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훈 컷오프'의 본질... 충격적인 민주당의 자기 부정 [이게 이슈]
[이용석 기자]
▲ 임태훈 전 군인권센터 소장 |
ⓒ 권우성 |
선거 때면 시끄러운 정치 뉴스에 관심을 안 가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정책이라든지,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비전 같은 걸로 싸우기보다는 서로 권력을 더 차지하려는 악다구니만 있어서 그렇다.
왜 자신들이 권력을 차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다시 말해 정치의 본령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은 없고 상대방 욕밖에 할 것이 없어 보이니 더욱 그렇다. 정치 혐오는 질 나쁜 정치인에게 가장 좋은 토대가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거대 양당이 서로를 비난하며 스스로는 시스템 공천이라고 자부하는 모습이 반복되는 상황을 보고 있자면 관심을 끄는 것이 오히려 좋은 정치적 사고를 가능하게 할 것만 같다.
그런 와중에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 공천에서 들려온 소식은 내 눈과 귀를 의심하게 했다. 더불어민주연합이 시민사회에서 추천한 임태훈 전 군인권센터 소장에 대해 부적격 판단을 내렸는데. 그 이유가 '병역기피'에 해당한다고 한 것이다.
임태훈 전 소장은 2003년 7월 22일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군대에 문제를 제기하며 병역거부를 했다. 임태훈 소장뿐만 아니라 많은 병역거부자들이 평화주의, 페미니즘, 반군사주의, 종교적 양심 등 다양한 신념으로 병역을 거부해서 감옥살이를 했다. 헌법재판소가 2018년 6월 병역법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2019년 12월 국회가 '대체역의 편입 및 복무 등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켜 대체복무제가 만들어지면서 비로소 병역거부자들의 감옥행이 멈추게 되었다.
비례위성정당에 대한 각자의 의견이 다를 것이고, 시민사회단체 활동가가 비례위성정당 후보로 출마하는 것에 대한 의견도 서로 다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가 비례위성정당을 만들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국회 진출에 대해서는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비례위성정당의 후보로 출마하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비례위성정당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이번 더불어민주연합 후보 공천 과정에서 보이는 문제점을 임태훈 전 소장 컷오프를 중심으로 이야기하려고 한다.
진정 구분해야 할 것은 '병역거부'와 '병역비리'
더불어민주연합 공천 과정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병역기피'라는 단어다. 우리는 병역기피를 떠올리면 유승준, MC몽 같은 연예인들 혹은 유력 정치인의 아들이나 재벌 회장님의 아들 손자들처럼 권력이나 돈을 써서 군대를 가지 않는 사람들을 떠올리기 쉽다.
이들은 군대에 가기 싫어하는 병역기피자가 맞다. 그런데 사실 훨씬 더 많은 이들이 병역기피자에 포함된다. 한국전쟁 직후 한국군의 징집률은 70%밖에 되지 않았고 전쟁의 충격을 어느 정도 수습한 1960년대 초반까지도 78%를 기록했다. 다시 말하면 국가의 행정력이 정교해지기 전까지 많게는 30%가 이르는 사람이 소위 '병역기피자'였던 것이다. 즉 군대에 가고 싶지 않은 보통 사람들의 마음도 우리는 병역기피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당연히 병역거부자도 병역기피로 설명할 수 있다.
'병역기피'라는 말은 국가권력의 입장에서 징집대상자를 바라보는 말이고, 징병제 시스템에서 작동하는, 군대 다녀온 사람만이 1등 국민이라는 인식이 담겨 있는 단어다. 사회가 용납해서는 안 되는 병역비리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유로 군대를 가지 않거나 갈 수 없는 이들까지도 싸잡아서 군대에 가지 않은/가지 못한 2등 국민으로 낙인찍기 위해 '병역기피'가 사용된다.
우리가 구분해야 할 것은 병역거부와 병역기피가 아니라 병역거부와 병역비리다. 군대 가기 싫어하는 마음이 많은 사람들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 대부분은 가기 싫은 마음을 갖고 군복무를 한다. 그리고 소수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하는데, 스스로 수감생활 혹은 대체복무를 선택하는 이들이 병역거부자다. 반면 돈이나 권력을 행사해서 때로는 제도를 악용해서 때로는 불법적으로 군대를 면제받거나 덜 고생스러운 보직을 꿰차려는 것이 병역비리자다.
과거 대체복무제가 없던 시절 감옥에 수감된 병역거부자와 불법적인 병역비리를 저질러 감옥에 수감된 병역비리자는 죄명은 같지만 둘의 행위는 완전하게 구분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이 둘을 구분해서 전자의 경우 대체복무를 마련해서 감옥에 수감되지 않게 했고, 후자의 경우는 여전히 당연하게도 처벌 대상이다.
이처럼 이미 법적으로 병역거부권이 인정되고 있고 대체복무제가 도입되었다는 것을 더불어민주연합에서도 몰랐을 리 없다. 이번 더불어민주연합의 임태훈 전 소장에 대한 부적격 판단의 근거로 '병역기피'를 내세운 것도 2등 국민 낙인을 찍기 위한 단어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 2018년 6월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헌재의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한 판결과 대체 복무제 마련과 구속된 양심적 병역거부자 석방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때 헌재는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에 대해서는 합헌, 대체 복무제가 없는 병역법은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
ⓒ 연합뉴스 |
첫 번째로 자기 역사 부정이다. 병역거부권이 한국에서 인정되고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는 데 민주당 계열의 정치인들이 나름의 역할을 했다. 물론 민주당 안에서도 병역거부에 부정적인 정치인들도 적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중요한 역할을 한 정치인들이 대체복무 도입에 앞장 선 것도 사실이다.
