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의 발견] 고사리 비 맞으멍 쑥쑥 자란덴 마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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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비가 많은 해다.
고사리 장마가 고사리 장마인 까닭은,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본격 고사리 철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소고기보다 비싼 몸값 덕분에 '선수'들은 고사리밭 정보를 잘 나누지 않는다는 것도.
고사리 줄기는 한 번 꺾인다 해도 계속해서 아홉 번까지 다시 돋아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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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비가 많은 해다. 서귀포는 2월 내내 비가 왔다. 그 와중에도 제주에서 가장 먼저 봄이 온다는 산방산 아래 사계리 유채밭은 온통 노랗게 꽃을 틔웠으나 하늘이 흐릿하니 사진도 영 별로다. 1000원씩 받고 관광객들에게 꽃을 내어주는 밭 주인 할망들도 큰 재미는 못 본 듯하다.
3월이 중순 며칠 해가 났는데 그것도 잠깐이다. 곧 부슬부슬 안개비가 시작될 것이다. 고사리 장마철이 다가오는 중이다. 고사리 장마가 고사리 장마인 까닭은,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본격 고사리 철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고사리 시즌이 되면 늘 십년 전 이맘때 기억이 떠오른다. 처음 제주에 왔을 때 정착했던 곳이 서귀포 대평리였다. 농가주택 한 채를 연세 300만원에 빌려 손수 도배도 하고 장판도 깔던 때가 봄이었다. 얼추 이사를 마치고 단정한 차림을 하고 예의 바른 이방인 청년의 인사를 받아주십사 이웃집 문을 두드렸다.
희한하게도 찾아간 여남은 집엔 아무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요 며칠 마을에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못 본 것 같다. 궁금한 일이 생기면 삼거리슈퍼 삼춘을 찾아가면 된다. 그녀는 모르는 게 없는 녹색 창과도 같으니까. 도대체 마을 사람들이 어디로 갔냐고 물었다. 삼춘은 빙긋 웃으며 고사리 따러 갔주게, 했다. 남녀노소 마을 사람들이 남김없이 고사리를 따러 가다니, 빠질 수 없다. 나도 가겠노라 했다. 삼춘에게 고사리밭이 어디냐고 물었고, 깔깔대던 그녀가 쿨하게 말했다. 고사리 많이 나는 데는 며느리한테도 안 가르쳐주신디. 그때 알았다. 제주 사람들은 꽃이 아니라 고사리로 봄을 맞는다는 것을. 소고기보다 비싼 몸값 덕분에 ‘선수’들은 고사리밭 정보를 잘 나누지 않는다는 것도. 그렇게 고사리에 관한 진실을 알게 된 후엔 더욱 흥미로운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고사리는 워낙 빨리 자라는 탓에 하루에 두 번 꺾을 수 있다. 밤새 이슬을 먹고 자란 고사리는 새벽 또는 아침 시간에 따고,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낮 동안 자란 고사리는 늦은 오후나 저녁에 딴다. 제주 속담에 ‘고사리는 아홉 성제(형제)다’라는 말도 있다. 고사리 줄기는 한 번 꺾인다 해도 계속해서 아홉 번까지 다시 돋아난다는 말이다. 고사리처럼 자손들이 강건하고 번성하길 바라는 마음에 제주의 관혼상제에 고사리 음식은 절대 빠지지 않는다. 그뿐인가. 고사리 꺾는 재미에 빠져 깨닫지 못한 사이에 길을 잃은 사람들 소식이 저녁 뉴스시간에 종종 등장하기도 했다.
이듬해 봄 나는 잡지를 창간했다. 그리고 창간호의 특집기사 타이틀은 ‘고사리 로드’로 정했다. 고사리 선수 할망을 따라 중산간 들판을 누볐고 온 섬을 뒤져 제일 맛나게 고사리 음식을 하는 식당을 찾아냈다. 고사리 따러 다니는 게 무슨 기사가 되냐며 손사래 치던 제주 삼춘들은 자신들의 이야기가 담긴 잡지를 보고는 신기하다며 박수를 쳤다. 이후 쏠쏠한 재미를 찾아 고사리 원정을 오는 제주의 봄 여행자들이 많아졌다. 아, 올해 고사리 축제는 4월 둘째 주 주말이다. 고사리 원정대 합류를 원한다며 그즈음 제주를 찾아 주시길. 나도 오랜만에 창고에 넣어둔 고사리 앞치마와 장화, 호루라기 따위를 꺼내 먼지를 털어봐야겠다.
고선영 콘텐츠그룹 재주상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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