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비싼 땅”… 경리단길 회복이 요원한 이유 [핫플의 추락②]

성윤수 2024. 3. 16.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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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단길’의 원조 경리단길의 현실
많은 공실에도 여전히 비싼 임대료
개발 호재 이어지는 ‘황금 땅’ 인식
“경리단길 만의 문화적 특색 갖춰야”
경리단길에 위치한 2층짜리 건물에 매매·임대를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해당 건물은 2층 전체가 공실로 비워져 있다.
[대표 상권의 추락, 넘쳐나는 공실]
저마다의 개성과 독창성으로 트렌드를 선도했던 서울의 대표 상권들이 추락하고 있다. 아기자기한 소품숍과 의류매장, 맛집들이 어우러져 핫플로 떠올랐던 일부 지역은 자영업자들이 치솟는 임대료 부담을 이기지 못해 주변으로 서서히 밀려난 것을 시작으로 상권 자체가 매력을 잃어버린 지 오래됐다.

사람들로 넘쳐났던 거리는 공실로 가득하며, 상권의 노후화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국민일보는 3회 기획보도를 통해 서울의 대표 상권으로 주목받았지만 지금은 과거의 활력을 잃어버린 곳들을 찾아 소개한다

“우리끼리 하는 말로 그때 당시 멋진 언니 오빠들은 다 여기로 모인다고 할 정도였어.”

지난 11일 오후 찾아간 서울 용산구 이태원2동은 2010년대 중반 트렌드를 이끌며 상권 호황을 누렸던 그 경리단길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한때 경리단길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중심 도로는 장바구니를 끌며 동네 슈퍼마켓으로 바삐 걸음을 옮기는 동네 주민들과 자재를 실어 나르는 오토바이로 가득했다. 골목마다 형형색색의 특색있는 카페가 있던 자리는 이제 무채색의 오피스 사무실과 부동산 등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리단길’ 열풍의 시초였던 경리단길의 전성기는 짧았다. 이국적인 분위기의 식당과 카페를 운영하던 자영업자들이 높아지는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씩 경리단길을 떠나면서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대표적인 ‘젠트리피케이션’ 피해 상권이 된 것이다. 그때를 기억하는 상인들은 당시 10평짜리 상가 월세가 700만원까지 치솟았다고 떠올렸다. 결국 2019년 경리단길은 26.5%의 공실률로 서울 지역 1위의 불명예를 기록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현재, 경리단길은 젠트리피케이션 바람이 불어닥쳤던 그때에 머물러 있었다. 공실도 여전했다. 직접 찾아간 경리단길은 입구 격인 국군재정관리단을 얼마 지나지 않아 빈 상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건물주들이 월세를 낮췄다는 얘기도 들렸지만 여전히 대로변 1층 상가들도 군데군데 채워지지 않은 상태였다.

세입자와 건물주의 ‘동상이몽’
경리단길 초입에 위치한 1층 상가가 비어있는 모습.

문제는 세입자와 건물주가 바라보는 경리단길의 상황이 간극이 크다는 점이었다. 세입자들에게 경리단길은 코로나19와 ‘이태원 참사’에 잇달아 직격탄을 맞고 시름하는 동네였지만, 건물주들에게는 끊임없이 개발 호재가 이어지는 ‘황금의 땅’이었다.

경리단길 초입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50대 박모씨는 “이태원 참사가 터진 이후 매출 85%가 날아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기자와 대화하는 중에도 혹여나 손님이 들어올까, 거리를 향해 난 창으로 계속 눈길을 보냈다.

이태원 일대에서 10여년간 노점 장사를 했다는 박씨는 2022년 6월 거리를 벗어나 건물로 들어왔다. 그러나 번듯한 건물에서 안정적으로 장사할 수 있겠다는 기대는 얼마 가지 못했다. 그는 입점해 장사를 시작한 이래로 적자를 벗어난 적이 없다고 했다. 박씨는 “노점상 하며 번 돈을 계속 까먹기만 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인수할 사람 나오면 넘겨주고 다른 일 할 것”이라고 털어놨다.

인근 공인중개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예전부터 경리단길 인근에는 주한 대사관들과 고급 주택단지가 있어 땅값이 저렴한 편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런데다 용산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개발 호재를 기대하는 심리가 높은 임대료를 붙들고 있다. 땅값이 오르자, 건물주 역시 임대료를 쉽게 낮추지 않는다는 얘기다.

