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악함이라는 아름다움

윤정훈 2024. 3. 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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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 민터가 아름다움을 말하는 법.

주름진 검붉은 입술 사이로 보석 박힌 치아가 번쩍인다. 그 위로 일그러진 표면은 기묘한 인상을 풍긴다. 피사체는 에릭 오웬스의 부인이자 세계적 패션 아티스트 미셸 라미. “미셸이 젊어 보이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좋았어요.”미국의 사진가이자 화가인 마릴린 민터는 미셸과의 대담에서 그녀를 찍고 싶었던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마릴린은 판을 뒤집는 데 능숙한 아티스트다. 그녀는 각종 매체를 통해 대상화된 여성의 성(姓)과 신체, 그것에 대한 관음적 시선을 도리어 작품으로 전복시키는 방식으로 빼앗긴 주도권을 되찾아왔다. 시퍼런 글리터를 짙게 펴 바른 눈두덩, 얼굴을 수놓은 주근깨, 짙은 수증기 너머 살짝 벌어진 입술, 노년의 몸과 사랑. 화려한 동시에 그로테스크하고, 에로틱하면서도 서정적인 작품은 패션 화보와 포르노, 예술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한다. 언뜻 봐선 사진인지 그림인지 헷갈리는데 이는 직접 연출하고 촬영한 사진을 회화로 옮겼기 때문이다. 사진과 회화를 전공한 마릴린은 두 매체의 특성을 자유자재로 뒤섞어 그만의 표현법을 고안했다. 대상을 전복하고 혼합하는 특유의 문법은 보편적 미의 기준에도 적용됐다. 미디어로 송출되는 비현실적 아름다움에 대응해 여드름과 체모, 주름, 번진 화장을 보란 듯이 작품 한가운데 가져다 놓은 것. 올해로 76세가 된 이 현역 아티스트는 계속해서 자신만의 질서를 덧씌운다. 지극히 현실적인 판 바로 그 위에. 마릴린 민터의 전시는 3월 7일부터 4월 27일까지, 리만머핀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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