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집 '박꽃' 출간

김삼웅 2024. 3. 16.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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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승의 세대는 참으로 불운한 연대였다.

한말 혼란기에 태어나 국치를 당하고 세계 식민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악독한 일제 식민지배에서 살다가 해방을 맞고, 3년 후 6.25한국전쟁을 겪어야 했다.

 1947년 12월에는 첫 시집 <박꽃> 을 백양당에서 출간했다.

주석1> 이희승, <박꽃> , 일조각, 1961.2> 이희승, <나의 시작> , <한 개의 돌이로다> , 1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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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 딸깍발이 선비 이희승 평전 17] 그는 혼란한 해방공간에서도 촌음을 아껴가며 학문을 하였다

[김삼웅 기자]

 조선어학회 회관(화동 129-1)의 현재 모습
ⓒ 박용규
 
이희승의 세대는 참으로 불운한 연대였다.

한말 혼란기에 태어나 국치를 당하고 세계 식민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악독한 일제 식민지배에서 살다가 해방을 맞고, 3년 후 6.25한국전쟁을 겪어야 했다. 같은 시기의 지식인 중에는 잘 먹고 잘 사는 부류도 적지 않았지만, 적어도 역사의식이 잠재된 이들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질곡의 연대였다. 

3년간의 옥살이로 빼앗긴 시간을 벌충이라도 하려는 듯이 그는 혼란한 해방공간에서도 촌음을 아껴가며 학문을 하였다. 1946년 9월, <조선문학연구초(鈔)>를 을유문화사에서 출간했다. 이어 11월에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의 강의>(동성사), 1947년 11월 <조선어학논고>(을유문화사)를 펴냈다. 오랫동안 연구해온 우리문학사와 한글 관련 저술이다. 
 
▲ 조선어학회에서 펴낸 책들 조선어학회에서 발간한 한글 교재
ⓒ 독립기념관
 
1947년 12월에는 첫 시집 <박꽃>을 백양당에서 출간했다. 4부로 나누어 1부는 <조춘부> 등 12편, 2부는 <우물길> 등 6편, 3부는 <박꽃> 등 11편, 4부는 <폭풍> 등 5편과 시조 <낙화> 등 21편, 모두 55편의 시와 시조가 실렸다. 해방 후(1961년) 일조각에서 재간된 시집의 자서(自序)에서 "시인이 되기를 바라지도 않았고 시인으로 자처하고 싶지도 않지만, 본능적인 표현욕의 충동 때문에 틈틈이 써 모은 작품을 묶어냈다"고 하였다. 

<박꽃>에 실린 <해당(海棠)>이다.

      해     당

 대지 잘린 곳에
 바다 펴는 곳에
 내 홀로 모래밭에 섯노라

 붉은 넋으로 이 몸 태워
 계절 속에 그 연기 풍기어

 해저 깊이 피어 오르는 
 산호에 혼란한 전설을 캐며

 어죽 품고 숙설거리는
 유구한 자장자 건져 보려노니

 저 창공의 피부 찔러 보려
 이 몸에 가시도 기르노니

 무수한 모래알의
 한없는 얘기로
 태고의 정일에 귀가 젖노라
 기름진 땅 다른 꽃 맡기고
 내 홀로 모래밭에 웃노라. (주석 1)

이희승은 한글학자로 많이 알려지지만 시와 수필에도 일가를 이루었다. 시집 <박꽃>에 이어 1961년 4월에는 <심장의 파편>을 간행하였다. 그의 시작(詩作)에 대한 인식이다. 시론(時論)이라 하겠다.

필자가 시를 지을 때에 실지로 체험한 이야기를 몇 마디 하겠다. 

첫째, 포에지를 포착하기가 지극히 어렵다. 이것은 항상 머리를 그 방면에 쓰지 않으면 안 되지마는 우리와 같이 시작을 본업으로 하지 못하는 사람은 언제나 시만을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학교에 왕환(往還)하는 노상에서나 석반(夕飯) 후 삼보할 때에 시를 배려고 노력하는 가장 효과적인 것이었다. 

그리하여 어떤 시상이 머릿속에 번개치듯 떠오른다. 그러면 시각을 멈추지 말고 그 즉각에 종이 위에 몇 줄 적어둔다. 이것이 이른바 아라게쓰리라는 것이다. 만일 머리에 번쩍 부딪힐 적에 적어 두지 않으면 놓쳐버리는 것이 열이면 열 번이었다. 어떤 때에는 영영 다시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 아리게쓰리를 읽어 보고 또 읽어보고 하여, 몇 십번 몇 백번 거듭하면서, 조금씩 탁마 (琢磨)하여 간다. 그리하여, 이것을 저녁에 자리에서 잠들기 전이나, 잠을 깬 즉시로 이불 속에서 읊어본다. 이러하기를 몇 번이든지 거듭하여 그 이상 손 댈 때가 없다고 자신이 선 다음에 발표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대개는 버리는 시간을 이용하여 시작을 실천하였다. 이러한 나의 산 체험으로서 학생들에게도 권장하였다. 

시작의 체험은 이와 같이 한결같지 않을 것이요, 사람에 따라 형형색색이겠지만 이것은  필자 개인의 조그마한 체험이요 또는 계속 실행하는 시작의 방법이다. 

이것이 타산의 돌이 될는지 안 될는지, 나 자 신 알지 못하면서 몇 줄 적어보는 것이다. (주석 2)

주석
1> 이희승, <박꽃>, 일조각, 1961.
2> 이희승, <나의 시작>, <한 개의 돌이로다>, 119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딸깍발이 선비 이희승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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