경리단길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김모씨는 “건물주들이 용산공원 개발 호재를 거론하면서 ‘여기는 비싼 땅’이라는 식으로 말한다”며 “그런데 지금 개방된 용산공원은 경리단길과 거리가 멀어 낙수효과도 체감이 안 된다”고 했다.

서울시 상권분석서비스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기준 경리단길이 위치한 이태원2동의 임대료는 1층 상가 기준 평당 월 18만원 수준을 보이고 있다. 임대료가 정점을 찍었던 2018년 2분기의 23만5000원과 비교하면 내려오긴 했지만, 여전히 일부 건물주들은 높은 임대료를 고수하고 있다.

프랜차이즈도, 밥집도 떠난 경리단길
경리단길 삼거리에 위치한 이 상가는 높은 임대료에 약 2년째 아무도 들어오지 않고 있다.

이런 영향으로 장기간 공실 상태인 상가도 있었다. 경리단길 삼거리에 있는 10평 남짓한 상가는 월세로 약 250만원을 부르고 있다. 기존에 있던 프랜차이즈 빵집마저 혀를 내두르고 가게를 뺀 이후 2년 가까이 지나도록 해당 상가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고 있다.

15년째 경리단길에서 영업 중인 한 공인중개사는 “상가 두 칸을 합쳐서 쓰던 곳이라 건물주에게 각각 임대료를 냈는데, 한 달에 총 540만원 정도였던 것으로 안다”며 “감당이 쉽지 않다보니 결국 빠졌다. 웬만한 업종이 들어와서는 수지 맞추기가 쉽지 않으니까 계속 못 들어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공인중개사는 “오죽하면 법인이 못 버티고 나갔겠냐”며 “법인 입장에서는 다른 가게로 적자를 메우면서라도 경리단길에 우리 가게가 있다는 식으로 홍보하는 게 이득이 될 수 있는데 그걸 포기하고 떠난거다”고 말했다.

경리단길 상권 회복이 요원한 또다른 이유로 상인들은 입을 모아 ‘밥집의 부재’를 꼽았다. 밥-술-카페 동선이 한 상권 안에서 이어져 방문객들이 순환할 수 있는 구조여야 하는데, 마땅한 식당이 없다 보니 손님들을 유인해 경리단길 내에서 움직이게 하는 요인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경리단길에서 10여년간 카페를 운영하며 거리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김태원(50)씨도 “젠트리피케이션 이후 이곳이 동네 상권화되면서 다들 ‘저녁에 누가 외식을 하겠나’고 생각하는지 식당이 없다”며 “그래서 막상 외부인들이 오면 마땅히 먹으러 갈 데가 없다고 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지금도 가끔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러 오는 관광객들이 있는데 그들도 먹을 곳이 없다면서 나한테 물어본다”고 덧붙였다. 그 역시 걱정 어린 눈빛으로 카페 창문 너머 한산한 거리를 거듭 바라봤다.

“임대료 만의 문제 아냐, 거리 특색 갖춰야”

전문가는 상권 회복을 위해서는 단순히 임대료를 낮추는 방식 대신 경리단길만의 특색을 갖춰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경리단길이 초기엔 상당히 좋았다”며 “그걸 관리하고 문화를 만들어 갔어야 하는데 장사가 잘되다 보니까 ‘하나님 위에 건물주 있다’며 임대료를 왕창 올려버렸다. 이제 와서 그걸 임대료만 낮춘다고 해서 다시 살리는 건 힘들다”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문화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며 “경리단길 축제 개최나 임대료 낮추기 운동 등의 테마를 주지 않으면 살아나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는 “냉면 거리, 떡볶이 거리 등이 자리를 잡는 데도 5년, 1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역마다 특성이 있어야 하는데 경리단길은 이런 특성이 없다. 해당 지역을 특성화 거리로 만들어 테마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리단길을 지켜온 자영업자들은 ‘~리단길’의 원조격인 경리단길이 당장 전성기 때와 같은 명성을 회복하긴 어렵더라도, 보통 수준만큼이라도 장사가 됐으면 좋겠다며 바람을 전했다. 경리단길에도 새바람이 불고 있다며 회복에 대한 기대도 놓지 않았다.

카페 사장 김씨는 “최근 거리 끝자락에 젊은 이들 사이에서 유명한 서점이 들어왔는데 그 이후로 여길 오가는 사람들이 좀 늘어난 것 같다”며 “아무것도 없는데 사람들이 올 수는 없지 않나.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책도 보면서 구경할 만한 가게가 생기는 게 도움이 된다.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글·사진=성윤수 기자 tigri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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