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로 먹고살기] 쓸데없는 걸 글로 써야 할 이유
아내와 결혼하게 된 건 ‘음주일기’ 때문이었다. 술도 좋아하고 술자리도 좋아했던 나는 어느 날 술자리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웃기거나 재밌는 이야기들이 다음 날 아침이면 함께 마시던 알코올처럼 모두 증발해 버리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라도 술자리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글로 쓰자고 결심했다.
인터넷에 음주일기를 연재하자 즉각 반응이 올라왔다. 재미있다며 더 써달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런 쓸데없는 글을 왜 쓰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차는 사람도 있었다. 황당한 건 음주일기에 등장했던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빼달라며 항의를 해온 것이었다. 세상엔 아내나 남편 몰래 술을 마시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사람들을 가명으로 처리하거나 아예 빼버리고 계속 연재를 감행했다.
그런데 아내를 만나 사귄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사실은 음주일기 덕분에 오빠(그때는 오빠라고 불렀다)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고백을 하는 것이었다. 알고 지내던 후배 중 한 친구가 음주일기를 쓰는 이상한 오빠가 있다면서 내 글을 소개해 주었다는 것이다. 아내는 내 글을 읽으면서 ‘좀 한심할지는 몰라도 마음은 따뜻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가 나를 우연히 만나 사귀게 되었다는 것이다. 쓸데없는 글 덕분에 두 사람의 인생이 바뀐 사례였다.
생각해 보니 나는 어렸을 때부터 번듯한 일이나 사업보다는 ‘쓸데없는 것들’에 관심이 많았고 그런 걸 글로 쓰는 걸 좋아했다. 카피라이터나 기획실장으로 일할 때도 광고 문구나 기획서를 쓰는 게 주된 업무였지만 나는 그런 글을 잘 쓰기 위해서라도 ‘쓸데없는 글’을 병행해서 쓸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내게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광고 문구나 광고주에게 찬탄을 받는 기획서만큼이나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작고 사소한 이야기들이 중요했다.
아내와 주고받는 대화 속에 피어나는 농담이나 나의 어리석은 실수담, 친구나 이웃들과 지내면서 만들어가는 웃기고 화나고 슬프거나 이상한 이야기들을 글로 쓰는 게 즐거웠다. 비록 돈이 되진 못하지만 그런 글들을 통해 나를 돌아볼 수 있었고 타인의 공감을 얻는 계기도 되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나를 도와준 건 바로 그런 글들이었다. 그때까지는 아무런 쓸모가 없어 보이던 글들이 내 첫 책의 원고가 되어 주었고 매일매일의 일상은 새롭게 써 내려갈 글들의 마르지 않는 원천이 되었다.
물론 일상만 믿고 있다가는 큰일 난다. 끊임없는 독서와 영화·연극·드라마를 찾아보는 부지런함이 필요하고 그걸 자신만의 관점으로 소화해 다시 글로 바꾸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서 만난 사람들의 글과 사진들은 내게 큰 도움을 주었다. 이전보다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고 생각이 자유로워지자 내 글에도 경제적 가치가 생기기 시작했다. 내 책을 통해 글을 쓰고 싶어졌다는 소감은 감동이었고 그런 마음들은 글쓰기 수업이나 책 쓰기 워크숍으로 이어졌다. 칼럼 의뢰도 심심치 않게 들어왔다.
내가 쓰는 글이 돈이 되는 것 말고도 좋았던 것은 글을 씀으로써 내가 성장한다는 사실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의미를 추구하며 산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며 일과 돈, 사람에 치이다 보면 삶의 지향점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쓰는 독후감과 연극·영화의 리뷰들, 그리고 친구들과 술 마신 이야기, 아내와 노는 이야기 등은 가볍고 사소하더라도 나를 나답게 만드는 글쓰기였고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나 하나밖에 없었다.
성북동 북정마을 쪽 성곽길로 산책하러 자주 나간다. 혼자서 천천히 걷다 보면 어지러운 마음이 가라앉고 쓰고 싶은 글감이 두세 개씩 떠오르기도 한다. 며칠 전엔 성곽 벽에 창문처럼 뚫린 네모난 구멍을 새삼 들여다보았다. 돌벽 네모난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너무도 작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 우물에 빠져 하루에 두 번만 해가 지나가는 것을 쳐다보던 남자 이야기가 생각날 정도였다. 자신의 시야가 저렇게 한정된 테두리 안에 갇힌 사람은 얼마나 답답할까. 글을 쓴다는 것은 작은 마음의 창을 벗어나 좀 더 넓게 세상을 바라보는 행위다.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일이라도 글로 쓰면서 곰곰이 곱씹어 보면 의미가 생기고 소중해지는 것이다. 쓸데없는 것들이라도 글로 써봐야 하는 이유다.
편성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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