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대선 첫날 투표함에 녹색 액체 붓고 화염병 투척도…10명 이상 체포
러시아 대통령 선거 첫날인 15일(현지시간) 투표소 곳곳에서 액체 테러와 방화, 화염병 투척 등 각종 방해 행위가 벌어져 10명 이상이 체포됐다.
이날 인테르팍스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모스크바, 보로네시, 로스토프, 카라차이-체르케시야, 볼고그라드, 크림반도 등에서 투표함에 녹색 액체를 쏟아부은 혐의로 7명이 구금됐다.
SNS에 공개된 모스크바의 한 투표소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면 한 젊은 여성이 투명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은 뒤 병에 담아온 녹색 액체를 쏟아부어 그 안에 쌓인 투표용지가 훼손됐다.
이 여성을 비롯해 이날 투표함에 성분이 밝혀지지 않은 액체를 부은 사람들은 러시아 형법 141조 선거 업무 방해 혐의로 러시아연방수사위원회의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엘라 팜필로바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투표함에 액체를 부은 사람은 최고 5년의 징역형에 처할 것”이라며 “해외에서 온 쓰레기들이 돈을 받고 이러한 행위를 했다”고 비판했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동일한 수법의 사건이 발생해 의도적이고 조직적인 도발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들이 녹색 액체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지난달 옥중 사망한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가 당한 테러를 기억하는 퍼포먼스가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나발니는 2017년 녹색 살균소독액 젤룐카를 얼굴에 뿌린 괴한 때문에 실명 위기를 겪었다.
모스크바에서는 한 여성이 투표 부스에 불을 질렀다.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시베리아에서는 투표소에 화염병을 던진 여성들이 붙잡혔다. 첼랴빈스크에서는 투표 중 폭죽을 터트린 혐의로 한 남성이 체포됐다.
러시아가 통제하는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에서는 투표소 앞 휴지통에서 사제 폭탄이 폭발했지만 인명 피해는 없었다.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니콜라이 불라예프 부위원장은 투표함을 훼손해도 선거 결과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당국은 ‘투표소 시위’에 대한 경계도 강화하고 있다. 나발니 지지자들은 선거 마지막 날인 17일 정오에 투표소로 일제히 나와 푸틴 대통령에 대한 반대 표현을 하자고 촉구하고 있다.
모스크바 검찰청은 ‘조율되지 않은 대규모 행사’를 조직하거나 이러한 불법 행사에 참여하면 현행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러시아 독립선거단체 골로스(목소리)는 경찰들이 17일 투표소에 모인 사람 중 시위 참가자를 식별하는 방법을 교육받고 있으며, 투표 참관인은 투표소 앞과 내부에 모인 사람을 최대한 영상으로 촬영하라는 지침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독립매체 ‘시레나’는 일부 투표소에서는 열을 가하면 글씨가 사라지는 특수 펜을 사용하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며 조작 가능성을 우려했다.
푸틴 대통령의 5선이 확실시되는 러시아 대선은 이날부터 사흘간 치러진다. 각종 사건·사고에도 이날 러시아 유권자의 약 3분의 1이 투표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스크바 시각 오후 8시 30분 기준 전국 투표율은 33.45%로 집계됐다.
이지영 기자 lee.jiyo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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