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영 기자의 안녕, 나사로] 현금 살포·늘봄학교 대책도 허전한 이유
18세까지 월 20만원 아동수당 지급, 육아휴직급여 상한 인상, 조부모 육아휴직제도 도입, 늘봄학교 확대 및 강화. 연일 언론의 머리말을 장식하는 저출생 대응 정책에 관한 주제어들이다.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총선을 앞두고 발표되는 공약에는 여야 할 것 없이 자녀 출산을 늘리고 보육 공백을 지원하는 내용이 빠짐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인구 소멸 가속화’라는 위기론에 어떻게든 대응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는 모습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전국 합계출산율이 0.72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갈아치웠다는 소식이 충격을 준 데 이어 올해는 0.6명대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우리 사회에서 통상적으로 출산의 전제는 결혼이다. 과연 내리막길이 이어지는 합계출산율 그래프에 반전을 줄 결혼 예정자들이 준비돼 있는가.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청년 의식변화’ 조사 결과만 봐도 그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하기 어렵다. 결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청년(19~34세)이 3명 중 1명 수준(36.4%)에 그쳤기 때문이다. 10년 전 조사 결과(56.5%)에 비해 20.1% 포인트나 하락한 수치다. 결혼할 생각도 없는 청년들에게 “아이 낳겠다는 사람이 없어 국가가 소멸하게 생겼어요. 돈을 줄 테니 결혼과 출산에 동참해 주세요”라고 호소하는 게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두 아이의 아빠로서 11개월간 육아휴직을 경험했던 2021년으로 시간을 되돌려 본다. 당시에도 아동수당 10만원, 150여만원의 육아휴직급여가 통장에 꽂혔다. 하지만 160만원 상당의 재정 지원이 육아휴직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 계기였을까. 아니다. 정부의 재정 지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생활비, 즉각 대체자원이 투입되지 못하는 일터에서의 공백으로 인한 마음의 짐, 일시적 경력 단절이 주는 심리적 위축 등을 모두 고려하더라도 ‘지금 내 자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부모의 돌봄’이라는 명제가 최우선 가치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정부가 일하는 조부모도 육아휴직을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일명 ‘할마’(할머니 엄마)와 ‘할빠’(할아버지 아빠)가 손자녀를 돌볼 수 있도록 제도에 유연성을 높인다는 게 취지다. 호주 독일 일본 등은 조부모 육아휴직을 법제화했거나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손자를 위한 육아휴직제도를 운영하는 사례도 언급된다.
늘봄학교는 새 학기와 함께 초등교육 현장에 등장했다. 2004년부터 도입된 돌봄교실, 2006년 시행된 방과후학교의 확장판이다. 하지만 새 학기를 맞은 지 2주가 채 되지 않아 교육 현장에선 인력 배치, 공간 부족 등 갖가지 문제점이 속출하며 ‘늘봄정책 폐기가 답’이란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재정 지원뿐 아니라 돌봄 영역에서의 외부 지원 또한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는 명확하다. 양육의 본질과 직결되는 부모와 자녀, 이 두 축을 떼어놓은 채 외부적 요인을 보완하는 데만 몰두했기 때문이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제도적 울타리에 힘입어 손주들과 활발하게 교감을 나누고 늘봄학교가 안정적으로 정착된다면 ‘현실적 육아 공백을 메웠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결과물이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진정 행복하게 작용할까. 조부모 육아휴직제도와 늘봄학교 운영이 효율적으로 이뤄진다는 건 그만큼 부모와 자녀가 떨어진 채 지내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엔 자녀를 양육하는 데 있어 부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구절이 여러 군데(엡 6:4, 살전 2:11, 잠 22:6) 등장한다. 크리스천 부모로서 분명 마음에 새겨야 할 것 중 하나는 ‘하나님께서 부모인 우리에게 자녀 양육의 숭고한 책임을 맡기셨다’는 사실이다. 이 신성한 사명에는 자녀의 육체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뿐 아니라 영적, 정서적으로도 자녀를 인도하는 것이 포함된다.
저출생 극복을 위한 우리 사회의 다각화된 관심과 노력은 앞으로도 지속해야 할 숙제다. 하지만 이를 위한 고민과 해결 과정이 단순한 재정 지원, 섬세하게 준비되지 않은 제도와 정책에 매몰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부모가 자녀와 눈을 맞추며 돌봄의 울타리에 함께 있을 때, 그 울타리가 우리 사회의 당연한 기본값이 될 때 분명 국가는 소멸 대신 소생으로의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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