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회 분노케 한 '일제 옹호' 후보... 국힘은 왜 이리 당당한가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기자]
▲ 국민의힘 정영환 공천관리위원장이 14일 여의도 당사에서 공관위 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그러나 윤석열 정권하의 국민의힘에 대해서는 막연한 기대감마저 가질 수 있는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5·18을 왜곡하는 사람이 총선 공천까지 받는 일이 태연히 일어났다.
14일에 결국 공천이 취소된 대구 중·남구의 도태우 변호사는 "조직적인 무기고 탈취와 관련해 북한 개입 여부가 문제가 된다"라며 5·18 영령들과 북한의 개입을 연결시킨 일이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그에 대한 공천을 취소하는 과정에서 머뭇거리는 태도를 보였다. 재검토 논의가 이뤄진 12일 공천관리위원회 회의에서는 공천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결정까지 있었다. 5·18 왜곡의 중대성을 국민의힘이 절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 조수연 국민의힘 예비후보(대전 서구갑). |
ⓒ 조수연 예비후보 페이스북 |
이에 대해 광복회는 13일 자 보도자료에서 "국민의 대표가 되겠다는 자가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고통을 생선으로 비하하고 뉴라이트의 친일 식민사관과 식민지배의 정당성 주장을 넘어 일본을 대변하고 옹호하는 글은 일본 극우세력의 망언에 가까워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라고 성토했다.
국민의힘의 과거 퇴행적 성격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변호인이었던 유영하 변호사를 대구 달서갑에 공천한 데서도 증명된다. 탄핵의 강을 거스르는 이 공천은 촛불혁명에 대한 윤석열 정권의 인식을 의심하게 만든다.
함운경(서울 마포을), 최원식(인천 계양갑), 김영주(서울 영등포갑)는 운동권 혹은 노동계 출신들이다. 국민의힘의 공천을 받았다는 것은 이들의 현재 정체성을 말해준다. 특히 함운경 후보는 운동권 설거지론을 주장하며 이승만 띄우기와 '친일청산 반대'에 가까운 메시지를 내고 있는 민주화운동동지회의 회장이다. (관련 기사: 운동권 설거지론? 윤석열 정권을 많이 닮았다https://omn.kr/2570g)
'새로운 주류' 내세우며 정치 생명 연장한 한국의 보수들
안 그래도 극우 성향이 짙어진 국민의힘은 이번 공천을 통해 더욱 더 퇴행적인 모습을 노출했다. 지난 보수정권과 비교할 때도 가히 역대급이다.
대한민국의 역대 보수세력은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을 비교적 충실히 따른 편이다. 이들은 정치적 전환기 때마다 새로운 주류 그룹을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으로 자신들에 대한 대중의 증오와 원성을 피해 가며 권력을 유지해 왔다.
이승만 대통령이 국회 내에 확실한 기반을 두게 된 것은 1954년 제3대 총선 때부터다. 그가 1952년에 불법적 개헌을 통과시켜 국회 간선제를 피하고 대통령 직선제로 간 것은 제2대 국회 때만 해도 원내 기반이 취약했기 때문이다.
1951년에 출범한 이승만의 자유당은 제3대 총선에서 전체 의석 203석 가운데 114석을 차지했다. 이런 승리를 거둔 데는 그 시절에 만연했던 부정선거 풍토에도 기인하지만, 이승만이 새로운 세력을 내세운 데도 상당 부분 기인했다.
이승만은 대통령이 되기 직전까지 한민당과 제휴할 때도 친일세력의 지지를 받았고, 자유당을 창당한 뒤에도 친일세력의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 한민당 친일세력과 자유당 친일세력의 컬러는 달랐다.
한민당이 주류 친일세력에 기반을 뒀다면, 자유당은 비주류 친일세력에 기반을 뒀다. 자유당 창당은 종전의 비주류 친일세력을 주류 위치에 올려놓는 일종의 친일파 세대교체였다. 이를 발판으로 이승만의 자유당은 1954년과 1958년 총선에서 제1당 지위를 차지했다. 이 당의 성격에 관해 김영모 중앙대 명예교수의 <한국 권력지배층 연구>는 이렇게 설명한다.
"한민당의 친일 보수세력과는 그 성격이 다르고, 특히 지방에서 좌익계를 타도하는 데 기여한 지방의 친일 부르주아지들이 그 핵심이다. (중략) 이들은 대부분 친일적인 행정 관료(면장 포함)와 회사 경영자 및 교수, 교원 중심의 신흥 보수세력(우익)이었다."
