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쉴 땐 뭐하세요
현기상(46) 충남 천안 하향교회 목사는 SNS에서 ‘십일조던’ ‘스테판 포리’(농구선수 스테판 커리+40대를 뜻하는 영어 Forty의 합성어)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교회 헌금의 하나인 십일조와 전설적인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의 합성어인 십일조던은 현 목사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농구 릴스(30초 안팎의 짧은 영상)에 달린 댓글에서 비롯했다.
현 목사의 인스타그램은 팔로워는 많지 않지만 이따금 조회 수 ‘잭폿’이 터진다. 지난해 9월 올린 첫 영상인 터닝슛이 21만회를 기록하더니 그다음 달 올린 3점슛 영상은 무려 276만회를 찍었다. 이후에도 현 목사 영상은 인스타그램 남성 사용자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최근엔 100번째 영상을 올렸다.
현 목사는 15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늦은 육아에 코로나, 교회개척까지 하느라 8년 만에 시작한 운동”이라며 “심혈관이 좋지 않다는 건강검진 결과를 받고 시작한 혼농(혼자 하는 농구)인데 이렇게 관심받을 줄 몰랐다”고 말했다. 최근엔 동네 농구코트에서 영상을 찍다 보면 청소년들이 자신을 알아보며 말을 걸어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현 목사는 “농구야말로 목회자가 하기 좋은 취미”라며 농구 예찬론을 폈다. “어린 시절 가난해서 농구 말고 할 게 없었다”는 그는 “공만 있으면 할 수 있고, 사람 수가 많지 않아도 오랜 시간 즐길 수 있는 게 농구”라고 말했다. SNS 활동과 관련해서는 “하나님이 주신 것은 버릴 것이 없다. SNS 또한 마찬가지”라며 “릴스 영상도 계속 편집하다 보니 일종의 신학적 기술이 필요한 부분임을 깨닫는다”고 했다. 이어 “목회자도 일상의 영역을 잘 누리고 재밌게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면서 “선교사역으로 이어지도록 기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 목사처럼 요즘 30, 40대 목회자는 적극적인 취미활동에 나서고 있으며 교회 모임이나 자신의 SNS를 통해서도 거리낌 없이 알린다. 과거 목회자들이 본인들의 취미활동을 숨기며 하던 것과는 딴판이다.
좀 더 ‘거친’ 취미에 빠진 목회자들도 있다. 충북 청주 오송생명교회 교육부 담당 차성진(35) 목사는 최근 복싱에 푹 빠졌다. 주일에 5시간 남짓 인근 체육관에서 운동한다는 그는 “복싱은 우선 체중 관리에 좋다”며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규칙을 배우면서 내 몸 자체가 하나의 재밌는 놀잇거리가 된 것처럼 느낀다”고 장점을 꼽았다.
복싱이 위험하다는 선입견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차 목사는 “경험해 본 어떤 운동보다 안전하다”며 “다관절 복합운동이기에 특정 관절이나 인대에 과부하가 가지 않는다. 나이에 따라 운동 단계를 설정해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많은 목회자가 운동 삼아 하는 헬스 축구 족구 야구보다 부상률이 현저하게 낮다”며 은근한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베트남 한인교회에서 사역하다 코로나 기간 귀국해 현재는 차기 사역을 구상 중인 이사무엘(38) 목사는 주짓수 마니아다. 올해로 4년째 주짓수를 수련 중이라는 이 목사는 “체육관에서 관원들과 몸을 부딪치다 보면 다른 곳에서보다 빨리 친밀감을 쌓을 수 있다”며 “목사임을 밝히고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고 했다.
이 목사는 “어떤 취미든 하나에 집중하고 매진하면 그 영역을 중심으로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면서 “운동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를 얻었다”고 표현했다. 차 목사도 “취미는 직업과 반대되는 성격의 것을 갖는 것이 좋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며 “아무래도 목사님들은 책과 글을 마주하는 정적인 활동을 많이 하다 보니 그 반대 성격에 해당하는 육체적인 운동을 할 때 삶의 균형이 맞춰지는 것 같다”고 전했다.
권오현(38) 경기도 성남시 만나교회 미디어총괄 목사는 영등철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영등철은 낚시인들에게만 존재하는 ‘제5의 계절’이다. 보통 음력 2월 한 달을 말한다. 넓게는 음력 1월부터 부르기도 한다. 이 시기는 연중 가장 수온이 낮고 바람이 많이 분다. 낚시꾼들은 영등철 기간이 지난 뒤 본격적으로 출조에 나선다.
권 목사는 지난해 교회의 40대 성도들과 ‘베드로 낚시단’을 결성했다. 표면적으로는 만나교회 미디어 사역을 담당하는 팀이지만 가입하려면 낚시를 필수로 배워야 한다. 미디어 사역과 낚시가 무슨 관련이 있을지 쉽게 유추하기 어렵지만 권 목사는 자신만의 심오한 철학을 드러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2년, 미디어 사역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 권 목사는 기도원에 들어가 하나님께 매달렸다고 한다. 그는 “성경을 읽는 중에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는 마태복음 4장 19절이 눈에 들어왔다”며 “그길로 기도원을 나와 어부가 되기 위해 배를 사러 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뱃값이 비싸다는 것과 어업권을 얻는 데도 상당한 비용이 든다는 것을 알게 된 뒤 마음을 고쳐먹었다. ‘낚시도 어업’이라는 생각으로 인터넷 동호회에 가입했다.
권 목사는 “낚시계 선배들과 교제하다 보니 낚시가 망망대해에 아무 낚싯대나 드리우고 잡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됐다”며 “광어를 잡으려면 물때에 맞춰 광어가 있는 곳으로 출조해야 하고 광어가 물 수 있는 낚싯바늘과 미끼를 써야 하더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디어 사역 역시 낚시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권 목사는 “누구한테 무엇을 어떻게 전할지도 모르고 막연하게 콘텐츠를 만들어 왔음을 깨달았다”며 “전할 대상과 세대, 방법을 고려하기 시작하니 콘텐츠의 질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3차례 출조를 다녀온 베드로 낚시단은 이번 영등철이 끝나는 대로 서해로 도다리를 잡으러 떠날 계획이다. 도다리는 영등철 이후 많이 잡힌다고 한다. 교회의 정식 소그룹으로 모임을 확장할 방안도 고민 중이다. 권 목사는 “낚시는 교회의 소외계층이라 할 수 있는 40대 남성들과 소통하기 좋은 도구인 동시에 목회자의 일상 패턴에도 적합한 취미”라고 소개했다. 주말이면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포인트(고기가 잘 잡히는 장소)라도 월요일에는 한산한 까닭이다. 월요일은 목회자들의 ‘안식일’이기도 하다.
여가 학자인 옥성삼 한국기독교언론포럼 사무총장은 “한국사회는 압축 성장과 체면 문화의 영향으로 목회자가 취미를 갖고 쉬는 것을 경건하지 못한 삶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며 “한국의 근대 여가활동의 90% 이상이 초기 개신교 선교사들로부터 시작됐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옥 사무총장은 “언더우드나 아펜젤러 선교사도 토착민과 어울려 놀며 복음을 전했고 계절마다 여가를 즐겼다”며 “오늘날 목회자들도 쉼을 회복하고 여가를 통해 어울림의 자리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손동준 기자 sd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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