국회에서는 장영달, 천정배 두 의원이 2001년 대체복무 법안을 발의한 것을 필두로 17대 국회에서는 임종인 의원, 18대 국회에서는 김부겸 의원, 19대 국회에서는 전해철 의원, 20대 국회에서는 박주민, 이철희, 전해철 의원이 대체복무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이처럼 꾸준히 대체복무 입법을 시도한 정당은 민주당 계열과 민주노동당에서 정의당으로 이어지는 진보정당(노회찬 의원, 이정희 의원이 대체복무 관련 법안을 발의했었다)밖에 없다.
민주당 출신 정치인들은 행정부에서도 대체복무 입법에 역할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정부입법으로 대체복무제 도입을 기정사실화 했다. 이후 선거에서 당선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이를 전면 백지화했고, 12년 뒤인 2019년 문재인 정부에서 대체복무제가 도입되었다. 병역거부를 이유로 국회의원 후보 자격을 박탈하는 것은 병역거부권 인정과 대체복무 도입에서 나름의 역할을 해온 민주당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부정한 것은 대체복무제 개선에 대한 책임이다. 2019년 12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대체역의 편입 및 복무 등에 관한 법률'이 통과 된 것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의 권리를 법률로써 인정한 의미 있는 일이었지만, 이후 도입된 대체복무제는 꽤나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이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국내외의 지적이 잇따랐다. 몇가지만 살펴보면 2023년 5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대체복무 기간 단축을 국방부에 권고했고, 2023년 11월 3일 유엔자유권 위원회는제5차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국가보고서에 대한 심의의 결과로 대체복무 기간을 단축하고, 복무 영역 확대하고, 현역 군인의 병역거부권 인정할 것을 한국 정부에 권고했다. 대체역심사위원회까지도 자체 연구를 바탕으로 복무기간을 단축하고 복무영역을 확대하고 복무형태(예외적 비합숙 허용)를 다양화해야 한다는 개선안을 발표했다.
평화인권 단체들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온 직후인 2018년 7월 시민사회안을 발표했고,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대체복무제의 징벌적이고 인권침해적인 요소를 지적하며 개선을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한때 180석 가까이 국회 의석을 차지한 큰 책임을 가지고 있는 정당으로서, 또 병역거부권 인정과 대체복무제 도입을 추진했던 정당으로서 이처럼 문제 지적과 개선 요구가 빗발치는 대체복무제를 개선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그런데 이번 더불어민주연합의 선택과 결정으로 책임을 다하기는커녕 병역거부자에 대한 차별과 낙인찍기를 한 셈이다.
세 번째로 부정한 것은 양심과 사상의 자유다. 대한민국 헌법 19조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에선 양심의 자유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명시하고 있다. 제2차세계대전에 대한 반성으로 탄생한 유엔의 <세계인권선언>에서도 "제18조 모든 사람에게는 사상과 양심과 종교의 자유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이하 생략)"라며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옹호한다.
헌법재판소는 2018년 병역법에 대한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헌법상 양심의 자유가 문제되는 상황은 개인의 양심이 국가의 법질서나 사회의 도덕률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이므로, 헌법에 의해 보호받는 양심은 법질서와 도덕에 부합하는 사고를 가진 다수가 아니라 이른바 '소수자'의 양심이 되기 마련이다"라고 판시했다.
이처럼 양심과 사상의 자유는 민주주의 국가의 핵심적인 가치이며, 병역거부권 인정은 그 국가가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보호하는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척도다. 한국은 이미 법과 제도로서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있는데, 내부 절차를 거쳐 후보로 뽑힌 이를 병역거부자라는 이유로 탈락시키는 것은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헌법 정신과 세계인권선언에 위배되는 것이다.
▲ 윤영덕 더불어민주연합 공동대표가 14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비례대표 후보자 면접에 참석하고 있다. |
ⓒ 공동취재사진 |
나는 평화활동가로서 때때로 정치인들을 만나는 기회가 있지만, 흔히 말하는 여의도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며 선거 공학 같은 것은 더더욱 모른다. 그렇지만 정치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한 명의 시민이자 유권자로서 생각하는 바는 있다.
내가 유권자로 바라는 것은 책임 있는 정치다. 다양한 계층과 이해관계가 사회에 존재하니 그들을 대변하는 정치세력도 다양한 것이 마땅하다. 어떤 정치적 신념을 가졌든 간에 적어도 직업정치인들이나 정권을 잡겠다고 나서는 정치세력이라면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면 좋겠다. 자기들이 한 말을 너무 쉽게 뒤집거나,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정치인 말고, 조금 불리하더라도 자기들이 실행해 온 제도나 정책을 일관성 있게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리고 내가 바라는 정치란 사회적으로 차별받거나 배제되기 쉬운 존재들, 가치들을 옹호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생각과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 갈등을 조정하는 것도 정치지만, 갈등 과정에서 너무 쉽게 배제되거나 차별받는 가치들과 사람들을 옹호하지 않는 정치를 한다면 결국 정치기술자밖에 안 된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쉽게 침해받기 때문에 부러 헌법으로 보호하는 양심의 자유라든지, 사회적인 차별이나 혐오의 대상이 되는 소수자들의 권리를 옹호하지 않는다면 정치인이 존재해야할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이번 더불어민주연합의 공천 과정은 병역거부운동을 해온 활동가로서는 말할 것도 없고, 한 명의 시민이지 유권자로서도 실망스럽고 우려스럽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앞으로 남은 선거 과정이 낙인찍기, 혐오, 차별을 선동하는 과정이 아니라 부디 책임감 있는 정치, 차별받고 소외되고 배제되는 가치와 존재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정치가 확장되는 과정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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