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아이들 ‘아딱질’ 역주행, ‘밤양갱’ 열풍 [하재근의 이슈분석]

데스크 2024. 3. 16.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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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여자)아이들'이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수록곡 '나는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Fate) 라이브 클립을 공개했다.ⓒ 큐브엔터테인먼트 제공

매우 보기 드문 일이 벌어졌다. (여자)아이들의 새 앨범 수록곡인 ‘나는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줄임말 ‘아딱질’)이 15일 0시 기준으로 멜론 HOT100 차트, 지니뮤직, 벅스에서 모두 1위에 올랐다.

이게 보기 드문 사건인 이유는 이 곡이 앨범의 일반 수록곡이기 때문이다. 화제를 모으는 선공개곡이나 타이틀곡이 아니다. 보통 타이틀곡에 홍보가 집중되고, 팬들의 화력도 집중되기 때문에 일반 수록곡은 큰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

(여자)아이들의 새 앨범 선공개곡은 ‘와이프’였는데 곡과 뮤직비디오가 모두 매우 뛰어난 걸작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성인 느낌의 표현 때문에 저평가되고 말았다. 타이틀곡인 ‘슈퍼 레이디’도 놀라운 걸작이고 뮤직비디오는 희대의 명작 수준인데 역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보통 이렇게 선공개곡과 타이틀곡이 연이어 큰 주목을 받지 못하면 그 앨범은 묻히게 마련이다.

그런데 멤버들이 TV프로그램과 유튜브 영상에서 각각 한 번씩 총 2번 노래한 것 외엔 아무런 홍보가 없었던 ‘나는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가 서서히 역주행을 시작했다. 순전히 입소문에 의해 음원차트를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간 것이다. 공식 영상이 아예 없어 누리꾼들이 직접 나서서 이 곡의 뮤직 비디오 영상을 만들어 공유하기까지 했다.

앨범은 1월 29일에 나왔는데 3월 13일에야 뮤직비디오도 아닌 공식 라이브 클립만 공개됐다. 멤버들이 어느 학교 옥상에서 교복을 입고 노래하는 영상이다. 그리고 순위 상승이 계속 이어지더니 결국 15일 0시에 음원차트 1위에까지 오른 것이다. 거의 무홍보 상태에서 대중이 만든 성과다. 이 곡이 얼마나 큰 열풍을 일으켰는지를 알 수 있다.

그동안 케이팝 곡은 전반적으로 센 느낌이 많았다. 남자 아이돌 노래들은 원래 그랬고, 걸그룹은 최근 들어 걸크러시 열풍이 불며 센 노래가 많아졌다. 또 한류 시대가 되면서 가사에 영어가 많아져 팝송을 듣는 듯한 느낌도 강해졌다. 이런 흐름이 계속 되자 대중은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노래를 기다렸던 것 같다.

(여자)아이들은 ‘톰보이’로 걸크러시 시대를 선도했던 팀 중의 하나다. 이번 앨범 타이틀곡 ‘슈퍼 레이디’로 걸크러시의 정점을 찍었다. 그런데 한편으론 수록곡으로 전혀 다른 느낌의 ‘나는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를 실어 대중의 새로운 요구와도 접점을 맞춘 것이다. 주요 곡 작업을 주도하는 소연의 천재성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 곡은 시간회귀물 만화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가사로 곡 전체가 우리말로 전개된다. 그런 만화영화가 주는 애틋한 느낌이 노래로도 그대로 전해진다. 전자음 위주가 아닌 전통적인 반주와 멜로디로 누구나 쉽게 듣고 따라 부를 수 있는 편안한 노래다. 가사까지 우리말이어서 더욱 편안하다. 이런 곡이 디지털 소음에 지친 사람들에게 청량함을 선사하고 있다. 뭔가 학창시절의 추억도 떠올리게 하는 청정 케이팝이어서 많은 이들이 힐링의 느낌도 받는다.

‘여자’아이들은 천의 얼굴을 가진 팀이다. 소연, 민니, 우기가 만들어내는 음악의 폭이 대단히 넓다. 음악을 스스로 만드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데 그 수준과 넓은 스펙트럼이 더욱 듣는 이를 놀라게 한다. 이번에 다시 한번 ‘아딱질’이라는 걸작이자 히트작을 탄생시켜 케이팝의 지평을 넓혔다.

이렇게 편안한 노래가 각광받는 흐름은 뉴진스에서부터 나타났다. 최근 들어선 비비의 ‘밤양갱’이 신드롬을 일으켰다. 비비는 ‘어둠의 아이유’라고 할 정도로 자극적이며 서구적인 음악을 해왔었지만 이번 ‘밤양갱’은 순 우리말 가사의 소박한 곡이다. ‘내가 먹고 싶었던 건 달디단 밤양갱 밤양갱이야’라며 밤양갱을 노래한다. 원래부터 할매니얼 트렌드가 있었는데 ‘밤양갱’ 신드롬까지 터지면서 젊은 세대가 조부모의 간식이었던 양갱을 찾는다고 한다.

할매니얼은 젊은 세대가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의 입맛이나 스타일을 찾는다는 뜻이다. 이런 게 유행한다는 것 자체가 요즘 젊은 세대가 위안과 힐링을 원한다는 걸 말해준다. 그럴 때 뉴진스, ‘밤양갱’, ‘아딱질’ 등이 나타난 것이다.

센 느낌 일변도였던 보이그룹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SM 보이그룹은 그동안 난해한 세계관과 음악을 유지했었는데 최근 신인 라이즈는 편안한 멜로디를 선보이고 있다. 투어스도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의 음악과 무대로 사랑받는다.

그동안 너무 센 음악들이 많았기 때문에 다른 걸 찾는 대중의 요구는 계속 이어질 걸로 보인다. 이렇게 새로운 흐름이 가세하면서 케이팝의 폭이 더 넓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글/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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