 방송이 환자들에게 어떤 파급력을 미칠까요?

"사실 어떤 유명인이 자살로 사망하면 뉴스를 보지 않아도 환자분들이 실시간으로 알려줍니다. '그런 사람도 자살하는데 저 같은 건 살아서 뭐 할까요?' 이런 얘기를 실제로 듣게 됩니다. 책에도 있지만 2008년 고 최진실 배우가 자살로 사망했는데, 그 한 달 동안 자살로 사망한 사람이 전해 대비 1000명이 넘었거든요.

그때 제가 진료하던 외래 환자 중에도 처음으로 사망한 분이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자살 보도에 대한 언론의 인식이 너무나 부족해서 심지어 그림까지 그려서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사망했다고 친절히 안내해준 거죠. 제 환자분도 똑같은 방식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진료실에 오는 사람들만 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겠구나' 하고 깨닫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후 언론의 자살 보도가 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노력이 많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국민 대부분은 사실 그러한 보도에 큰 영향을 받지 않지만, 오늘 하루에도 국민 중 6~7% 정도가 자살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위기 상태거든요. 이분들한테는 그 보도에 한 줄 쓰여 있는 자살 방법 하나가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지키려는 언론인들과 함께해야 합니다."

-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보면 환자들에게 영향받는 간호사들이 나오는데요. 온종일 환자들을 만나면서 감정적인 동요가 없을지 궁금합니다.

"우울한 사람, 트라우마 겪은 사람을 만나면 저희 마음 안에도 비슷한 반응이 일어나는 건 사실입니다. 정신과 진료의 특성상 아무리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선에서 바라보려고 해도 자신이 개입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신과에서 근무하는 의사나 간호사, 심리학자, 사회복지사 선생님들 다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시점에서는 자기 문제가 건드려질 수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도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걸 동료 상담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좀 더 경력 있는 분한테 받는 경우는 수퍼비전을 받는다고 합니다. 누구나 이러한 트레이닝 시스템을 통해서 자기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도움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저도 친구를 잃고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동료상담으로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 정신질환자들이 편견에 시달리지 않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려면 사회와 정부, 그리고 개인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사실 조현병은 세계 어느 나라나 0.5~1%의 국민이 겪는 질환인데 조현병 환자의 삶은 어느 나라에 살고 있느냐에 따라 매우 달라집니다. 조현병이나 중증 정신질환자 대부분은 선량한 분들이고 특정 시기에 망상이나 환청에 의해서 증상이 악화될 때는 치료를 통해서 극복할 수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발생했던 조현병이나 중증 정신질환 관련 사고는 방치되어 혼자 살거나 아니면 부모 중 한 분만 모시고 있는 집에서 대부분 발생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 자체는 조현병 자체가 아니라 이걸 둘러싼 시스템입니다. 이들은 아픈 사람이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열악한 시스템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중증 정신질환자의 입원을 결정하거나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뿐 아니라 나머지 경제적 부담을 전부 가족이 져 왔습니다. 해외에서 정부, 지자체를 중심으로 찾아가는 서비스를 만들어간 것처럼 우리나라 역시 시스템을 개선하려는 노력과 변화가 앞당겨질수록 조현병이나 중증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도 변할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는 이 책의 편집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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