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던 개농장 37마리 살린 선생님, 1년 뒤 근황 [개st하우스]
“1년 전, 철창에 갇힌 농장개 37마리를 발견했을 때만 해도 전부 살릴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최선을 다해 돌보면 작고 어린 대여섯 마리는 입양 보낼 수 있겠지 그런 정도의 기대만 했습니다. 나머지는 보호소에 끌려가 안락사를 당할 거라는 생각에 미안해서 녀석들 눈도 못 마주쳤어요. 그런데 개st하우스에 출연한 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영하의 꽃샘추위가 찾아온 지난달 28일 충북 옥천의 어느 야산. 굵은 땀을 흘리며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가득 채운 10ℓ 플라스틱 물통 두어 개를 손에 쥐고, 또 한번은 10㎏ 대형 사료 포대를 어깨에 메고서 말이죠. 옥천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는 최근호(38)씨입니다.
근호씨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배구장 넓이의 임시 보호소. 문을 열자 철조망과 노점용 천막으로 급히 만든 10여개의 견사가 눈에 들어옵니다. 지난해 3월, 근호씨는 불법 개농장에서 37마리를 구조한 뒤 간이 보호소를 만들었습니다. 수돗물도 안 나오고 길도 험하지만 개농장이 철거되고 갈 데 없는 처지에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무모한 도전이었습니다. 근호씨는 30마리 넘는 구조견을 매일 돌보는 중노동에 시달리고, 매달 수백만 원의 사료비와 치료비를 대느라 교사 월급을 털어 넣어야 했습니다. 그 와중에 입양 홍보를 위해 매일 일기를 쓰듯 온라인에 글을 올렸습니다. 동물단체였다면 업무마다 전담 인력을 배정했을 고된 노동입니다. 근호씨는 하루 3~4시간만 자며 이 모든 일을 감당했습니다.
근호씨는 “구청 공무원들은 할 만큼 하셨으니 그만 개들을 시보호소로 보내자고 했다”며 “단 한 마리라도 더 입양 보내자는 생각에 이 악물고 버텼다”고 털어놓았습니다(2023년 7월 8일자 보도 ‘쓰레기 먹던 개농장 37마리 살린 기적의 쌤’ 참조).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티던 근호씨와 37마리에게 희망이 찾아온 건 지난해 여름 국민일보의 유기동물 구조채널 개st하우스에 출연한 뒤였습니다. 구독자들은 근호씨의 도전을 응원하며 후원금을 보냈고, 문의가 없던 구조견 30여 마리는 입양 신청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났습니다. 취재진은 지난달 28일 옥천의 간이 보호소에서 여전히 무거운 짐을 메고 산길을 오르내리는 근호씨의 근황을 확인했습니다.
근호씨를 따라 보호소 내부를 훑어봤습니다. 초기에 37마리가 들어찼던 견사 10여곳에는 이제 6마리만 남았습니다. 대부분 입양 선호도가 떨어지는 진도 믹스견이었으나 구조 사연이 입소문을 탄 데다 근호씨가 중성화 수술과 4차에 달하는 예방접종까지 모두 챙긴 덕분에 1년 새 31마리나 입양 길에 오른 겁니다.
근호씨는 “텅 빈 견사를 볼 때마다 감사한 마음뿐”이라며 “지금도 입양자 한 분도 빠짐없이 연락을 주고받는다”고 합니다. 근호씨의 휴대전화에는 가정견으로 거듭난 구조견들의 반가운 근황 사진이 가득했습니다.
덕분에 근호 씨의 어깨도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매일 근호씨가 보호소로 실어 나르는 물과 사료는 1년 전 100㎏에서 현재 30㎏으로 확 줄었습니다. 근호씨는 “농장개 구조 및 치료비를 대느라 받은 수천만원의 대출금도 더는 불어나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시민들의 소액 후원 900여만원으로 급한 치료비를 해결한 덕분입니다.
근호씨는 매달 후원금 액수와 사용처를 개인 SNS 계정에 투명하게 게시하고 있습니다. 사소한 듯 보여도 후원금 사용 내역과 입양 후기를 알리는 절차는 중요합니다. 그래야 관심이 지속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구조자들은 후원자들의 기대에 호응하지 못하죠. 결국 후원과 입양 문의는 끊기고 구조자는 다시 기약없는 돌봄 노동에 짓눌립니다.
