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흑인 여성 싫어져”… 총리 ‘큰손’ 발언에 英 정계 발칵

천양우 2024. 3. 16.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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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당 역대 최대 후원자 프랭크 헤스터
과거 인종·성차별 발언 발굴로 여론 뭇매
수낵 총리, 후원금 반환 요구 “거절”
2024년 3월 13일 영국 런던 다우닝 가에서 차량에 탑승하는 리시 수낵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저 여자(다이앤 애벗) 때문에 모든 흑인 여성을 혐오하게 된다. 그녀는 총에 맞아야 한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를 지원하는 ‘큰손’ 기부자의 과거 인종차별적 발언이 재조명되면서 영국 정계가 발칵 뒤집혔다.

문제 발언의 주인공은 의료기술 업체 피닉스 파트너십의 최고경영자(CEO) 프랭크 헤스터다. 영국 보수당에 지난해에만 1000만파운드(약 169억원)를 기부하며 여당의 역대 최대 후원자 기록을 경신한 그는 과거 한 업무 회의에서 흑인 여성 하원의원 다이앤 애벗(무소속)을 향한 폭언을 쏟아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은 헤스터가 “나는 인종차별주의자가 되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TV에 애벗이 나오는 걸 보면 모든 흑인 여성이 싫어진다. 그녀는 총에 맞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한 것을 보도했다.

애벗은 영국 의회 최초의 흑인 여성 의원이자 역대 최장수 흑인 하원의원이다. 과거 노동당 소속으로 제레미 코빈 예비내각에서 내무장관직을 지냈다.

다이앤 애벗 당시 영국 노동당 의원이 2021년 7월 17일 영국 런던 다우닝가에서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벌이며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헤스터의 부적절한 언행은 애벗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또한 “중국인 여자애들이 동양음식 코너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꼴이 우습다(We take the piss out of the fact that all our Chinese girls sit together in Asian corner)”고 말하는 등 거리낌없이 차별적 발언을 일삼아왔다고 가디언은 설명했다.

성차별적 언행을 서슴지 않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2019년 자신의 회사 임원회의에서 그는 다른 업체의 한 여성 임원을 거론하며 “그녀는 형편없다. 내가 본 사람 중 최악이다. 성차별주의자가 되기 싫지만 저런 여자를 만날 때면….” 등의 발언을 한 사실이 발굴되었다.

논란이 일자 헤스터는 그의 X(엑스·옛 트위터)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 그는 “애벗에게 무례한 말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그의 피부색이나 성별과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 나 역시 아일랜드 이민자 자녀로서 차별을 경험했고 인종차별을 혐오한다”고 전했다. 또한 “애벗에게 두 번이나 전화를 걸어 진심으로 사과했다”고 적었다.

1000만 파운드를 기부하며 영국 보수당 역대 최대 후원자로 등극한 프랭크 헤스터. 이브닝스탠다드 유튜브 캡처

보도 이후 야권을 중심으로 보수당이 헤스터로부터 받은 기부액을 반환하라는 요구가 나오기 시작했다. 가디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체 유권자의 60%가 “주류 정당이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사람으로부터 기부금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데 동의했다.

비판은 곧장 리시 수낵 총리에게로 향했다. 그는 헤스터가 내놓은 후원금의 최대 수혜자다. 헤스터는 지난해 11월 수낵의 출장에 사용한 헬리콥터 비용 1만5000 파운드(약 2500만원)를 전액 부담하기도 했다. 노동당 대표 키어 스타머는 헤스터의 발언을 두고 “혐오스럽다”며 보수당이 전달받은 기부금1000만 파운드를 반환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수낵 총리는 기부금을 돌려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대변인을 통해 “헤스터의 발언은 잘못됐고 인종차별적이었지만 그는 제대로 사과했으니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전했다.

또한 자신의 인도계 혈통을 언급하며 헤스터를 적극 옹호하기도 했다. 그는 “(헤스터가) 이 나라 최초의 아시아계 총리가 이끄는 정당을 지지하고 있어 기쁘다”며 “영국에 인종차별이 발붙일 곳은 없다. 내가 이 정부를 이끌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13일(현지시간) 진행된 PMQ(총리 질의응답)에서는 애벗 의원이 발언 기회를 얻기 위해 수차례 기립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는 장면이 포착되면서 재차 논란이 일었다. BBC는 “애벗이 자리에서 46차례 일어나 발언 기회를 요청했으나 린지 호일 하원의장은 이를 무시했다”고 보도했다. 호일 하원의장은 PMQ 종료 이후 애벗에게 “시간이 부족해서 기회를 주지 못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BBC는 "다이앤 애벗 의원이 발언 기회를 얻기 위해 수차례 기립했으나 결국 호명받지 못했다"며 그가 46번 일어났다 착석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게시했다. BBC 캡처

그러나 BBC는 “의장은 발언자를 직접 지명할 수 있는 재량권을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이날 PMQ는 애벗을 향한 헤스터의 혐오 발언에 대한 질의가 주를 이뤘다”며 “정작 사건의 당사자에게는 발언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날 질의응답 과정을 녹화한 카메라에는 끝내 발언 기회를 얻지 못한 애벗 의원이 고개를 떨구는 모습이 담기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의장이 누굴 위해 일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며 “그의 변명을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천양우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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