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볼 세상에 못 나올뻔 했다…도리야마 아키라와 편집자 이야기[일본人사이드]
공모전 낙선 원고 찾아내…닥터슬럼프·드래곤볼 흥행 이끌어
"잘 있어라! 부르마, 트랭크스, 그리고…카카로트."
드래곤볼 명장면으로 불리는 베지터의 희생 장면입니다. 저는 세대로 따지면 드래곤볼보다는 원피스 세대이긴 한데, 그래도 어릴 적 "에네르기파"를 외치며 장풍도 날려봤고, 화나면 초사이언 상태로 씩씩대며 걸어보기도 했는데요. 심지어 학창 시절에는 드래곤볼을 모티브로 한 쎄쎄쎄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얼마 전 드래곤볼, 닥터 슬럼프의 원작자 도리야마 아키라가 별세하면서 전 세계 추모 열기가 이어지고 있는데요. 우리나라도 갑자기 드래곤볼 만화책 매출이 급증하는 등, 어릴 적 추억을 되새기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는 생전 그와 그의 주변인물을 인터뷰한 기사들을 그대로 다시 보도하기도 했는데요. 특히 주목받는 것은 도리야마 아키라를 발굴한 소년 점프의 편집자 토리시마 카즈히코씨입니다. 이 분이 없었으면 닥터 슬럼프의 아리도, 드래곤볼도 없었을 거라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요. 오늘은 도리야마 아키라, 그리고 그의 단짝 편집자 토리시마 카즈히코의 이야기들을 골라 전해드립니다.
도리야마 아키라는 원래 회사원이었습니다. 1974년 아이치현 공업고등학교 디자인과를 졸업하고 광고회사 디자이너로 입사하죠. 만화를 좋아하기는 했는데 업으로 삼지는 않았던 것인데요. 1977년 회사를 그만두고 1978년 주간지 '소년 점프'를 통해 만화가로 데뷔하게 됩니다. 당시 그를 발탁했던 사람은 신입 편집자 토리시마 카즈히코였는데요. 그의 안목 덕분인지 토리시마씨도 '전설의 편집자'로 명성을 알리게 됩니다.
도쿄신문은 예전에 토리시마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도리야마 아키라를 발탁한 계기 등을 보도했는데요. 그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당시는 도리야마가 일하던 회사를 그만두고, 모셔야할 부모님도 있어서 새 취직처를 찾고 있을 때였다고 합니다. 그림을 좋아하고는 있었기 때문에 만화가가 될지, 일러스트레이터가 될지를 고민하던 시기였다고 합니다. 이 때 그가 살던 나고야의 한 카페에서 만화상 응모를 보게 됩니다. 상금을 노리고 이에 맞춰 만화를 그리고 나니 카페에서 본 만화상 응모 기간은 지나 있었고, 매달 만화상을 선정하는 소년 점프에 투고하게 됩니다.
당시 응모했던 작품은 스타워즈를 패러디한 것이었는데, 보통 패러디는 수상 대상에서 제외하기 때문에 낙선이 확실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편집자인 토리시마씨가 낙선한 원고 더미에서 이를 보고 담당을 자원했다고 했는데요. 토리시마와 도리야마의 이름이 헷갈릴 수 있으니, 이 글에서 앞으로 토리시마씨는 편집자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글씨체가 굉장히 예쁘고 센스가 있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원고가 굉장히 깨끗했다고 합니다. 손때부터 시작해 여러번 고치면서 지저분해지기 마련인데, 도리야마씨의 원고는 굉장히 깨끗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지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에, 일처리도 시원시원해서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닥터 슬럼프와 드래곤볼 등의 명작을 탄생시키게 되죠.
두 사람의 재밌는 일화도 있습니다. 원래 도리야마씨는 닥터슬럼프 아리를 1화에서만 등장시킬 예정이었다고 합니다. 이에 편집자는 "아리를 주인공으로 하는게 낫다"고 했고, 도리야마씨는 아리를 만든 슬럼프 박사를 주인공으로 해야 된다고 맞붙었는데요. 편집자는 그럼 독자 설문조사에 붙이고, 아리가 순위권에 들 경우 아리를 주인공으로 삼자고 내기를 제안합니다. 여태 만화는 남자나 아저씨 캐릭터만 등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리같은 귀여운 캐릭터가 굉장한 인기를 끌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죠. 실제로 조사에서도 아리가 높게 나오면서, 1화에서 사라질 뻔한 아리는 주인공으로 올라서게 됩니다. 대신 도리야마씨를 갈군(?) 대가로 편집자는 닥터 슬럼프의 악역 닥터 마시리트의 모델로 쓰입니다.
드래곤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새 연재물에 대한 구상이 막혀 있을 때, 일하는 중에 도리야마씨가 성룡의 무술 영화를 즐겨보고 있는 것을 편집자가 알게됐는데요. 새 연재물로 쿵푸 만화는 어떻냐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도리야마씨는 "격투기는 질색이다. 게다가 나쁜 놈을 어떻게 그리느냐"라고 거절했다는데요. 또 설득을 시킨 끝에 드래곤볼 연재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드래곤볼도 격투기가 싫다는 도리야마씨의 고집으로 처음에는 개그, 판타지 색깔이 짙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초반 인기를 끌었지만 연재가 중단될 위기를 겪을 정도로 관심이 식으면서 다시 편집자가 나서게 되죠. 이 때 편집자는 "손오공은 강해지고 싶은 캐릭터 아니냐. 라이벌과 계속 붙게 만들어야 한다" 등을 주문하면서 강해지고 싶은 심플한 캐릭터 손오공을 만들게 됩니다. 원래 선도 부드럽게 써서 그렸는데, 각지고 기세 있는 것으로 바꿨다고 하네요.
이 때문에 도리야마씨는 닥터슬럼프와 드래곤볼에 대해서 "솔직히 취향이냐고 묻는다면 전혀 내 취향은 아니다"라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전투보다는 시시하고 웃기는 이야기 그리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해왔는데, 오는 20일 우리나라에서도 공개 된다는 '샌드랜드' 시리즈가 바로 도리야마씨가 취미로 그리던 본인의 취향을 담은 만화라고 합니다.
물론 유능한 편집자의 안목도 중요했지만, 도리야마씨의 노력은 업계에서 따라올 사람이 없었는데요. 천재 만화가일 것 같지만 사실은 철저한 원칙주의자로 불렸습니다. 그는 예전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드래곤볼의 장기연재와 관련, "10년동안 그리는 데 있어 정한 규칙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마감은 무조건 지켰다. 광고회사에서 일할 시절 마감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지 실제로 보고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전했습니다.
또 닥터 슬럼프가 한창 인기를 끌고 있을 때는 "주변이 호들갑을 떨어서 제가 황송할 뿐"이라며 "그렇게 대단한 만화가 아니기 때문에 부담은 없다"며 겸손하게 창작에 임하는 자세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특히 그는 만화란 모든 사람에게 즐거움을 줘야 하는 것이라는 철학을 고수했는데요. 도리야마씨는 "내 만화의 역할은 오락으로 일관하는 것"이라며 "내 만화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아도 된다"고도 말한 바 있습니다. 아사히신문은 "프로의식에 철저한 남자가 남긴 것의 크기를 지금 세계가 깨닫기 시작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는데요. 원작자 도리야마씨의 별세에 그의 가장 친한 편집자는 "45년 동안 감사했다. 당신은 최고의 만화가였다"며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즐거움과 더불어 모두에게 많은 추억을 남기고 간 도리야마씨가 하늘에서도 즐겁고 재미있는 작품활동을 이어가기를 바랍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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