반면 근호씨는 초기 응원을 탄탄한 후원 기반으로 발전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모든 수입과 지출을 인스타그램에 투명하게 공개했고, 그 과정에서 팔로어를 3000명까지 늘렸습니다. 모두 근호씨의 성실함과 정직함이 이룬 결실이었습니다.
이날 근호씨는 개st하우스의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 출연했는데 근호씨 근황이 궁금했던 시청자들의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한 구독자가 “초등학교도 개학했는데 구조견도 돌보려면 바쁘지 않냐”고 물었습니다. 근호씨는 “새벽 5시에 일어나고 밤 12시에 집에 들어간다”면서 “체중이 15㎏ 빠졌다. 일상이 그야말로 개박살났다”고 웃었습니다.
거침없이 답변을 이어가던 근호씨는 “아내에게 할 말은 없냐”는 질문에 처음으로 당황한 기색을 보였습니다. 근호씨는 “보호소를 꾸리느라 아내와 아들에게 그간 소홀한 게 맞다. 나는 죄인”이라며 “늘 응원해주는 가족들에게 그저 미안하고 사랑하는 마음 뿐”이라고 전했습니다. 후원계좌를 알려달라는 구독자의 요청에는 “이미 치료비를 충분히 후원받았다. 더 어려운 보호소에 후원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응답했습니다.
37마리 중 31마리가 입양을 갔으니 근호씨가 기적을 이룬 건 맞습니다. 하지만 근호씨는 아직 걱정이 많습니다. 입양을 가지 못한 6마리가 남아있었거든요. 그중에서도 라이브 방송 내내 근호씨의 품을 파고드는 진도 믹스견 3마리가 눈에 띄었습니다. 15㎏의 진도코기(진돗개+웰시코기) 마루, 8㎏의 누렁이 우연히, 스피츠를 닮은 6㎏ 은별이였습니다.
진도코기 마루는 진돗개의 늠름한 얼굴에 웰시코기의 짧은 다리를 가진 녀석입니다. 장난기가 많아 취재진에게 신발이나 물그릇을 물어오더군요. 예민한 목덜미, 발바닥 등을 만져도 가만히 있을 만큼 성격이 온순합니다.
다만 마루는 아직 산책줄을 낯설어 했습니다. 몸에 산책줄을 매자 당황해서 줄을 핥고 제자리에서 굳어버렸습니다. 14년차 행동전문가 미애쌤이 촉감 교육을 해법으로 제시했습니다. 긴장한 마루를 억지로 잡아끄는 대신 줄을 몸에 스쳐보고, 허리나 다리에 꼬았다 풀어주고, 이후 긴장이 풀리면 줄을 살살 잡아당기면서 산책에 동참시키는 방식입니다. 20분의 교육을 마치자 마루는 인솔자와 걸음을 맞춰 걷기 시작했습니다.
라이브 방송 중에는 또 다른 기적도 일어났습니다. 입양을 기다리는 3마리 중 백구 은별이가 개st하우스의 오랜 구독자 품으로 입양을 가게 겁니다. 이제 근호씨의 보호소에 남은 견공은 5마리. 근호씨는 “마루와 우연히 두 친구를 입양 보내면 보호소는 문을 닫을 예정”이라며 “남은 세 마리는 경계심이 강해 내가 평생 품고 가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근호씨가 구조한 2마리가 견생역전을 기다립니다. 가족이 되어줄 분은 기사 하단의 입양 신청서를 작성해주세요.
■영리한 1살 진도코기, 마루
-1살 추정, 15㎏
-중성화 수컷, 조용하고 영리함, 장난기 있음
-배변교육 완료, 줄당김 없이 산책 잘함
■애교 많은 2살 진도믹스, 우연히
-2살 추정, 8㎏
-중성화 암컷, 애교가 많고 온순함
-다른 동물과 잘 지냄, 목줄에 능숙함
■스피츠 닮은 2살 믹스견, 은별이
-은별이는 라이브 방송 도중 구독자의 품에 안겼습니다.
-입양 문의하시면, 은별이를 닮은 2살 스피츠를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아래 입양신청서를 작성해주세요
-https://url.kr/1e6dm9
마루, 우연히, 은별은 개st하우스에 출연한 130번째 견공입니다 (100마리 입양 완료)
-입양자에게는 반려동물 사료 브랜드 로얄캐닌이 동물의 나이, 크기, 생활습관에 맞는 ‘영양 맞춤사료’ 1년치(12포)를 후원합니다.
이성훈 기자 최민석 기자 tell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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