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에나 ‘주지훈 아버지’ 이황의, 무박삼일 ‘백발의 올마이티’ [홍종선의 연예단상㊹]
배우 이황의, 백익무해한 인물로 등장해 상처 어루만져…기타연주도 일품
영화를 볼 때 가능한 아무런 정보 없이 스크린 앞에 앉는 걸 즐긴다. 다양한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스토리와 장르, 결말을 더듬어 따라가고 어떤 이야기를 전하려는지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는 재미를 즐긴다. 카메오는 물론이고 등장하는 줄 몰랐던 배우를 조·단역으로 만나면 배로 반갑다. 포기하기엔 너무나 꿀맛이라 ‘이기적 관람 태도’를 고수한다.
그래도 영화는, 다양한 홍보 채널이 있어 눈과 귀를 완전히 막을 수 없어 ‘최소한’으로 줄이는 게 목표다. 하지만 연극은, 특히나 창작극은 그 아무런 정보 없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어 기꺼이 즐긴다.
음악이 이야기 전개와 주제, 극의 형식에 주요하게 작용하는 창작극 ‘무박삼일’(작·연출 이달형, 제작 박정욱, 음악감독 강석훈)은 함께 가자는 선배의 제안이 시발점이었기에 더욱이 아무런 정보 없이 볼 수 있었다. 확인해 둘 건 동숭무대소극장, 극이 펼쳐지는 무대를 ‘찾아가는 길’이면 충분했다.
무대에 불이 켜지자마자 깜짝 놀랐다. 가수 영탁의 노래 ‘니가 왜 거기서 나와?’가 생각나는, 노래와 차이가 있다면 당황과 배신감이 아니라 놀람과 기쁨 속에 바닷가 벤치에 앉아 기타 치며 노래하고 있는 ‘예상치 못한 배우’의 출연을 맞았다.
서프라이즈를 안긴 배우는 ‘이황의’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죄송하게도 처음부터 딱 이름이 떠오르진 않았다.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인상 깊게 봤던 장면들이 스쳐 갔다.
‘어? 주지훈 아버지를 여기서 뵙네!’. 가장 또렷이 남아 있는 인물은 김혜수·주지훈 주연의 드라마 ‘하이에나’(2020)에서 윤희재(주지훈 분)의 아버지, 대쪽 같은 성품의 부장판사 윤충연이다. 장남 혁재(김영재 분), 차남 희재뿐 아니라 법조계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대법관이다. 그런데! 볼수록 헷갈린다. 존경할 부분이 큰 인물인지 안으로 감추고 있는 부정의 꿍꿍이가 큰 속인인지.
이황의는 배우로서 자신의 그릇이 얼마나 큰지 모르는 시청자에게, 몰라도 동의하고 설득되는 카리스마를 윤충연에게 부여했다. 역시, 준비된 배우는 단박에 수직으로 상승해 비중 있고 의미 큰 인물을 넉넉히 소화하는구나! 재확인시키는 연기였다.
차남 윤희재의 좁혀 드는 압박, 마지노선까지 품위를 잃지 않고 버티는 모습. 주지훈이 보통 큰 에너지를 가진 배우가 아닌데 그 공격을 가부좌 틀고 앉아 받아내며 수비하는 풍경이 짜릿했다.
드라마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2022)에서의 굵고 짧은 출연도 생각났다, 극의 중심이 되는 연예기획사 메쏘드엔터의 대표 왕태자. 프랑스 원작 드라마를 익히 본 터라 개인적으로 국내판 제작에 우려가 있었다. 그 가운데엔, 연예기획사 대표 역의 배우가 언뜻 떠오르지 않는 점도 있었다.
모두를 넉넉히 품는 인품, 그가 사라졌을 때 모두가 그리워하고 찬사를 보내는 것에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넘치는 호감, 겸비할 배우가 누구일까 싶었다. 드라마에서 이황의 배우를 마주하고 무릎을 쳤다. 적역의 캐스팅이기도 했고, 다시금 ‘조역도 주연으로 보이게 하는, 주연과 대등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배우’임을 각인 받았다.
기자이기에 앞서 이기적 관객이자 시청자인 터라 ‘감명받은 배우’의 연기 일정을 좇아 매 작품을 챙기기란 실로 어렵다. 마음 저 구석에 ‘미안’이라는 카드를 간직할 뿐이다. 그러다 우연 아니게, 조우했다, 대학로 연극 무대에서.
사실, 지금까지 쓴 내용은 글로 쓰니 길뿐 무대에 불이 들어오고 2~3초 안에 머릿속과 마음속에서 일어난 연쇄작용이다. 바로 배우 이황의의 편안한 기타연주와 포근한 연기를 매개로 극에 몰입했다. 2인극의 파트너로 무대에 선 배우 박혜경과의 호흡도 좋아서 입가에 번지는 미소의 크기가 자꾸만 커졌다.
정수정(박혜경 분)의 심연과도 같은 우울, 또 계곡이 깊으면 산도 높은지라 우울의 계곡 사이사이 빛나는 정상의 환희와도 같은 맑은 가창력에 박수하고. 시종일관 같은 톤을 유지하는 듯하지만, 정수정의 고저를 오가는 감정변화에 맞춰 어울렀다 감쌌다 깊은 위로를 전하는 박정욱(이황의 분)의 따스한 인간미에 살포시 위로받다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난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뚫고 들어갈 수 없는 화면을 사이에 두고 펼쳐지는 환상과 달리, 어느 무대극이든 등장인물의 희로애락과 주제 의식이 직접적으로 전달된다. 객석을 찾는 큰 이유일 것이다. ‘무박삼일’도 마찬가지인데 특별히, 말로 표현하여 전달하기 어렵지만 애써 설명하자면, ‘위로의 파동’이 직접적으로 심장을 파고든다.
극을 보노라면 수정의 인생 이야기는 다소 전형적이고 다분히 평범한데, 그래서 매력이 떨어진다기보다 그래서 수정의 자리에 관객 각자가 들어가 서게 한다. 그렇게 선 내게, 정욱이 선을 지키고 도를 넘지 않게 손을 내미는데, 잠시 그 손을 잡기만 해도 ‘다시 살아갈 힘’이 날 것만 같다.
마치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에서 신(모건 프리먼 분)으로부터 뭐든지 가능한 능력을 분유 받아 브루스 놀란(짐 캐리 분)에서 브루스 올마이티가 된 그를 대신해 박정욱이 ‘정욱 올마이티’가 되어 수정에게 필요했던 모든 일을 해주는 느낌이랄까.
어릴 적 상처를 어루만져, 마음속 깊은 곳에 접어두었던 꿈을 끄집어내 이뤄줌으로써 우리의 고된 인생에 에너지를 불어넣는 역할을 배우 이황의가 해낸다. 마치 ‘올마이티’, 모든 게 가능하고 나를 해칠 리 없어 믿어도 되는 어떤 초월적 존재로 느껴지게 이황의가 표현했다. 신기한 건 신이 계신지 아닌지, 어디에 계신지 잘 모르게 존재하듯 전혀 힘주지 않고 연기해서 더욱 평안하다. 백발의 머리 덕에 더욱 그분처럼 다가온다.
크고 작은 사건과 고비로 일상과 인생에 ‘따스한 마음’ 한 줌이 필요한 당신께 추천한다. 소담한 음악극 ‘무박삼일’로 여행을 떠나보자.
2인극의 파트너는 고정돼 있지 않다. 이황의X차혜선, 차혜선X이성원, 이성원X박혜경…각기 다른 조합, 각기 다른 색과 향의 힐링과 위로가 당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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