보수세력의 간판 주자들을 바꾸는 모습은 이승만 하야(1960.4.26) 1년 뒤부터 등장한 군부정권들에서도 되풀이됐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부정권하에서는 이승만 집권기에 주류가 아니었던 세력이 보수진영을 이끌었다. 이런 새로운 세력이 그 시절의 총선에 출마해 야권과 대결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라는 세 개의 군부정권 간에도 차별성이 존재했다. 1960년 5·16쿠데타를 일으켜 박정희 정권을 연 주역들은 이승만 정권에 비판적이거나 이와 거리를 둔 장교들이었다.
▲ 1990년 1월 당시 김영삼 민주당 총재(오른쪽), 김종필 공화당 총재(왼쪽)와 청와대에서 긴급 3자 회동을 갖고 민정, 민주, 공화 3당을 주축으로 신당 창당에 합의했음을 발표한 뒤 청와대를 나서는 모습. |
ⓒ 연합뉴스 |
노태우 정권은 전두환 정권을 계승했지만, 전두환 정권과 다소 다른 컬러를 띠었다. 1987년 6월항쟁의 충격 속에서 출범한 노태우 정권은 1990년 1월 22일의 3당 합당 선언을 통해 새로운 주류 세력을 만들어냈다.
합당에 참여한 노태우의 민주정의당(민정당)은 신군부 세력이고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은 민주화운동세력이고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은 구군부 세력이었다. 합당의 결과물인 민주자유당(민자당)은 신민주공화당이 합류했다는 점에서는 과거 퇴행적이지만 통일민주당이 합류했다는 점에서는 그렇게 보기 힘든 정당이었다.
3당 합당 뒤의 첫 총선인 1992년 총선에서 민자당은 3당이 1988년 총선에서 얻은 합계 219석(전체 299석)에 훨씬 못 미치는 149석(전체 299석)을 얻었다. 하지만 신군부 세력의 입장에서 보면, 6월항쟁 때 몰락했어야 할 자신들이 민주화 세력과 뒤섞여 정치적 생명을 유지했다는 사실이 안도감을 주는 일이었다.
3당 합당 선언 8일 뒤인 1990년 1월 30일, 서울 마포구 통일민주당 당사에서 '통일민주당 3당 합당 결의 전당대회'가 열렸다. 합당 선언을 지지하는 행사가 열린 이날, 노무현 의원은 오른팔을 들고 주먹을 불끈 쥔 채 "이의 있습니다. 반대토론해야 합니다"라고 고함쳤다.
노무현의 외침은 무시됐지만, 변절자라는 비판을 받은 김영삼은 1995년 12월 6일부터 민자당 대신 신한국당 간판을 내걸고 신군부 출신들을 약화시키면서 김문수로 대표되는 재야 세력을 강화시켰다. 이런 식으로 보수세력의 컬러를 어느 정도 바꾼 상태에서 1996년 4·11총선을 치렀다. 이 선거에서 신한국당은 299석 중에서 139석을 얻었다.
새로운 지도자가 보수세력의 컬러에 손을 대는 일은 대통령이 되지 못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시절에도 반복됐다. 김영삼의 신한국당을 한나라당으로 개편한 그는 2000년 제16대 총선을 앞두고 김윤환으로 상징되는 구세력을 몰아내고 386세대인 오세훈·김영춘·원희룡 등을 발탁했다.
눈속임조차 하지 않는 윤석열 정권... 노골적인 '퇴행'
2008년에 출범한 이명박 정권하에서는 총선 공천 수준을 뛰어넘는 큰 변화가 있었다. 이 시기에는 2004년 11월부터 운동을 개시한 뉴라이트세력의 영향력이 강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박근혜 집권기에도 이어졌다.
뉴라이트 세력은 지금도 윤석열 정권을 움직이고 있지만, 그때의 뉴라이트와 지금의 뉴라이트는 20년이라는 시간 간격만큼이나 많이 다르다. 그때의 뉴라이트는 보수세력의 새로운 주류로 떠오른 신진 그룹이었지만, 지금은 극우화된 낡은 세력이 되어 있다. 그래서 윤석열 정권하의 뉴라이트는 과거 퇴행적 성격을 훨씬 많이 띤 세력이라 할 수 있다.
보수세력이 중요 고비마다 세대교체를 단행하고 컬러를 약간씩 바꾼 것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였다. 유권자를 기만하고 대중을 무시하는 이런 눈속임은 이들의 생존에 상당부분 기여했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하에서는 그런 눈속임마저 잘 나타나지 않는다. 낡은 생각을 가진 구시대 사람들이 정권을 이끌 뿐 아니라 총선에도 당당히 나서고 있다. 굳이 변신하는 척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신감 때문인지, 이제는 그런 변신마저 귀찮아진 것인지 윤석열 정권은 너무도 노골적으로 과거 퇴행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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